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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라인의 놀이문화 1975년 안압지를 발굴할 당시, 각 면마다 흥미로운 내용이 적혀있는 참나무 주사위가 출토되었다. 정사각형 면이 6개, 육각형 면이 8개. 총 14면체인 이 주사위는 일반적인 6면체에 비해 만들기도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각 면마다 흥미로운 내용들이 적혀 있다. 이 주사위는 신라인의 풍류의 한 단면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2. 안압지의 궁중건물 기록에 의하면 안압지에는 태자가 거처하는 동궁이 있었고, 그 동궁은 '월지궁'으로불렸다고 한다. 안압지에 태자가 거처하는 동궁이 있었다면, 당시 이곳에 있던 건물들은 상당히 화려하고 아름다웠을 것이다. 안압지 발굴당시에 서른 한 곳의 건물터와 8곳의 담장터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서 당시 건물을 추정해 볼 수 있었다. 3. 신라 귀족의 의복 신라 여성들은 긴머리를 땋아 틀어올린 머리모양을 했다고 한다. 그런 머리 모양은 상당한 시간과 손길이 필요하다. 머리를 높이 치켜올리기 위해서는 가체를 덧붙여야 하는데, 그 당시 벌써 가발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문헌과 토용을 토대로 신라인의 의복을 복원해 보았다. 당시 상류계급의 화려한 옷차림은 안압지의 연회가 얼마나 풍류가 가득차고 넘쳤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4. 물 위의 풍류-안압지의 놀이배 안압지의 동쪽 연못에서 나무로 만든 배가 엎어진 채로 발견되었다. 우리나라의 토양은 산성이기 때문에 목제유물은 거의 출토되지 않는데, 다행히 안압지에서 발견된 배는 뻘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원형에 가까운 상태로 발견될 수 있었다. 안압지의 목선은 국내에서 발견된 최초의 것으로 우리 배의 발달과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5. 안압지 조경의 비밀 안압지는 일반적인 연못과는 달리 아주 독특하게 꾸며져 있다. 열 두개나 되는 낮은 봉우리들이 연속적으로 펼쳐져 있고, 연못 안에는 크기가 각각 다른 세 개의 섬이 있다. 하지만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안압지는 단지 관상용으로만 아름답게 꾸민 것은 아니었다. 안압지의 조경에는 또 다른 비밀이 숨어있다. 6. 통일신라의 운명과 함께 한 안압지 674년 안압지를 조성할 당시 백제와 고구려는 멸망했지만, 신라는 당나라를 상대로 피나는 전쟁을 치르고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기에 문무왕은 정궁인 반월성이 있었는데도 안압지 건설이라는 대형공사를 시작한다. 안압지는 다가올 통일을 자신했던 문무왕의 전승기념물로 출발했던 것이다. 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연못을 파고 화려한 동궁을 세웠던 안압지는 훗날에는 사신을 접대하고 연회를 즐겼던 공간이었다. 그리고 안압지는 통일신라의 마지막 장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