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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00년 전의 편지 남편이 죽은 후, 장례전까지의 짧은 시간에 씌여진 편지에는 지아비에 대한 아내의 그리움이 사무치게 드러나고 있다. 하고픈 말을 맺지 못한 채 종이가 다하자, 아내는 모서리를 돌려 다시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모서리를 채우고도 차마 끝을 맺지 못한 글은 편지의 처음으로 돌아와 거꾸로 씌여지고 있다. 2. 미투리의 정체 관에서는 아내가 쓴 편지 외에도 많은 유물들이 수습되었다. 그 가운데 부부의 애틋 한 사랑을 짐작케 하는 물건이 있었는데, 바로 남편의 머리맡에서 나온 미투리였다. 이 미투리의 재료는 사람의 머리카락이었다. 그리고 미투리를 싸고있던 한지에는 아내가 쓴 글이 적혀있었다. 3. 무덤의 주인은 누구인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비석마저 유실된 채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이 무덤은 과연 누구의 무덤이었을까. 관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무덤의 주인이 고성 이씨 가문의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4. 젊은 아내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 앞에서 남편의 뒤를 따르고 싶다는 말로써 그 슬픔을 대신한 이응태의 젊은 아내, 그녀는 누구였을까. 그리고 지금 어디쯤에서 홀로 잠들어 있는 것일까. 5. 부부의 사랑과 결혼 ‘어여삐 여기고 사랑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시대에는 남녀유별, 남녀칠세부동석 등의 유교이념이 지배하던 시기였다. 때문에 남녀간의 애정표현은 점잖치 못한 일로 여겨 터부시했을 것이다. 그런 조선시대에 사대부 집 여인이 어떻게 ‘사랑한다’는 글을 편지에 쓸 수 있었을까. 베일에 가려진 이응태 부부의 사랑과 결혼생활에 대해 알아본다. 6. ‘자내’ 라는 호칭의 의미 이응태의 처는 편지에서 남편을 가리켜 ‘자내’ 라는 말을 모두 열네번 사용하고 있다. 요즘의 부부라 하더라도 아내가 남편을 자내라고 부르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어떻게 이응태의 처는 남편에게 ‘자내’ 란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었던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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