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희망을 주는 동기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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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을 다지고 싶으신 분들 보세여

대한인 2013. 5. 2. 09:46

며칠 전 대학 4학년인 한 젊은이로부터 장문의 글 하나를 받았다.

자신의 과거에서부터 대학생활의 오늘에 이르기까지

평소의 생각을 아주 진솔하게 꺼내 놓고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그럴 때가 가장 난감하다.

정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젊은이에게

과연 내가 실질적인 보탬을 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혹여 내가 건네는 말 한 마디가

무척 힘들어하고 있는 그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고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다면

무엇인가 대답을 해주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글은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은 그에게 그리고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에게

평소 내가 전해주고 싶었던 생각의 편린들이다.

 

그러나 당장 눈앞에 닥친 취직 때문에 걱정이 많던 차에

취업에 도움이 되는 글이기를 기대했다면 이 글을 더 이상 읽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 기대를 충족하기에 이 글은 터무니없이 부족할 뿐더러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한가하게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기에 하는 말이다.

 

나는 물고기를 잡아줄 수는 없다.

물고기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알고 있는 곳을 알려주고

그 물고기를 잡는 데는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단지 내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뿐이다.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잡을 것인가는

물고기를 직접 잡아야 할 사람이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소 마음에 담고 있는 갈등과 번민을 누군가에게 꺼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생면부지의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은밀한 내면을 드러낸다는 것은

보통의 용기가 없이는 생각도 못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한 심경을 토로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삶에 변화가 있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의 발로라고 본다.

 

사실은 누구나 자신의 현실이나 일상의 삶에 만족하기 어렵다.

특히 오늘날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 젊은이들에게

현실은 만족보다는 불만을 넘어서서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할 만큼 암담하기만 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아무리 그러한 불평과 불만을 토로한다고 해도

단기적으로 무엇 하나 달라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난관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써

외부 환경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호전되기만을 막연히 기대하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젊음은 삶을 완성하는 단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특히 20대의 젊음은 세상에 태어나 육체적인 성장기를 거친 한 생명체가

비로소 자신의 정신적 삶을 시작하는 제2의 태동기다.

 

그러므로 20대의 젊음은 늘 끊임없는 방황과 시행착오에 신음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을 회피하려고 하거나 다른 어디론가 아예 숨어 버리려고 하면 오히려 더 큰 고통에 시달린다.

당장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더 가혹한 시련의 그림자가 30대 이후의 삶을 짓누를 것이다.

 

때론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애써 태연한 척 해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면에 침잠해 있는 근심과 걱정의 종양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평소에는 괜찮다가도 어느 순간 외부의 자극이나 충격이 가해지면

마음이 몹시 심란해지면서 잠복하고 있던 종양 덩어리가 불쑥 고개를 내밀고 마음을 쑤셔댄다.

 

이것을 제 때 진단하고 치료하지 않으면 점점 마음이 멍들고 곪게 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내면에서 본격적으로 탈이 나기 시작한다.
마음에 생긴 병이 자신을 꼼짝도 못하게 붙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갈수록 겁쟁이와 무능아로 세상을 살아가게 만들어 버린다.

 

그 자괴감과 무력감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딱 한 가지다.

자신의 과거를 냉정히 돌아보면서 앞으로 계속 그런 식으로 살아갈 때

과연 자신이 미래에 원하는 삶을 만날 수 있을 것인지 깊이 관조해보고,

만일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는 분연히 박차고 나갈 수 있는

강력한 용기와 실천하려는 의지를 확고히 키워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용기와 실천 의지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미래의 꿈과 목표다.
그것이 없이는 질식할 것 같은 현실을 박차고 나가더라도

막상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이러저리 엉뚱한 곳을 헤매다가

결국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가는 생활을 반복하게 된다.

 

너무 교과서 같은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단 한번이라도 정말 살고 싶은 자신의 미래를 직접 그려보고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지 그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침이 없는 인생을 멋지게 살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결코 간과해서도 안 될 중요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방황을 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진정한 자신의 꿈을 추구하지 못한 채 주어진 환경에 맞춰가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평소에는 알아채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어떤 자극이 자신을 꾹꾹 찔러대면

억눌려 있던 마음의 상처가 도지면서 가슴이 미어질듯한 통증과 내적 고통을 겪게 된다.

 

자신의 내면에서 갈등과 고통이 요동을 친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외면하거나 미루지 말고

당장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라는 영혼의 울림이다.
만일 그것조차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정말 자신의 삶에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의 생각인 만큼 확대해석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꿈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있어야 아무리 어렵고 난감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극복하고 이겨나갈 수 있는 강력한 힘과 에너지를 잃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꿈이 없이 살아간다.

아니 진정한 꿈을 포기해버린 채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간다.


그것은 대부분 꿈이 잘못 되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다.

단지 꿈을 이룰 때까지 끈질기게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잘못된 꿈이란 없다.

모든 꿈은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다.
다만 그것은 마음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노력과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노력이란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쏟는 정성이다.
꼭 이루어야 할 꿈이 있다면 그 꿈에 쏟는 정성이 바로 노력인 것이다.

 

그 노력 가운데 하나가 다름 아닌 공부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는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공부는 학교에서 받는 의무적인 교육과는 다르다.

