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행복함을 모르는 어리석은 엄마입니다
3일전 금요일 대장내시경을 받기전까지 난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미쳐 몰랐다.
그게 내 가장 큰 잘못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요즘들어 자주 배가 아팠다.
특히 밥을 먹은 직후에...
짜증이나 화를 낸 후에...
가끔 아파오던 배가 하루에 두세번씩 수시로 아파왔다.
흔히들 가지고 있는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겠거니 생각했다.
인터넷으로 뒤져 본 내용 또한 일치했기에 무식하게도 무시했다.
정말 아무 생각없이...
금방 끝내고 서방이랑 시은이랑 쌀국수 먹으러 갈 생각에 배고픔도 잊은채...
서방이랑 나름 데이트 하는거라고 마냥 들떠있다...
토요일 저녁...
병원에서 미리 받아온 약을 복용법대로 시간에 맞춰 물에 타서 마시고
배는 꿀렁꿀렁 거리는데 자꾸 뿡뿡이만 나오고 ...
울 시은인 그날따라 칭얼거리고 잠도 안자고 짜증을 냈다.
새벽부터 격렬한 반응이 왔다.ㅋㅋ
졸다가 화장실가고 잠들었다가
뭘해도 늘 2% 부족한 어설픈 색시가 신경쓰여 울 서방이 날 깨워준다.
서방이 깨워 다시 약을 마시고.
또 졸다가 화장실을 가고...
그 와중에 꿈을 다꾼다.
가지가지한다...ㅋㅋ
기억나는건 모르는 사람 뺨따구니를 죽어라 때렸다.
완전 큰 다이아 목걸이가 내꺼란다.
또 자다깨서 화장실을 가고...
그렇게 무한 반복을 하고나니 아침이다.
졸리고 피곤한 아침인데 유난히 꾸미고 싶다.
말도 안되게 날 밤을 새고 설사를 했는데 멀쩡하다.
집앞 병원에 내시경 받으러 가는 사람이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만지고 있으니 서방이 황당해 한다.
-너는 내시경 받으러 가는데 화장하고 머리까지 하고.
-그러게...그냥 꾸미고 싶네...오늘 걍 울서방한테 이쁘게 보이고 싶으네~
어이없는 울 서방 피식 웃는다.
11시 30분 예약 시간에 맞춰 강동경희대학병원 1층 소화기내과 내시경실에 15분전에 도착했다.
예약시간에 맞춰왔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울 시은이 오전 잠 주무실 시간이라 부득불 우겨서 유모차를 거기까지 가져갔던터라
시간도 있고 시은이도 재워야겠기에
나 때문에 잠 못이룬 불쌍한 울 서방 커피 한 잔 사주고 로비에서 데이트를 했다.
그날은 그냥 그랬다.
잠시도 떨어져 있기가 싫었다.
시은이를 재워 내시경실로 향했다.
위 내시경과 대장 내시경을 함께 해도 2-30분이 안걸린다는데...
정말 별거 아니라는데 맘이 불편하다.
탈의실에서 엉덩이가 쑥 나오는 당혹스런 옷으로 갈아 입고 옷장 문을 잠그는데
그냥 자꾸 기분이 이상하다...
밖으로 나와 서방한테 엉덩이 터진 옷 이야기를 하면서 너스레를 한참 떨고나니
어느새 내 차례가 되었다.
서방이랑 눈 한번 마주치고 코~자고 있는 시은이 한번 보고 들어갔다.
침대에 올라가 옆으로 돌아누우란다.
-마취 안해요?
식겁해서 물어 봤다
-누우시면 할거예요.
돌아누워 주사기랑 주변 기계들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간호사가 뭐라고 말을 하는데 건성건성 듣고 있다.
잡생각이 많아져서 귀에 안들린다.
눈을뜨니 일어나란다.
일어나 정신차리고 시계를 보니 2시30분이 넘었다.
헐...
20분이라더니...
나와서 서방부터 찾는다.
표정이 어둡다.
많이 피곤해보인다.
쌀국수는 다른날 먹어야겠군...언넝 들어가 서방 재워야겠당~
옷을 갈아입고 나와 아무 생각없이 나 왜일케 오래잤어???
-아프다고 엄살 많이 부려서 선생님이 마취약 훅 넣었단다.
-내가 그랬데?? 기억 안나는데...나 진상짓 한거야?? 아~강진상ㅋㅋ울서방 챙피했겠다
-근데 내시경보니까 용종이 넘 많아서 입원하라는데??
오늘 바로 입원해서 용종제거 수술해야 된데...
-왜??내시경하면서 용종있음 잘라낸다믄서...
-원래는 그런데 좀 많아서 그렇게 못한데...
-입원준비해서 5시까지 오래...
짐 챙기로 집으로 가는 차안이 적막하다...
서방 표정이 너무 슬프다...
그 적막 가운데 울 서방이 내손을 꼬~옥 잡는다.
-나영아...시은이랑 나두고 어디 가면 안되...알지??
시은이랑 나랑 너 없음 못사는거 알지??
-내가 어딜가~?? 갈데도 없어 ㅋㅋ
근데 왜그래?? 무슨일 있어??
왜??
-그냥...혹시 어디 갈까봐...절대 어디 가면 안되...너 없으면 나 죽어 못살아...
무슨일인진 몰라도 뭔가 일이 생겼다는건 동네 바보도 알겠다..
직설적인 울 서방 말을 못 꺼낸다...
자꾸만 머뭇거린다...
그런데 눈가에 눈물이 보인다...
-놀라지 말고 들어야되...약해지면 안되...알았지??
-어...안놀래...말해봐...
뭔일인가 싶어 뚫어져라 쳐다봤다.
- 너 암이래...
-나 암이래?? 무슨암?? 그래서 검사하는데 오래 걸린거야??
-위에는 용종이 몇개 없고 위에 있는 용종은 나쁜거 아니라는데...
대장이 엉망이래...암 덩어리가 막고 있어서 검사도 못했데...
내시경이 못들어간데...
-그래..??
무슨 깡인지 몰라도 난 그냥 덤덤했다...
-심하데?? 의사가 그래??
-어...좀 심하데... 의사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거야...
-확실한거야??
-응...
-그래...??
바로 입원하래??
-응...선생님은 너한텐 그냥 용종 때문이라고 말하라고 하셨는데...
그건 아닌거 같아서...
니가 알아야 될거 같아서...
나 너 없으면 못사는거 알지??
-응...나도 서방 없음 못살아~
집에 도착해서 대충 짐을 챙긴후 입원을 했다.
그렇게 3일전 나는 31살에 암환자가 되었다.
내 대장과는 더이상 인연이 아닌가보다...
대장을 다 포기해야 된단다.
내시경이 들어간 그 짧은 공간에 수십 수백개의 용종들이 비좁게 들어 앉았단다.
제발 다른 곳으로 전이만 되지 않았기를 기도중이다.
나에겐 이제 9개월 된 이렇게나 이쁜 딸 아이가 있고
남편이 있고 가족들이 있고 친구들이 있다.
난 이 나쁜 암덩어리 녀석들을 이겨낼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모든이들에게서 세상 어떤 것조차 나를 밀쳐낼 순 없다.
난 엄마이고,난 아내이기에 꼭 이겨낼 것이다.
지금껏 몰랐던 이 소중한 행복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