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집에서 말하는 ‘이런 점집 조심하라’
우선은 다 같은 ‘운명 알림이’라도 가려봐야 할 사람이 있다. 송파 김선생은 “점을 봐주는 사람도 사람인 이상 저마다 한계가 있으니 받아들이는 사람이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한다. 김선생은 다섯 가지 경계할 점을 귀띔한다.
① 확언을 믿지 마라:
좋은 얘기든 나쁜 얘기든
일도양단식 언사는 솔깃하지만 약보다는 독이 된다. 한창 자라는 아이에게 “똥물에 뒹굴 상”이라거나 가까스로 전셋집 마련한 사람에게 “지금 사는
곳을 떠나면 성공한다”거나 갓 아이를 낳은 산모에게 “산에서 도 닦아야 풀린다”는 말도 안 되는 극언을 하는 이들도 있다. 계속 겁만 주면
“예” 하고 당장 점집을 나와버리는 게 좋다.
② 신당이 화려한 데 넘어가지 마라:
부처님 신령님 줄줄이 모셔놓고 금붙이로 화려하게 장식해놓은 신당에 앉아 요상하게 차려입고서 신점을
쳐주는 사람은 대체로 자신이 없어 그런 ‘후광’에 기대는 것이라 보면 된다. 신이 내렸다 하면 대체로 조상신인데 부처님과 신령님이 무슨
상관이랴. 괜히 그런 곳에 찾아가서 무서움 타고 주눅 들면 있던 기운도 빼앗긴다.
③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
아기 신이 내렸다고 사탕 쪽쪽 빨고 앉아 있는 점쟁이도 있는데 아기가 세상 물정을 얼마나 알겠는가.
또 과거의 장군인들, 임금님인들, 요즘 세상사를 이해할 수 있나. 점은 서로 대화를 통해 보는 이와 보러 온 이가 지혜를 나눠갖는 일이다.
고리타분하거나 물정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면 아무리 용해도 내 삶의 ‘길잡이’가 돼줄 수 없다.
④ 무조건 좋고 무조건 나쁜 건 없다:
타고난 사주는 정해져
있지만 어떤 운이 들고 나느냐, 그걸 어떻게 소화하느냐,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은 바뀐다.
똑같은 사주라도 어떤 교육을 받고 교류하고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사주를 보고 신점에 기대는 것은 자기 성격, 건강, 직업, 가정의
특징을 파악해서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기
위해서다.
⑤ 부적이나 굿에 지나치게 의지하지 말라:
특별히 아프거나 집안에
우환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참고자료’로 1년에 한 번 정도
신수를
보는 게 맞춤하다.
별 탈 없으면 모르고 지내도 상관없다. 지나치게
비싼 부적을 남발하거나
굿을 하면 모든 게 해결되는데 얼마짜리를 얼마로
깎아주겠다거나, 자주 와서
지도편달을 받으라는 요구에 따르지 말라.
그러다 패가망신한다.
“사주가 자동차라면 운은 고속도로”
대체 사주는 어디까지 인간을 쥐락펴락하는
것일까?
사주가 뭘까. 사주명리학자 이정호씨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간 게놈지도의 출현으로 사람의 기질과 건강상태를 파악하는 시대가 됐지만 이것 역시 네 가지 염기
배열에 대한 분석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사주도 연·월·일·시를 분석하는 학문인데, 대대로 내려오는 우주의 분석 틀을 사람에게 적용해 성격과
건강, 운의 흐름 등을 연구하는 것이다.”
사주는 네
기둥 위아래 있는 여덟 글자의 배합으로 타고난 기질을 읽는 것이고, 명리는 그
결과 개인을 둘러싼 삶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흔히 ‘아이고 내
팔자야’ 하는 말은 네 기둥 위아래 여덟 글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하지만 결정론적으로 정해진 운명이란 없다.
그래서 최장재희 원장은 “사주팔자가 아니라 여기에 마음을 더해 사주 구자라고 하는 게 옳다”고 얘기한다.
최장 원장은
또 “사주가 자동차라면 운은 고속도로이고, 살아가면서 바뀌는 무슨무슨 해(년)는 일종의 휴게소”라고도 덧붙인다.
같은
사주라도 나에게 들고 나는 운이 어떤 것인지, 그걸 어떻게 잡는지 혹은 잘
보내는지에 따라 운명이 바뀐다는 말이다.
벤츠 타고 시골길 달리는
것보다 티코 타고 고속도로 달리는 게 훨씬 편할 수 있고, 쾌적한 휴게소를
만나 잘 쉬거나 기운을 보충하면 여행이 훨씬 즐거운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사주보다는 관상, 관상보다는 심성”(송파 김선생)이라고 말한다.
타고난 사주가 있어도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따라 얼굴이 달라지고, 얼굴은 곧 마음에 기대어 바뀌기
때문이다.
꼭 점쟁이가 아니라 오래 살아와 삶의 지혜를 터득한 ‘인생
내공’ 깊은 어르신들이 늘상 하는 얘기도 이렇다.
그렇다면 타고난 사주는 바꿀 수 있는
것일까?
바꿀 수는 없지만 극복하고 이겨낼 수는 있다. 혹은 예방하고
여파를 줄일 수는 있다.
점을 치고 사주를 보는 것은 일종의 ‘일기예보’를 듣는 것과 같다고 한다.
똑같은 비가 와도 폭삭 젖어 벌벌 떠는 사람이 있고 우산을 잘 챙긴
덕에 잘 피하는 사람도 있다. 혹은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 비가 그친 뒤 길을
나서는 사람도 있다.
바람이 불어도 땡볕을 만나도 마찬가지다.
자연의 순리는 거스를 수 없겠지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양지차다.
비와 바람과 땡볕은 땅을 비옥하게 해주기도 한다.
내가 내 사주를, 내 운명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