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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 딸과 손발이된 어머니 ‘마음의눈’으로 본 법정풍경

대한인 2013. 5. 22. 19:21

시각장애 딸과 손발이된 어머니 ‘마음의눈’으로 본 법정풍경

 

 
“법이 우리를 외면하지 않았으면 해요….”

태어날 때부터 앞을 못 보는 전인옥(45·여) 씨와 그 딸의 눈이 되어온 어머니 황효분(75) 씨 모녀. 이들은 6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고법 형사3부 법정을 찾아 재판을 지켜본 뒤 이렇게 말했다.

이들 모녀는 장애인 성폭행 피해자 상담사가 되기 위해 함께 교육을 받고 있는 중인데, 그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장애인 사건의 재판을 보기 위해 법원을 자주 찾는다. 이날 모녀가 ‘지켜본’ 재판은 정신지체(2급)를 앓고 있는 친딸(21)을 성폭행한 인면수심의 아버지(51)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 앞을 못 보는 시작장애인인 전 씨는 ‘마음으로’ 재판을 본다고 했다.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은 어머니 황 씨가 설명해 주었다. 전 씨는 재판이 끝난 뒤 “사람들은 정신지체인들의 인지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범죄피해를 쉽게 잊어버릴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들에게는 정말 씻을 수 없는 상처”라고 말했다.

전 씨가 ‘마음의 눈’으로 바라본 법원은 어떤 모습일까.

“요즘은 동사무소도 정말 친절해요. 비록 눈은 안 보이지만 동사무소에서 일을 보는 데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지만 법원에서 들리는 직원들의 목소리는 무척 고압적이라서 주눅 들 때가 많아요.”

어머니 황 씨는 딸에게 재판 정황을 귀엣말로 이야기하다 법정 경위한테서 “조용히 하라”며 면박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말했다.

전 씨는 “눈이 안 보이기 때문에 귀에 더 의지해야 하는데 판사님 말씀이 잘 들리지 않을 때도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판사가 몸을 뒤로 젖히면서 입이 마이크에서 멀어지다 보니 말소리가 작게 들린다며 어머니 황 씨가 설명을 보탰다. 전 씨는 “교육과정을 마친 뒤 상담사로 장애인 범죄피해 여성들을 만나게 될 때 ‘법은 만인한테 평등하니 포기하지 말라’고 용기를 주고 싶어 법정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재판을 지켜보노라면 ‘법이 우리 장애인들을 외면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고 그는 말했다.

두 사람은 가을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한 장애인학교 교감이 같은 학교의 아홉 살 난 여학생을 장기간 성추행한 사건의 재판이 진행되는 법정도 찾았다. 궂은 날씨 때문인지 방청석에는 두 모녀밖에 없었다.

자신의 딸에게 몹쓸 짓을 한 교감을 차마 쳐다볼 수가 없어 법정 밖에 있던 피해 아동 어머니는 두 모녀에게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며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황 씨는 “장애아를 둔 부모 입장에서는 이런 끔찍한 일도 다 부모인 자기의 잘못 때문에 생긴 것으로 생각된다”며 “이 사람들한테는 법밖에 의지할 곳이 없다”고 말했다.

장애인성폭력피해자 상담사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시각장애인여성회 이낙영(李樂英) 회장은 “성폭력 피해를 본 장애 여성이나 가족들은 사회의 낙인이 무서워 외진 곳에서 홀로 싸우고 있다”며 “사건에 대한 정확한 진실규명과 피해자 인권을 위해서라도 수사 단계나 재판 과정에 장애인의 특성을 잘 아는 전문 상담사가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정효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