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렵선대 신륵사에서 월악산 영봉에 오르는 등산로에 자리하고 있으며 신륵사에서 10여분 소요됩니다. 옛날 신륵사의 스님들이 참선하였다는 곳으로 높은 바위에서 떨어지는 옥수는 주변의 단풍나무, 떡갈나무와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이루고 있습니다.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4년(582년) 아도화상(阿度和尙) 창건한 고찰이며 이후 명승 원효대사가 중창하였고 조선조에 이르러 무학대사가 손질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수곡용담 수곡용담은 수문동골로 들어서면서 처음으로 만나는 비경입니다. 옛날 용이 하늘로 솟았다하여 용추라고도 부르는데 무지막지한 바위아래로 비스듬히 내려오는 용꼬리 모양의 물줄기가 포말을 일으키며 3단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장관입니다. 바위 위에는 가뭄이 들면 개를 잡아 피를 반석바닥에 바르고 기우제를 지내던 제단이 있고 그 옆으로는 뒷짐을 지고 올라가면 아들을 낳는 다는 전설이 담긴 아들바위가 우두커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뒷짐을 지고 아들바위를 올라보려 했습니다만 좀 어렵네요... 이 용추에는 또한 용녀(龍女)와 결혼한 사내가 딸 세 쌍동이를 용에게 빼앗겨 이곳에서 몸을 던져 죽은 후 용추와 용추폭포가 생겨났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병풍폭포 수곡용담에서 500여m 오르면 만나는 비경입니다. 말 그대로 병풍처럼 넓게 펼쳐진 깍아지른 바위 위에서 보기만 해도 시원한 물이 떨어지는 모습이 주위를 압도합니다. 폭포아래로 펼쳐진 넓은 암반과 시원한 숲은 계곡의 멋을 한층 돋습니다. 봄에는 목련꽃으로 여름에는 시린물과 울창한 숲으로 ,가을엔 현란한 단풍,겨울에는 설경으로 사시사철 제각기 멋을 가진 심산유곡 절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문동폭포 병풍폭포를 뒤로하고 구한말 의병들이 월악산으로 들어가던 오솔길을 따라 10여분 정도 올라가면 높이 20여m의 수문동폭포에 닿게 됩니다.햇빛에 반사되는 낙수의 모습이 장관이며 11월부터 얼기 시작하여 5월에야 녹는 얼음탑으로 유명합니다.
오히려 겨울철의 비경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곳이지요. 수량이 풍부한 여름철에는 떨어지는 소리만으로도 서늘함을 느끼게 합니다.
**관폭대 용하골짜기를 따라 오르다 처음으로 맞이하는 경치 좋은 곳입니다. 조선중기 병조판서를 지낸 오도일이 휴양하던 곳으로 암벽에 관폭대라 새긴 글씨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오래 전에 갓을 쓴 메기가 살았다는 전설과 함께 아늑한 골짜기를 따라 내려 오는 물이 합수가 되는 지점이라 수량이 풍부하고 용하선대와 이어진 넓고 희긋한 바위는 그야말로 한여름 피서지로 제격인 곳입니다. 수심이 깊은 곳이 많아서인지 곳곳에 걸려진 수영금지 안내판이 인상적입니다.
**용하선대
이 곳에서 신선이 와 놀았다고 용하선대라 하는 곳입니다.
마치 멍석을 깔아 놓은 듯 평평한 넓은 바위들이 층층을 이룬 곳으로 관폭대와 이어진 시원한 물줄기는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기에 족한 비경입니다.
**경운담 옛날 문종이를 많이 생산하였던 용하마을 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구름이 미친다는 곳입니다. 월악 영봉이 정면으로 보이고 철쭉군락이 만발하는 4월경의 경치가 가장 탁월하다고합니다..
**청벽대 다섯 개의 큰 암석이 돌층계를 이루고 굽이 돌아 흐르는 물은 넓은 소(沼)를 이루고 있는 곳입니다. 구한말 의당 박세화선생이 제자들과 함께 글을 짓던 장소로 알려져 있으며 바위 한 쪽으로 "무지개는 없어지고 연기만 막혀 엉켜 있음"을 묘사한 "虹斷烟鎖(홍단연쇄)"가 새겨져 있습니다. 청벽대는 문수봉으로 오르는 등산로와 갈라지는 경계지점이기도 합니다.
