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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의 술과 음식 이야기 .17] 안동 계암종가의 수운잡방, 그리고 ‘삼색어아탕’
대한인
2016. 10. 15. 04:40
[종가의 술과 음식 이야기 .17]
안동 계암종가의 수운잡방, 그리고 ‘삼색어아탕’
할아버지·손자의 요리비법…조선 ‘양반 남자들의 맛’ 고스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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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잡방음식연구원이 ‘수운잡방’의 음식을 재현한 ‘삼색어아탕’(위쪽)과 ‘오정주’ 술상. <수운잡방음식연구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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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잡방 저자인 김유의 정자 ‘탁청정’. |
지금은 남자 요리사가 낯설지 않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요리는 여성의 전문영역으로 간주되었다. 남자는 아예 부엌을 드나들지도 못하게 하는 가정도 많았다. 남존여비시대였던 조선은 더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문화가 지배하던 시대라도 당대의 모든 사람이 그런 문화의 지배를 받는 것은 아니다. 음식문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 조리서로 어의(御醫) 전순의가 지은 ‘산가요록(山家要錄)’, 김유의 ‘수운잡방(需雲雜方)’, 허균의 ‘도문대작(屠門大嚼)’, 장계향의 ‘음식디미방’,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閨閤叢書)’ 상주 반가 부인의 ‘시의전서(是議全書)’ 등이 있는데 이 중 절반이 남자가 저자다. ‘수운잡방’의 저자는 안동 광산김씨 가문의 탁청정(濯淸亭) 김유(1491~1555)와 그의 손자인 계암(溪巖) 김령(1577~1641)이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음식에 관심을 갖고 한문으로 된 조리서를 남긴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탁청정의 삶을 보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안동의 계암종가는 수운잡방의 음식과 술을 재현하고 널리 보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500년대 古조리서‘수운잡방’
김유와 손자 김령이 직접 저술
안동 중심 양반 식생활 담겨
진상품이던 숭어·대하에
삼색 녹두묵이 어우러진 탕
고급 반가음식 그대로 재현
백발도 검게 한다는 ‘오정주’
다양한 한약재·솔잎으로 담가
◆할아버지·손자가 저술한 수운잡방
‘수운(需雲)’은 ‘역경(易經)’의 ‘구름 위 하늘나라에서는 먹고 마시며 잔치와 풍류로 군자를 대접한다(雲上于天需君子以飮食宴樂)’는 구절에서 인용한 것이다. ‘잡방(雜方)’이란 갖가지 방법을 뜻한다.
수운잡방의 저자는 글자체 및 필체로 볼 때 2인의 저술이고, 시차를 두고 완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1책 2권으로 된 한문 필사본으로 상편(김유 저술)은 행서, 하편(김령 저술)은 초서로 되어 있다. 표지에는 ‘수운잡방(需雲雜方)’이라 적혀 있으며, 속표지에는 ‘탁청공유묵(濯淸公遺墨)’ ‘계암선조유묵(溪巖先祖遺墨)’이라고 적혀 있다. 서문과 목차는 따로 없다. 수운잡방은 계암 김령 종가(종손 김영탁)에서 소장해오다 최근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했다.
내용은 총 121개 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상편(1~86항)과 하편(87~121항)으로 나눌 수 있다.
상편에는 술 만드는 법 41항, 국수 만드는 법 1항, 식초를 만드는 법 5항, 김치를 담그는 법 14항, 장을 담그는 법 7항, 메주를 띄우는 법 2항, 과자를 만드는 법 1항, 씨에 대한 것 5항, 기타 조리법 7항 등이 담겨 있다. 하편에는 술 만드는 법 18항, 국수 만드는 법 1항, 김치 담그는 법 3항, 과자를 만드는 법 2항, 그리고 기타 조리법 11항이 있다.
양반가문에서 일상적으로 활용하던 조리법을 비롯해 다양한 조리법이 담겨 있어, 당시 안동을 중심으로 한 주변 지역의 식생활 형태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삼색어아탕과 오정주
계암종가는 수운잡방에 나오는 음식과 술을 되살려 널리 알리고 맛보게 함으로써 전통 반가음식의 우수성과 가치를 알게 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2009년에 설립한 수운잡방음식연구원이 그 중심이다. 계암종가 김원동 차종손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동안 30여 가지의 음식과 술을 재현했는데, 삼색어아탕은 그중 하나로 고급요리에 속한다. 고급 반가음식이었을 삼색어아탕(三色魚兒湯)은 재료부터가 귀한 것들이다. 진상품이었던 은어나 숭어, 대하가 주원료다.
