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박달재의 유래
해발 453미터!
산높고 골깊은 이 고개는 그 이름을 모르는이 드문 박달재 - <朴達峴> 이다.
치악산의 맥을 뻗어 백운산이 되고 그 줄기가 다시 남으로 달려
구학산, 박달산, 시랑산을 이루니
이 박달재는 동서로 봉양과 백운을 잇고 멀리는 제천과 충주를 잇는다.
1216년 고려의 김취려<金就礪> 장군이 거란의 대군을 여기서 물리쳤고
1268년 고려의 이 고장 별초군<別抄軍>이 또한 여기서 몽고의 군사를 막아냈다.
영남땅 도령 박달과 이 재 아랫마을 처녀 금봉이의 사연이 전해오기도 하고
박달은 태고적부터의 유래를 지닌 白山의 뜻이라고도 하나
이 오랜일들을 오늘날 뉘 소상히 알랴?
2. 박달재의 의미
박달재는 조선조 중엽까지 이등령이라고 불리어졌다.
이는 천등산 지등산이 연이은 령(嶺)마루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는 인등산도 함께 있어
천(天),지(地), 인(人)이 모두 갖추어진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박달재는 아득한 옛날 우리민족의 시원과 함께 하늘에게
천제(天祭 )를 올리던 성스러운 곳이다.
박달은 순수한 우리말로 한자 자체가 가진 의미는 없다.
박은 밝다, 크다, 하얗다, 높다, 성스럽다 등의 여러가지 의미를 갖고 있는데
이것이 한자어로 차용이 되면서
<朴, 白, 弗, 不, 發>등으로 쓰였다.
달(達)은 산이나 언덕등을 나타내는 알타이어어의 고어이며
단군신화 속에서 나타나는 아사달, 금미달 등이 그것이며,
특히 고구려에서는 지명에 많이 쓰였다.
그러므로 박달은 백산(白山)으로 풀이 되는데
이 백산은 태백산, 백두산등과 동일한 의미와 기능을 갖고 있다.
단군조선을 세우신 단군왕검의 단(壇)은 흔히
박달나무 단자로 이해되고 있으나 이는 박달 즉 백산을 의미한다.
따라서 단군왕검은 백산 또는 태백산의 임금을 말하는 것이다.
단군이래로 우리민족이 천제를 올리던 백산은 여러곳에 있다.
그리고 그 산들중의 하나가 바로 이곳에 있는 천등산 박달재인 것이다.
2.박달재의 사연
조선조 중엽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朴達)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도중
백운면 평동리에 이르렀다.
해가 저물어 박달은 어떤 농가에 찾아 들어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런데 이 집에는
금봉이라는 과년한 딸이 이었다.
사립문을 들어서는 박달과 눈길이 마주쳤다.
박달은 금봉의 청초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을 정도로 놀랐다.
금봉은 금봉대로 선비 박달의 초초함에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
그날밤 삼경이 지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해 밖에 나가 서성이던 박달도 역시 잠을 못이뤄
밖에 나온 금봉을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선녀와 같았다.
박달은 스스로의 눈을 몇번이고 의심하였다. 박달과 금봉은 금새 가까워졌다.
이튿날이면 곧 떠나려던 박달은 더 묵었다. 밤마다 두사람은 만났다.
그러면서 박달이 과거에 급제한 후에 함께 살기를 굳게 약속했다.
그러나 박달은 고갯길을 오르며 한양으로 떠났다.
금봉은 박달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싸리문 앞을 떠나지 앉았다.
서울에 온 박달은 자나깨나 금봉의 생각으로 다른 일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금봉을 만나고 싶은 시(詩)만을 지었다.
난간을 스치는 봄바람은 이슬을 맺는데
구름을 보면 고운 옷이 보이고
꽃을 보면 아름다운 얼굴이 된다.
만약 천등산 꼭대기서 보지 못하면
달 밝은 밤 평동으로 만나러 간다.
과장(科場)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박달은 낙방을 하고 말았다.
박달은 금봉을 볼 낯이 없어 평동에 가지 않았다.
금봉은 박달을 떠내 보내고는 날마다 서낭에서 빌었다.
박달의 장원급제를,그러나 박달은 돌아오지 않았다.
금봉은 그래도 서낭에게 빌기를 그치지 않았다.
마침내 박달이 떠나간 고갯길을 박달을 부르며 오르내리던 금봉은 상사병으로 한을
품은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금봉의 장례를 치르고 난 사흘 후에 낙방거사 박달은 풀이 죽어 평동에 돌아왔다.
고개 아래서 금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박달은 땅을 치며 목놓아 울었다.
울다 얼핏 고갯길을 쳐다본 박달은 금봉이 고갯마루를 향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달려
가는 모습이 보였다.
박달은 벌떡 일어나 금봉의 뒤를따라 가면서 금봉의 이름을 부르며 뛰었다.
고갯마루에서 겨우 금봉은 잡을 수 있었다.
박달은 금봉아! 한마디를 부르며 금봉이를 와락 끌어 안았으나 이는 허상일뿐
박달은 천길 벼랑에서 떨어지는 몸이 되었다.
이런 일이 있는 뒤부터 사람들은 박달의 죽은 고개를 박달재라 부르게 되었다.
울고 넘는 박달재
반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 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소 소리 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는 님아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 가소
도토리 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 주며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