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의 식생현황
시흥의 재산 : 시화호의 자연생태계
시흥이 가진 최대의 재산은 바로 전국 어디에도, 더 나아가, 전세계 어디에서도 손쉽게 만나볼 수 없는 화석흔적이 고스란히 다량으로 대량으로 남아 있는, 염생식물의 보고인 드넓은 해안 습지인 시화호가 있다는 것이다. 해안습지는 육상과는 달리 비교적 식생이 단순하다고 할 만큼 종다양성이 적다고 볼 수 있지만 그런 것만도 아니다. 다만, 개발과 간척으로 인한 서식처의 교란과 소멸로 호염성 식물이 점차 그 고유한 주소들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 걱정스럽다.육지에서 해안으로 나갈 때 보이는 식생은 대표적으로 갈대군락과 저염성 염생식물이 자라는 기수역 또는 호염성 염생식물이 서식하는 간조대 식생으로 대별(大別)된다. 간만의 차로 인해 해안선을 따라 선명한 띠를 이루면서 식물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육지 가장 가까이는 바로 갈대군락과 달뿌리풀, 그 뒤로는, 천일사초, 갯개미취, 나문재군락과 칠면초군락 등의 순서로 식생이 나타나고 있고, 가장 바깥쪽으로는 퉁퉁마디가 절대 우점하는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는 고라니와 같은 대형 포유동물과 이 보다는 좀 작지만 사나운 오소리, 너구리 족제비, 삵괭이, 들쥐, 청설모, 다람쥐, 각종 철새와 텃새들이 우글거릴 정도로 많다. 여기에서 시흥갯벌과 연관된 해안 식생의 일반적인 특성과 그 중요성을 보자.
해안의 스크린, 터줏대감, 갈대 군락
하구역 담수 유입의 영향을 받는 곳에 발달하는 소택지(沼澤地)에는 조석 주기에 따라 기수(汽水, 바닷물과 민물이 섞여 염분이 적은 물)나 해수가 들어오고 나가는 해안 습지가 있으며, 육지와 경계를 이루는 상부 지역에는 갈대가 서식한다. 갈대는 전세계에 분포하며 보통 온대 지방의 저지대에 서식한다. 지역적으로는 노르웨이의 북위 70도 지역에서 열대 지역에 이르기까지 분포하며 남반구에서는 아프리카 대륙의 남단과 칠레의 남위 40도 지역까지 분포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염생 습지에 서식하는 식물로는 위에서 언급한 갈대, 나문재, 칠면초, 천일사초, 갯잔디, 퉁퉁마디 등이 주류를 이룬다.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갈대 군락이 잘 발달하고 있는데 갈대 군락은 수질 정화와 폐기물 처리, 부영양화 억제 등 환경을 정화하는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한강 주변과 비무장지대, 간척지 등지에 널리 분포하는 갈대 숲은 국제 희귀 조류 및 천연기념물인 황새, 재두루미, 흑두루미, 저어새 등 겨울 철새들의 집단 서식지이기 때문에 보존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요구되는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염습지 식생이다. 하천 하구나 소택지 물가에는 부들, 줄, 갈대 등의 추수식물(뿌리나 줄기의 일부분이 수면 밑에 있는 수생식물)이 띠 분포를 이루며 서식하지만, 해수의 영향을 받는 하구역의 물가에서는 부들이나 줄은 자취를 감추고 갈대가 순군락(純群落)을 형성하게 되고, 이어서 갯는쟁이, 해홍나물, 퉁퉁마디, 칠면초 등의 염생식물 군락이 바다를 향하여 발생한다. 특히, 갈대의 서식 환경은 수심이 약 2미터에서부터 지하 수위 1미터까지이며 그 중에서도 수심이 50센티미터부터 지하 수위 20센티미터 사이에서 주로 서식하지만, 하천의 흐름이 빨라서 토양이 불안정하고 교반 와류가 발생하거나 수위가 급격하게 변하는 장소에서는 갈대 군락이 생겨나지 않는다. 갈대는 영양 생식으로 주로 번식하며 지하줄기가 찢어지거나 확산되어 새로운 군락이 형성되기도 한다.일단 군락으로 정착하면 조건이 좋은 장소에서는 최고 3미터까지 높이 자라며 밀도 역시 1제곱미터 당 400개체 이상이 된다. 수평 지하줄기의 깊이는 보통40∼100센티미터이며 최대로 지하 2미터 이상까지 자라는 것도 있다. 또 잎에서 용출되는 물질이 다른 종의 발아를 저해하여 타종의 침입이나 정착을 어렵게 만들며, 생육하기 좋은 온도는 섭씨 20∼30도이며 pH는 3.6∼8.6정도로 알려져 있고, 칼슘이 많은 토양에서는 성장이 방해를 받는다고 한다.또한 갈대는 펄이나 유기물이 풍부한 지역에 생육하기 때문에 영양이 심하게 부족한 곳에는 분포하지 않는다. 