은어나 숭어는 비늘과 껍질 등을 제거하고 포를 뜬 뒤 녹두가루를 입혀 끓는 물에 삶은 후 다져 둔다. 다진 살에 녹두가루, 흰 파, 된장, 후추 등을 넣어 새알 같은 완자를 만든다. 대하는 껍질을 벗겨 두 쪽으로 편을 뜬다. 그리고 삼색으로 만든 녹두 묵은 막대 모양으로 썬다. 은어를 삶아 건진 물에 집간장으로 간을 한 후 탕을 만든다. 완자와 녹두묵, 대하에 이 탕을 부어 삼색어아탕을 완성한다.
수운잡방음식연구원에서 재현해 일반인에게 맛보게 하는 술로는 오정주(五精酒)가 있다. 맛이 아주 좋다.
오정주는 황정, 천문동, 백출, 구기자 등 한약재와 솔잎을 재료로 쓴다.
담그는 법은 우선 이런 재료에 물을 일정량 부은 뒤 그 양이 3분의 1로 줄어들 때까지 졸인 다음, 멥쌀을 깨끗하게 씻어 곱게 가루를 내어 죽을 쑨 후 차게 식혀 누룩과 밀가루를 섞어 항아리에 담근다.
이 밑술을 담근 후 3일 지난 뒤 덧술을 담근다. 멥쌀을 여러 번 씻어 하룻밤 물에 담가두었다가 고두밥을 쪄 식힌 후 밑술과 섞어 항아리에 넣는다. 얼마 후 잘 익으면 떠서 쓴다.
수운잡방에는 이 오정주에 대해 ‘만병을 다스리고, 허한 것을 보호하며, 무병장수하고, 백발도 검게 되며, 빠진 이가 다시 난다’고 적고 있다.
◆수운잡방 저자 김유와 김령
김유는 성리학을 공부한 선비였지만, 그의 성품과 관심 분야는 남달랐다. 거의 남아있지 않은 그에 대한 짧은 기록이나마 살펴보면, 그는 음식과 술에 관심이 많고 그런 음식과 술을 선비들과 함께 나누는 삶을 즐겼던 것 같다.
안동에서 태어난 김유는 1525년 생원시에 합격한 후 무예에 정통해 무과에 응시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마침내 과거시험을 더 이상 보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사람의 인생은 세상에 태어나 즐거워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달렸을 뿐이다. 어찌 꼭 세상의 명예를 따라야 하겠는가”라고 말하면서 벼슬길을 단념하고 고향에서 평생 독서하며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였다.
호협(豪俠)한 성품의 그는 빈객을 좋아해 정자를 수리·확장하고 많은 손님을 맞아 즐겼다. 선비들이 이 고을을 지나면 반드시 찾아와서 즐겼고, 비록 가난한 사람이라도 친절히 대접하고 옳지 못한 사람을 보면 준엄하게 꾸짖었다.
퇴계 이황이 지은 묘지명에서도 그의 삶이 잘 드러난다.
‘아! 공은 어릴 때부터 자질이 뛰어났네/ 이미 시와 서를 익혔고 또한 육도삼략(六韜三略)도 배웠도다/ 문(文)에는 소과에 합격하였으나 무(武)는 뜻을 이루지 못하였네/ 시골에서 그대로 늙으니 남들이 애석히 여겼네/ 출세에 뜻은 못 폈으나 일신은 자족하여/ 좋은 곳 오천(烏川)에 밭도 있고 집도 있네/ 주방에는 진미가 쌓여있고, 독 속에는 술이 항상 넘치도다/ 제사하며 봉양하고 잔치로써 즐겼네/ 생전에 즐거운 일은 자리 위의 아름다운 손님이요/ 하늘에서 내린 자손은 뜰 앞의 난옥(蘭玉)일세/ 용감한 무신(武臣)이여 아름다운 문사(文士)로다….’
김유는 세 아들을 두었는데 ‘오천칠군자(烏川七君子)’에 속하는 산남(山南) 김부인(1512~84)과 양정당(養正堂) 김부신(1523~66), 설월당(雪月堂) 김부륜(1531~98)이다. 모두 유학에 독실하였다. 김부륜의 아들이 김령이다.
김령은 대의명분을 신조로 혼탁한 시절 속에서도 지조를 끝까지 꼿꼿하게 지키는 삶을 보여준 대표적 선비로 ‘영남제일인(嶺南第一人)’이라 불리었다. 39년 동안 쓴 일기 ‘계암일록’, 문집 ‘계암집’ 등을 남겼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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