**선미대 선녀가 목욕을 했던 곳으로 전해집니다. 청벽사이로 물이 돌아 흐르며 호젓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이 곳 가을 단풍은 월악 백경중 하나로 꼽힐 만큼 빼어납니다. "앞산의 푸른 연기 몇 겹인가"라는 의미의 "前山幾重" 네글자를 새겨 놓았습니다.
**가학정도 특별한 지명이 없이 큰 바위 위에 가학정도(架학停棹)라 새겨져 있는 곳입니다. 주변의 크고 작은 바위들에 둘러 싸여 마치 칸막이를 쳐 놓은 듯한 휴게실을 연상케하는 곳입니다.
**섭운대 우거진 수목과 이끼긴 바위로 좀 어두운 분위기가 나는 곳입니다. 이러한 주변의 풍경을 이슬 머금은 바위꽃으로 묘사한 의미의 "巖花ㅓ 露"가 새겨져 있습니다.
**수용담 바위계곡사이로 옥수가 흘러내려 넓은 소를 이루고 있는 곳입니다. 거울같이 맑은 물과 울창한 수목으로 심산유곡의 정취를 한껏 느껴지며 100여m거리의 돌부처상으로 인해 아들을 원하는 많은 아낙네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곳이라 합니다. "산 높고 구름은 깊다"의 山高雲深(산고운심)을 바위에 새겨 놓았습니다.
**우화굴 바위에 직사각형 모양으로 돌이 떨어져 나간 반평 정도의 천연굴로 내부가 마치 인위적으로 쌓아 올린 것 같습니다. 다소 어두운 감은 있지만 물소리를 벗삼아 글을 읽기에는 아주 좋은 곳으로 과거에도 이곳에서 책을 읽은 선비들이 시짓기 대회에서 으뜸을 차지했다는 얘기도 전해집니다. 때로는 심마니들의 휴식처가 되기도 했던 이 곳엔 원조(원숭이새)가 봄의 한가로움에 취해 있다는 의미의 猿鳥春閑(원조춘한)의 4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세심폭 층계를 타고 내려 오는 얕은 폭포로 일명 용초라고도 부른다. 양쪽 봉우리 물속에 비친다는 의미의 兩峯夾映(양봉협영)의 글자가 새겨져 있으나 많이 마모된 채 남아 있습니다.
**활래담 용하구곡 중 가장 경치가 좋은 곳으로 각이 진 층계를 타고 흐르는 물살이 일품입니다. 옛부터 심마니들의 산삼이 많이 난다하여 목욕재계하고 소원성취를 빌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활래담이란 돌층계로 물이 살아 오른다는 의미입니다. 이름과 걸맞게 온몸을 오싹하리만큼 시원한 광경을 안겨다 줍니다. 바위위에는 "산골의 안개 개이고자 하네"라는 의미의 風烟欲開(풍연욕개)가 쓰여 있습니다. .
**강서대
용하구곡 중 마지막 9曲인 강서대(講書臺)는 활래담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용하계곡 골짜기 가장 깊숙한 산중에 묻혀 있는 명소입니다.
옛 선비들이 글을 읽던 장소로, 물을 가운데 두고 양 옆으로 넓은 반석이 어우러져 있는 곳이라고 전해지나 지금의 풍경은 편편하고 넒은 바위가 층층을 이루고 그 위로 물이 얕고 빠르게 흘러가고 있으며,그 옆으로 물이 닿지 않을 만큼의 높이를 가진 넓은 반석 위에 강서대(講書臺)라 새겨져 있어 이곳이 강서대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반석 아래에는 칼로 자른 듯한 바위가 계류를 내려다보고 우뚝 서 있으며 넓고 편편한 앞 면에 소립탁이(所立貞爾)라 각자(刻字)되어 있고, 반석 위쪽으로 계곡 지류와 만나는 곳의 제법 널찍한 바위 옆면에는 주자의 무이구곡가 중 9곡의 마지막 부분을 그대로 옮겨 적은 除是人間別有天 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 인간을 제하고 따로 하늘이 있는게 아니라 하니 인간이 하늘이요.. 그 곳에 서 있는 내가 하늘이 되는 순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