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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혼, 성대한 축제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회혼(결혼 60주년)은 회갑(61세 생일), 회방(과거급제 60주년)과 더불어 3대 경사로 손꼽았다. 조선 중기의 문신 이식(李植)의 시에서 볼 수 있듯 ‘60년 해로’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필립공,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부부, 김영삼 전 대통령 등 결혼 60주년의 회혼식을 맞은 부부들은 한결 같이 그 비결은 ‘서로 사랑하는 것’ 이라고 했다는데.. DNA부터가 다르다는 남녀가 오랜 시간을 함께 사는 것. 어떤 비결이 있을까?
남녀의 유전적인 차이
6살짜리 남자 어린이들과 여자 어린이들에게 곰인형을 쥐어 주었더니 남자 어린이는 곰인형을 사물처럼 던지거나 주고 받으며 가지고 논 반면, 여자 어린이들은 사람 아기를 다루듯 감정을 부여한 하나의 대상처럼 가지고 놀았다는 어느 실험의 결과처럼, 남녀의 사회적 학습 결과를 이야기 하기 이전에 유전적인 차이는 무시할 수가 없다. 이렇듯 유전적으로 차이가 나는 남자의 뇌와 여자의 뇌가 평생을 함께 산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많은 서로 간의 부딪힘과 배려가 있어야 하는 것일까.
결혼, 싸우면서도 계속 사는 이유?
1년의 열애 끝에 서로 죽고 못 살아 결혼을 하였다는 서모씨(28)부부는 아침마다 싸운다. 그 발단은 치약을 가운데부터 짜느냐, 수건은 똑바로 걸어 놓느냐, 양말을 뒤집어서 벗어놓느냐는 것. 그렇게 으르렁대며 싸우지만,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돌아서면 까맣게 잊는다. 그렇게 싸우면서도 왜 결혼 생활을 지속하느냐는 물음에 서씨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편하잖아요. 그래도 이 사람은 내 편 일거란 확신이 있어요. 그런데 그런 것보다 이제는 신뢰와 책임감인 것 같아요. 그리고 사랑하잖아요.”
우리의 뇌는 남녀가 가슴이 뜨거워지는 불꽃 같은 사랑의 단계를 거치면서 점차 불꽃을 내는 호르몬은 줄어들고 대신 신뢰와 애착을 형성하는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분비되기 시작한다. 이 옥시토신의 농도가 올라가면 함께있는 상대방에게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상승폭이 줄어드는 효과도 나타난다. 이러한 뇌 호르몬의 작용이 부부생활의 유지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부부 사이, 갈라서면 웬수
하지만, 이런 남녀의 사이도 사랑이 식으면서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에는 콩깍지가 씌여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다른 부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비교를 하기 시작한다. 무촌인 부부가 갈라서면 웬수라 하였던가. 한 때는 죽고 못 산다던 부부, 사이가 멀어지고 감정의 골이 파이면서 점점 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기도 하는데…
즉문즉설로 유명한 정토회의 법륜스님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부부 사이에 부딪힘이 일어나는 이유는 내가 모자란 부분을 상대가 채워줄 것을 기대하여 그렇다. 하지만 막상 결혼해 보니 상대가 내가 기대한 것에 미치지 못하다 보면 그때부터 갈등이 일어난다.”며, “내가 온전하다면 상대에게 바라는 사랑이 아니라 상대를 더 배려하고 채워줄 수 있는 사랑을 할 수 있게 된다”고 이야기 한다.
배려와 사랑, 고전이지만 정답
“배려, 사랑 이런 이야기 참 좋은데… 나는 분명 사랑해서 이렇게 했는데, 왜 싸우는 걸까?” 하고 생각하는 분이 있으시다면, 한 번 생각 해보자. 상대를 사랑한다면 상대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는데, 진정으로 상대의 의사를 존중하였는지를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이야기하면, 내가 사과하면 상대는 당연히 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심지어는 상대가 사과를 받지 않으면 오히려 화를 내지는 않았는지. 이것은 마치 산에서 꽃을 보고, 꽃의 의사를 묻지 않고 꺾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내가 꽃이 예뻐서 꺾으니깐, 너는 참아야 돼.”
서양 속담에 ‘바다에 나갈 때는 일주일을 기도하고 전쟁터에 나갈 때는 한 달을 기도하고 결혼에 대해선 평생을 기도 해야 한다’고 한다. 바다에 나가는 것 보다, 전쟁터에 나가는 것 보다 결혼을 하여 생활한다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바다와 전쟁터보다 헤쳐나갈 것이 더 많은 부부생활, 끝까지 잘 이루어 나가기 위한 정답. 고전적인 답이라 한마디 할 수 도 있겠지만, 오랜 시간을 수도 없는 검증 끝에 살아남은 답, 그것이 정답이다.
나의 배우자에게 사랑의 훈장을 달아주자
부부이던, 연인이던 서로 다른 남녀가 맞추어 간다는 것. 그 것 만으로도 우리는 인생에 있어서 큰 배움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아닐까? 대학시절 어느 여자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부부가 결혼해서 20년간 이혼 안하고 사는 게 얼마나 대단한 줄 알아? 이 나라에서 이혼 안하고 사는 부부들한테는 다 훈장을 줘야 돼!”
훈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늘 그 동안 나와 함께 지내온 나의 배우자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 건네 보는, 마음의 훈장을 선물하는 것이 어떨까.
글. 조채영 chaengi@brainworld.com | 도움. 법륜스님 ‘스님의 주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