공부는 스스로 하고 싶고 좋아서 하는 것이며

그렇게 볼 때 삶의 현장 어디에서든 우리는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며 공부를 해야 한다.

 

더욱이 학교 공부와는 달리 삶의 공부는 하기 싫은 것이 아닌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젊은이들은 지금부터 자신의 삶을 위한 제대로 된 공부를 해야 한다.

자신의 삶을 위해 진정으로 해야 할 공부가 무엇인지 아직 모르고 있다면
먼저 그것을 찾고 발견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

바로 자신의 진정한 꿈과 목표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어떤 일을 해도 늘 갈등과 번민이 따라 다닐 것이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는 좋은 공부가 되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삶에서 가장 추구하고 싶어하는 인생의 사명이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힘껏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강의와 저술과 컨설팅을 통해 남을 돕는 일이 참 좋다.

그 일을 할 때 나는 비로소 내가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낀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 그 순간이 되면 나는 몰입의 즐거움을 체험하곤 한다.

나도 모를 신비한 에너지가 내 안에서 꿈틀거리며 나를 열정의 세계로 이끌어 간다.

그래서 나는 강의를 할 때는 시간 가는 줄을 모를 때가 많다.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을 잊고 강의 그 자체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누구나 그런 에너지가 자신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다.

다만 그것을 깨우고 찾아낼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그 본연의 생명력이 빛을 발하도록 살아가기 위함이다.

 

그것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 세상은 어제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대학 4학년이라고 해서 초조하게 살 필요 하나도 없다.

초조해하는 것 자체가 아직 자신이 우물안을 벗어나지 못한 개구리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대학 4학년이라고 해봐야 기껏 20대 중반의 나이다.

그런데 마치 세상 다 산 사람인양 왜 그리 노쇠한 생각을 갖고 있는가?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손사래를 쳐봐도

사회에 나오면 햇병아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될 것이다.
앞으로 50년, 60년을 더 살아야 할 사람들이 뭐가 그리 조급한가?

 

내가 볼 때 정말 한심한 젊음은 앞으로 50년 동안 살아갈 인생의 설계도도 없이

마구잡이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겠다고 호기 하나만으로 덤벼드는 이들이다.

그렇게 해서 좋은 인생의 건축물이 지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날림으로 집을 짓거나 오막살이집 한 채 지으려면 아무렇게나 벽돌부터 쌓아 올려도 된다.
그러나 훌륭한 건축물을 완성하려면 먼저 기초를 탄탄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높이 올라가는 건물일수록 처음에는 지하부터 깊게 파기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 대학 4학년이라고 해서 마음이 조급한 나머지 벽돌부터 쌓아 올리려고 하면
얼마 못 가 더 이상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하게 된다.
그때는 건물을 허물고 처음부터 다시 짓든지 아니면 그냥 그대로 살아가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그 상태가 마치 자신의 운명인 것처럼 체념하고 살아간다.

세상에 대한 불만과 불평을 유일한 위안으로 삼으며 말이다.

 

 

 

  

아직 늦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대학 4학년인 지금 자신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20대 중반이 탄탄해야 30대가 튼튼하고 건강하다.
멋진 30대 이후를 위하여 지금 기초를 다지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마라.

 

지금 하는 공부가 하기 싫거든 진정 하고 싶은 공부가 무엇인지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싶어야 재미가 있고, 재미가 있어야 더 잘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한번 죽어라고 열심히 노력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가슴 설레는 미래를 만나기 위해서 오늘 무엇을 고뇌하며 살아야 할 것이지
차분하게 그리고 고독하게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들을 가져라.

자신을 기만하고 함부로 살아온 것에 대해 참회의 눈물을 흘려 봐라.
자신과 화해하고, 이제부터라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라.
 

칙칙하고 어둡고 찝찝하게 살지 않고, 밝고 환하고 유쾌하게 살아라.

 

할 수 있다.

정말 뭐든지 다 할 수 있다.

그대는 무엇이든 하기에 충분할 만큼의 시간과 열정과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이제부터 그대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그 열정의 심지에 불을 지피는 일에 투자하라.

 

다만 심지에 붙은 불이 활활 타오르려면 몇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

먼저 진정한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하는 과정이다.

다음으로는 자신이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강점을 중심으로 진짜 비전과 목표를 세우는 작업이다.

마지막으로 그 비전과 목표를 실천할 수 있는 시간관리를 생활화하는 것이다.

'삼위일체 자기경영'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삶이 뜨겁게 타오를 수 있다.

여기에 관해서는 6월과 7월 중에 이 블로그를 통해서 관련 글을 시리즈로 게재하기로 약속한다.

 

이제 내가 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갈무리할 시간이 되었다. 

1년 후의 미래는 지금 이 순간에 이미 시작되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 아니라 현재 속에 이미 와 있다.

지금 사는 모습을 보면 1년 후에 어떤 모습으로 살지 다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꾸고 싶은 미래가 있거든 내일이 아니라 오늘을 바꿔야 한다.

오늘을 어제와 다르게 살아야 그 결과가 내일 나타나는 것이며

오늘을 어제처럼 살면 내일은 보나마나 어제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창문으로 보이는 5월의 하늘이 참 화사하고 청명하다.
1년 후, 10년 후, 아니 50년 후에 바라보는 그대의 하늘도

오늘처럼 이렇게 항상 푸르고 싱그러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