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도리인오대덕목(五大德目)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지키자. 태극기, 애국가, 무궁화, 한글 사랑은 애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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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 강은교속 깊은 마당에 떨어지는 비처럼 늘 함께 계시는 듯 그리운 내 아버지 얼마나 고독하셨을까, 아버지는. 열심히 걸어오신 삶이 후회스러우면서
문득 억울하다고
생각하진 않으셨을까, 아버지는. 한밤중에 일어나 앉으니,
저 가로등처럼 구부정히 서서
골목을 불현듯 지나가시는 아버지가 보이는 듯하다.그런데, 어느 날 보니 나도 뒷 허리를 문지르고 있었다,
내 어린 시절의 아버지처럼.그런데, 어느 날 보니 나도 소금물에 눈을 씻고 있었다,
내 어린 시절의 아버지처럼.그런데, 어느 날 보니 나도 안경을 들고 있었다,
내 어린 시절의 아버지처럼.그런데, 어느 날 보니 나도 골목을 멍하니 내다 보고 있었다,
내 어린 시절의 아버지처럼.그런데, 어느 날 보니 나도 몇 개의 알약을 먹고 있었다,
내 어린 시절의 아버지처럼.그런데, 어느 날 보니 나도 한약 한 봉지를 고개를 치켜들고 마시고 있었다,
내 어린 시절의 아버지처럼.아버지는 그때, 그러니까 내가 아주 꼬마였을 때,
어린 딸을 바라보시며 문득 어떤 생각이 들곤 하셨을까.
그동안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문득 드셨을까?
이제부터라도…
하며 굳게 결심하고 계셨을까. 그때 그렇게 하지 말 것을 하는,
후회로 가슴 아프고 계시진 않았을까.
어느날 불현듯 유서를 써두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계시진 않았을까.
거기엔 당신이 억울한 이유도 조목조목 함께 쓰고 싶으시진 않으셨을까.
그동안 무엇인가 열심히 원고지를 긁적거리며,
무엇인가 늘 세상을 향하여 중얼거림과 외침을 던진 일이 참 쓸데없는 짓이었구나,
하고 생각하고 계시진 않으셨을까.
다만 어린 아이를 보며 그 아이, 참 눈부시구나, 하시며 미소를 짓고 계시진 않으셨을까.
아마도 세상으로부터 한없이 밀려났다는 생각을 하시며.
내가 요즘 연속방송극 같은 것을 열심히 보는 것처럼
신문 연재소설을 읽으시고 라디오 방송극을 열심히 들으신 것이었을까.평생 신념이 중요하던 아버지에게 그때도 신념은 최후에 신봉하여야 할 그 무엇이었을까?
이상의 아름다움, 그런 것을 그때도 만지작거리고 계셨을까.
아버지의 맨 마지막 시간에 든 생각은 어떤 것이셨을까. 절망이었을까,
희망이었을까.
어머니였을까, 딸이었을까. 신념이었을까 빛이었을까,
빛이 뿌옇게 드나드는 창이었을까.'우리가 사는 것, 아마 다 어느 날의 동화일거야. 동화치고는
너무 고통스러운, 가난의 동화, 소외의 동화, 고독의 동화, 투쟁의 동화,
이상의 동화일거야'라고 중얼거리시며,
'부재가 우리의 운명이리. 새소리에 새소리는 없으리,
우리는 마주오는 불빛밖에 볼 수 없으리'라고 중얼거리시며 마지막 골목길을 걸어가셨을까.
아니 지금 걸어가시고 계시는 걸까.
그러나 아버지라는 공간은 수천 아버지가 들끊는 동심원 같은 공간이다.
그 동심원 속의 속에, 마치 핵같은 점으로 아버지는 들어있다.
아버지의 뼈 속에 불던 바람은 나의 하늘에도 불고 있다.
아버지의 눈썹 밑을 적시던 비는 나의 하늘에도 내리고 있다.
아버지의 어깨 위를 하염없이 비추던 황혼은
나의 하늘에도 내려 앉아 있다.어느 날 푹푹 내리던 하얀 눈발이 시려운 아버지의 이마.
시금치 나물을 유난히 잘 잡수시던
아버지의 위장, 그 위장 속으로 깊이 깊이 나는 내려간다.
그래서 하나가 된다. 나는 또 하나의 시간이 된다.
아버지는 아름답다. 시간이므로 아름답다.
책갈피에 끼인 어느 날의 단풍잎같은 존재이므로 아름답다.
가끔 꺼내보는 아버지이기에 아름답다. 어머니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어느 유원지 사진 속에 서 계신 아버지이기에 아름답다.
아름다운 아버지는 속깊은 마당이다.
마당에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이다. 그것은 마당 위에 고독한 웅덩이를 남긴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불멸이다. 어머니가 불멸이듯이,
모든 숨이 불멸이듯이. 아버지는 또한 긴 울타리다. 아버지는 저 지붕이다.
내가 언젠가 진짜 괜찮은 시를 쓴다면 거기 태어나실 꿈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 아버지의 꿈을 쓰지 못했다.
그러기에 아버지는 희망이다.
젊은 시절에 하셨던 일들을 다시 젊은이가 하는 양을 보고 눈부셔지셨을 아버지는 창이다.
언제나 활짝 열리는 과거의 미래이다.
미래의 과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