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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왕궁은 어디에 있었나

대한인 2013. 8. 31. 09:16
 
   
 
   




 
신라의 왕궁은 어디에 있었나
찬란했던 천년의 역사, 신라의 수도가 경주이다.
그래서 경주는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할 정도로 문화유산이 풍부하다. 하지만 태평성대를 누렸던 경주의 모습과 신라의 궁궐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세부설명
  1. 신라인의 주택

경주시 동천동에서 53개의 우물이 발견되었다. 그 주변에서 발견된 건물의 기둥 자리인 기단, 집의 안녕을 빌어주는 진단구, 출입문의 흔적들... 경주에서 발견된 집터의 자리 위로 천년 전 신라시대 주택의 모습이 다시 살아난다.


2. 신라인의 공동 주거시설-방(防) 도시계획

천년 전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는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집과 우물, 그리고 이를 둘러싼 담장과 골목길로 이루어진 8000평 규모의 블록. 도시계획의 기본 단위인 방이라 부르던 360개의 블록이 경주에 있었다고 한다. 바둑판의 눈금모양으로 반듯하게 분할된 도시 경주에는 체계적 도시계획이 있었다.


3. 천년 전 경주의 인구는 90만 명

지금의 울산광역시의 인구와 맞먹는 인구가 1000년 전 경주에 살았다고 한다. 수도로의 인구 집중이 극심했던 옛 신라의 수도 경주. 천년 전 신라 수도에 178936호, 인구 90만 명이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그 답은 경주 외곽에서 발견되는 과거의 흔적들에 있었다.


4. 화려했던 도시 경주의 거대한 왕궁

신라의 왕궁은 화려했던 도시, 경주의 어디에 있었을까. 그리고 그 모습은 또 얼마나 위풍당당했을까. 신라의 왕궁은 월성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월성을 중심으로 위치한 동·서·북쪽의 유적들을 통해 경주의 거대한 왕궁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5. 신라수도의 여러 시설

신라수도에는 어떤 시설들이 있었을까? 관리들이 근무하던 관청들이 있었을 것이고, 신라는 국가차원에서 불교를 신봉했으니 불교서원이 상당히 많았을 것이다. 또 물건을 사고 파는 시장도 있었을 것이다. 신라수도의 모습을 완성해 본다.


6. 1000년 전 경주 거리를 걷던 사람들

1000년 전 경주의 거리를 걷던 사람들은 어떻게 생겼고 또 차림새는 어떠했을까. 신라시대 무덤에 묻혀있던 토용들에서 신라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기이한 용모와 복장을 한 사람이 나타났다는 처용의 기록은 경주 거리에 서역인의 출입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경주는 일찍부터 멀리 다른 나라에 문을 열면서 손꼽히는 국제도시로 성장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