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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세 장애인 딸 50년간 돌봐온 101세 어머님

대한인 2013. 7. 20. 04:47

 


 

  68세 장애인 딸 50년간 돌봐온 101세 어머님 
"불쌍한 딸을 위해서도 오래 살아야지, 
내가 세상을 뜨면 혼자서 어떻게 살겠소" 
광주시 북구 우산동 주공아파트에 사시는 올해 101세인 박옥랑(朴玉郞) 할머니! 자손들의 극진한 봉양을 받아도 모자랄 나이에 몸이 
불편한 68세 된 딸을 돌보느라 
지금도 손에 물기가 마를 날이 없다. 
딸 조의순(趙義淳)씨가 전신마비상태로 누워 있기 때문이다. 
이들 모녀는 현재 광주시내 13평 영구 임대아파트에서 
서로를 거울 삼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朴씨 할머니에게 불행이 찾아든 것은 1939년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朴씨가 출근한 사이 가정부에게 업혀 있던 
네살배기 딸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머리와 목을 심하게 다쳤다. 
朴씨는 고개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딸을 업고 
용하다는 병원, 한의원, 침술원 등을 찾아 다녔지만 허사였다. 
그 뒤부터 딸은 방에 누워서 천정만 보며 살아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남편마저 집을 나가버렸다. 
朴씨는 딸을 언니집에 맡기고 학교에 계속 나갔다. 
별다른 생계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1953년 전남 나주시 영산포여중에서 30년의 교사생활을 마감했다. 
"딸의 상태가 악화된데다 생업이라는 핑계로 
아픈 딸을 혼자 방에 방치했다는 생각이 퍼뜩 든 거죠." 

 

교직을 그만 둔 뒤 朴씨는 딸에게 글공부를 시켰다. 
종이에 글을 써 보이며 한글은 물론이고 한자까지 가르쳤다. 
학교 교과서와 문학서 등도 읽어줬다. 
딸은 금방 글을 깨우쳐 갔다. 때로는 시도 읊조렸다. 
몸을 움직이지 못할 뿐 머리는 영리했다고 朴씨는 기억한다. 
딸의 손발 노릇을 하느라 늙을 틈도,아플 여유조차 없었던 
朴씨도 얼마 전부터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기억력도 크게 떨어졌고. 朴씨 할머니는 "딸은 나한테 몸을 기대고, 
나는 점차 흩어지고 있는 정신을 딸에게 맡기고 사는 셈이죠"라며 웃었다. 
그녀는 자신이 저 세상으로 간 뒤 딸이 
어떻게 살지를 생각하면 아득하다고 했다. 
"어미로서 이렇게 생각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내가 세상을 등질 때 딸애도 함께 갔으면...!" 하는 바램이지요. 
국민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朴씨는 정부에서 매달 나오는 
얼마 되지 않는 돈도 아끼고 아껴 한 달에 몇 만원씩이라도 꼭 저축을 한다. 
자신이 죽은 뒤 딸 혼자 살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에서다. 
딸 趙씨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분이 나의 어머니"라며 
"오늘까지 산 하루 하루가 모두 어머니의 덕"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朴씨가 사는 아파트에 간병 봉사를 하러 다니는 유상엽(44.여)씨는 
"할머니는 딸을 돌봐야 한다는 정신력 때문에 건강하게 사시는 것 같다," 며 
"이들 모녀를 볼 때마다, 모정(母情)은 위대하고 지고(至高)하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토록 끈질긴 모정의 실타래가 얼키고 설킨 
기나긴 100년의 삶의 언덕을 기대는 어머니, 곱디고운 중등 여선생님! 
청춘을 불살라 반세기를 딸 위해 보낸 세월 전신마비의 딸 위한 
간호에 늙지도 못했다는 어머니 이 어머니의 청춘은 그 누가 보상하리오. 
장애아가 된 네살배기 딸이 이제 68세가 되었고 
어머니의 연세 어언 101세 아픔의 강물이요 한 맺힌 세월의 바다였으라 
눈물로 얼룩진 모녀사랑에 자식 위해 늙지조차 못한 모성애 
혼자 남아 고생할 자식 염려에 죽어도 같이 죽고 싶다는 
이 세상 가장 아름답고도 고귀한 자식사랑 주신 어머님 
당신은 참으로 위대한 우리 모두의 어머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