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공자학원'을 세계의 이곳저곳에 세워
신유학이란 이름으로 유학을 부활을 외치고 있습니다.
천즈우(예일대) 교수는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요?
유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아래의
글을 참조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유교를 국교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중국에 날로 커지고 있다.
이제 유교를 따르는지 여부는 이미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문제가 된 것이다.
2. 실제로 신유학자들은 '중화문명으로 세계를 통합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중국정부는 수억 위안씩 들여 해외에 공자학원을
설립함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유교문화를 널리 퍼뜨리기 위해 힘쓰고 있다.
3. 효'와 '의무'를 핵심으로 하는 유교문화는
공자와 맹자가 가족 간 '암묵적인 거래'의 리스크를 줄이고
거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내놓은 것이었다.
4. 가정의 경제적, 정신적 보완기능이 제대로 역할을 발휘하려면
사회적으로도 반드시 이에 상응하는 가정, 가족문화가
형성되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가족 간 암묵적 금융계약이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뒷받침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유교와 기타 농경사회에서 발생한 전통문화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자 2500년 전 유교문화가 생겨난 배경이다.
5. 유교문화는 태어난 순서와 남녀의 차이로 모든 사람에게
등급을 매긴다. 그리고 출생순서에 의거해 우리 각자에게 일생 동안 변치
않는 책임과 의무를 부여한다.
우리가 성인이 되기 전이든 아니면 성인이 된 이후든,
심지어 자녀나 동생이 70세가 넘었다 해도,
각자의 등급에 상응하는 지위는 변함이 없다.
발언권은 항상 장자에게 있고 아랫사람들은 장자에게 복종해야 한다.
이같은 상하관계에서 '자아'란 존재하지 않는다.
6. 개인의 권리가 아닌 명문으로 정해진 상하관계는
과거 2500년간 중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이 같은 문화는 중국인의 개성과 창조력을 저해난 걸림돌로 작용했다.
개성이 배제된 사회는 안정적이었을지 몰라도
결국 이 때문에 중국은 오랜 시간 동안 배고픔을 면치 못했다.
7. 유교문화로 인해 중국인은 미국인, 인도인, 유럽인보다 개성이 없고
순종적이며 자신의 권리나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민족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신유가학파의 대표적인 인물인 장쥔마이가 1930년대에 남긴 말에...
"진나라 이후 2천 년간 이어져 온 전제군주제로 인해 노비와 같은 국민이
양산되었다. ..."
8. 사유재산과 보험 및 금융은 '자유, 민주, 법치'를 실현하는
경제적인 기반이다. 사유재산 없이 모든 것을 간부의 허락에 의존해야 한다면
개인은 자신의 권리를 내세울 수 있는 재산을 가질 수 없고,
결국 자유, 민주, 법치도 성립될 수 없다.
9. 중국이란 국가 자체의 존망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중국을 망하게 만든 문화체계인 유학을 가지고 인류를 이롭게 한다니,
용감해도 너무 용삼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10. 중국이 궐기하고 경제가 부흥하자 중국의 학계는 모든 공을
중국 자신과 전통문화에 돌리면서 세계 경제의 발전과는 무관한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결국 '안 되면, 남 탓, 잘 되면 내 탓'이라는 논리가 아닌가.
어쨌든 중국인에게 '중화문명'은 항상 최고였으니 이제 와서
'중화문명으로 세계를 통합한다'는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11. 그러나 제도와 문화의 탄생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중화문명으로 세게를 통합한다'는 주장을
과연 타당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천즈우, (중국식 모델은 없다), 메디치, pp.97-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