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외교관이 정성을 들인 책을 내놓았습니다.
한반도 통일을 둘러싼 그 간의 상황과
앞으로의 전망을 조심스럽게 정리한 책입니다.
현장과 경험을 잘 엮어서 한반도 문제의 전모를 이해하도록 쓰여진
책입니다. 이 내용 가운데 중국이 갖고 있는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인식만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중국은 북한의 안정이 중국의 핵심적 이익이 된다는
전제하에 김정은 세습, 한반도 통일, 북한 핵무장 등의 몇 가지
현안에 대해 아래와 같은 입장을 취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2. 첫째, 중국은 북한의 김정일 체제와 김정은 세습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북한 정치 체제와 중국 정치 체제에는 큰 차이가 없다.
공산당 1당 체제를 유지하는 중국은 북한의 정치체제를 비판할 처지가 아니다.
북한의 세습제가 북한 체제를 유지시키는 데 필요하다면
중국으로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중국에게는 북한의 안정이 무엇보다 큰 이익이다.
3.둘째, 중국은 남한에 의한 북한 흡수통일에 호의적일 수 없다.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나라를 자기 손으로 통일시켜주는
것은 타국 민족주의에 대한 낭만적 동정이다.
중국은 잠재적 또는 실제적 위협이 될 수 있는 한반도 통일에
대해 당위론적인 찬성을 할 수 있겠지만 실질적 지원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 주도의 한미동맹에 의한 통일이라면 더더욱 이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4. 셋째, 중국은 북한이 핵무장을 하려는 동기에 대해 일면 공감하고 있다.
물론 중국도 핵 확산의 위험성을 우려하고 있지만,
안보 불안이 해소되어야 핵을 폐기할 수 있다는 북한의 동시성 주장에
동조한다. 이것이 그동안 북한이 주장해왔던 일괄타결안이다.
중국은 북한이 남한에 위협적인 만큼 남한과 미국이 북한에 위협적인 국가라는데
북한과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대미 공포를 이해하고 있다.
여기에 북핵 폐기 협상의 딜레마가 있다.
5. 넷째, 북한의 안보불안에 대해 중국이 일정 부분 이해해주는 측면이 있다.
이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폭격 사건에서 중국이 취한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6. 다섯째, 한반도에서의 무력 충돌은 중국의 국인에 배치된다.
중국의 국내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서 볼 때
미국과의 군가적 대결은 모험할 수 없는 것이다.
7. 이제 중국은 깨닫기 시작했다.
북한이 붕괴는 자칫 중국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한반도에 생각보다 빨리 통일이 와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서 7천만 명의
인구를 가진 통일 국가가 들어설 경우, 중국은 그런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중국에 정치적 개혁과 개방의 목소리가
거세질 것이라는 우려는 자연스럽다.
8. 이런 시각에서 볼 때 북한이 끝내 스스로 서지 못하게 될 정도로
수액이 다 빠지게 되면, 북한을 도와 북한이 진정 중국에 의지하게
만들면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한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이상으로 강화되고, 북한의 민족주의적 자긍심과 중국에 대한
역사적 저항감은 둔화될 것이었다.
9. 중국은 북한을 지하에서 나오도록 한 다음 숨통을 조였다 풀었다
하면서 핵을 포함한 주요한 양자 및 다자적 문제에 대해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중국에게 대부 역할을 주문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10. 북한에서 긴급한 대규모 소요 사태나 정변이 발생한다면,
김정일은 치안 유지 또는 한미동맹군의 진입 저지를 위해 평화 유지
명분을 제시하며 중국군의 지원을 요청할 것이다.
이럴 경우 북한에 친중 군사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전복의 위험에 직면해 중국의 군사개입을 요청하는 것은 유지에 집착하는
권력의 속성상 김정일에게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판단일 것이다.
11. 우리는 중국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중국에 대한 걱정은 증강하는 중국의 현재 군사력 때문이 아니라
중국이 12억 이상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과
중국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정치인들이나 외교관들은 한반도
통일은 남한이 주도할 것이라는 전망을 예사로 말하곤 했다.
그러나 G2로 부상한 중국은 한반도 분단에 대한 평가를
달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한국이 주도하는 통일이 이루어지면 한반도 전체가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렇게 전망할 때 중국으로서는 통일보다는 현재와 같은
분단 체제를 지속하는 것이 자국의 이익이라고 분석하고 있는 것 같다.
-출처: 이수혁(전 6자회담 수석대표이자 차관), (북한은 현실이다),
21세기북스, pp.176-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