내염성이 상당히 강하며 담수에서 기수지역에 이르기까지 염분 농도가 넓은 범위에 걸쳐 서식하는데, 이러한 특성 때문에 부들이나 줄이 들어갈 수 없는 염성 습지에서 광대한 군락을 형성하며, 모든 식물들에게 일반적으로 유해한 황화수소나 암모니아 화합물 등도 갈대의 생육에 별로 해를 끼치지 않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갈대의 지하줄기는 수직 방향으로 성장하는 것과 수평 방향으로 성장하는 것이 있는데, 지하줄기에는 통기조직이 잘 발달하며 지상부의 잎이나 살아 있는 줄기 또는 고사된 줄기를 통해 대기 중의 산소가 뿌리로 침투하기 때문에 침수되어 환원 상태에 있는 토양에서도 충분히 생육할 수 있다. 잎에서 뿐만이 아니라, 뿌리에서도 산소를 방출하여 주위의 환원 상태에 있는 토양을 산화시킴으로써 식물 뿌리로부터 2, 3밀리미터 근방(根方)에 존재하는 미생물의 유기물 분해 활성을 촉진하는 효과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구리나 카드뮴, 납 등의 중금속은 주로 뿌리에 축적되기 때문에 지상부로 옮아가는 경우는 적다고 한다. 이렇게 갈대는 서식 그 자체가 영양염류나 중금속 등의 물질 순환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시흥의 갈대밭과 인근 갯벌은 모래가 다소 섞인 모래펄갯벌로 각종 게들이 서식한다. 갯벌의 게 땅굴은 조석의 영향을 받는 장소에서는 밀물이 들어오면 붕괴되고 물이 빠지면 다시 형성된다. 결국, 일부이더라도 갈대 숲의 토양은 조석의 주기에 따라 하루에 두 번씩 게의 굴착 활동으로 끊임없이 밭갈이되는 셈이다. 이렇게 게는 땅굴파기에 의해 해저 퇴적물의 수직 교반을 유발하고 그 과정을 통해 갈대 잎사귀가 토양으로 파묻히고 세편화 된다는 일련의 생태학적인 과정을 일으킨다. 만약 토양속의 갈대 고사체가 미생물에 의해 무기화 된다면 밀물을 따라 수계로부터 공급되는 무기 영양염류와 함께 갈대에 흡수되어 체내에 축적될 것이다.결과적으로 갈대 숲은 갈대 그 자체와 줄기에 부착된 생물이 영양염류를 흡수하고, 퇴적물 속 근권에서 미생물이 질산염을 대기 중의 질소로 바꾸는 탈질작용을 하는 등 다양한 생물적 여과 기능을 수행한다. 이러한 갈대의 환경 정화 기능을 이해한다면 남아 있는 우리 해안의 갈대 숲을 더 이상 파괴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염습지 식물들
우리 나라에 생육하는 염생식물은 총 16과40여 종이 보고되었으며, 특히 서남해안 갯벌의 상부지역에 그 군락이 잘 발달하여 있다. 염생식물 종들은 그 생육의 특징에 알맞은 입지 조건에서 자생한다. 이토질의 염생식물 군락에는 퉁퉁마디, 해홍나물, 나문재, 칠면초, 갯개미취, 강피, 갯는쟁이, 갈대, 천일사초 등이 있는데 순군락이나 혼군락을 이루는 경우가 많으며 이 가운데 퉁퉁마디가 선구적인 개척자식물이다.퉁퉁마디는 모래질 토양이나 건조한 지역에서는 생육이 좋지 않으며 저습한 염습지나 염전의 수로 부근에서 순군락을 형성한다. 그러나 강우가 계속되어 장기간 침수되면 말라 죽어 버린다.칠면초는 만조 때에 침수되는 낮은 지대부터 고조선 이상의 건조한 지역까지 그 생육지의 범위가 넓을 뿐 아니라 내염성이 강하며 장기간의 침수 상태에서도 생육할 수 있는 대표적인 호염성 식물이다.천일사초는 고운 모래가 섞인 습한 이토가 있는 장소에서 생육이 왕성하며 갯질경이는 사질이토의 건조지대에서 잘 자란다. 이들이 자라는 곳에는 대량의 메뚜기류들이 서식하며 이를 먹이로 삼는 다른 생물들, 예를 들어, 갈매기, 갯꿩, 오소리, 너구리, 들쥐 그리고 다시 이를 포획하여 섭식하는 맹금류인 황조롱이 등이 서식함으로써, 다양한 생물상을 확보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동해안에는 보리사초, 갯메꽃, 갯쇠보리, 순비기나무 군락이 대표적으로 잘 자라는데 서해안이나 남해안과는 달리 해안 퇴적물의 특징인 사구에 자생하는 염생식물만 있을 뿐 이토성 염생식물은 전혀 볼 수 없다. 방대한 서해안의 갯벌은 그 동안 간척지로 조성되어 농경지로 변하였고 신도시, 신공항, 신항구 등의 건설을 위한 매립으로 광대한 염습지 식생이 차츰 그 자취를 감추어 가고 있고, 그나마 약간 남아있는 간석지나 염습지도 빠른 속도로 파괴되고 있기에, 앞으로 해안 매립을 중단하고 갯벌과 염습지와 해안 사구의 식생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염생식물 군락이 보존되기는 어렵다.
박병권 경희대학교 생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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