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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다산초당

대한인 2013. 5. 27. 20:25

[강진] 다산초당




다산초당 오르는 길















































제자들이 기거하던 서암











서암의 다성각











다산초당은 조선후기 대표적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선생이 1801년 강진에 유배되어 18년여 동안 적거생활하시는 동안『목민심서』『경세유표』등
500여권의 방대한 책을 저술하면서 실사구시의 실학을 집대성한 곳이다.











처음에는 강진읍 동문밖 주막과 고성사의 보은산방, 제자 이학래 집 등에서 8년을 보낸 후 1808년 봄에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겨 해배되던 1818년 9월까지 10여년 동안을
다산초당에서 생활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저술을 하였으며, 다산의 위대한 업적이 대부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추사가 쓴 다산초당 현판











다산 정약용선생은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28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병조참지, 형조참의 등을 지냈으며
1801년 신유사옥으로 경상도 장기로 유배되었다가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다시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솔방울을 태워 차를 끓이던 반석인 다조











다조와 서암











차를 끓이던 약수인 약천











다산선생이 직접 "丁石"이라는 글자를 새긴 정석바위























정석바위에서 본 서암











정석바위에서 본 다산초당











연못 가운데 조그만 산처럼 쌓아놓은 연지석가산



































연못의 물고기를 바라보던 관어재











관어재 앞 툇마루











관어재 툇마루에서 본 연못











연못과 다산초당











다산선생이 거처하던 동암























다산선생의 글자를 집자한 다산동암 현판











추사가 쓴 보정산방 현판











동암











흑산도로 귀양간 둘째형 약전을 그리며 고향이 그리울 때 심회를 달래던 장소에 세워진 천일각











천일각에서 본 강진만





사진 / 금마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