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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에 관한 다양한 자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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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0전 대구 '빛바랜 기억들'

대한인 2013. 10. 3. 08:54

 
))) 비산 지하도 뚫리기 전 50년대 증기기관차 풍경((( 1950년대 어느 날 증기기관차가 지나가는 광경이다. 북비산 네거리에서 불과 100여m 북쪽에 있는 비산 지하도가 뚫리기 전의 일이다. 뒤에 보이는 건물은 별표국수 공장이고, 이때는 건널목 간수가 없어 말발굽이 철로에 끼여 말이 열차에 치여 죽는 등 크고작은 사고가 빈발했다.
))) 70년대초 대구…넝마주이 소년((( 1970년대초만 해도 대구 지역 곳곳에는 넝마주이나 아침에 밥을 얻어 먹으러 다니는 거지, 허잡스러운 물품을 팔러다니는 상이군경 등이 많았다. 블록 담장에 지친 몸을 기댄 채 해바라기를 하며 생모를 생각하는 듯 어린 넝마주이의 표정이 더없이 서럽기만 하다.2
))) 70년대초 대구…넝마주이 소년((( 1970년대초만 해도 대구 지역 곳곳에는 넝마주이나 아침에 밥을 얻어 먹으러 다니는 거지, 허잡스러운 물품을 팔러다니는 상이군경 등이 많았다. 블록 담장에 지친 몸을 기댄 채 해바라기를 하며 생모를 생각하는 듯 어린 넝마주이의 표정이 더없이 서럽기만 하다.
))) 60년대 대구 물장수 아저씨((( 60년대만 해도 대구의 상수도 보급률은 형편 없었다. 변두리 달동네 주민들은 매일 공동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오거나 매일 동네를 방문하는 물장수 아저씨한테 물을 사먹어야만 했다. 이때는 드럼통이 급수통으로 이용됐다.3
))) 60년대 대구 물장수 아저씨((( 60년대만 해도 대구의 상수도 보급률은 형편 없었다. 변두리 달동네 주민들은 매일 공동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오거나 매일 동네를 방문하는 물장수 아저씨한테 물을 사먹어야만 했다. 이때는 드럼통이 급수통으로 이용됐다.
))) 60년대 개구쟁이들의 신천나들이((( 60년대 동구 신천동 푸른다리 근처 징검다리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한 아이(왼쪽에서 네번 째)가 갓난애기를 등에 업고 돌보는 장면이 웃음을 자아낸다.4
))) 60년대 개구쟁이들의 신천나들이((( 60년대 동구 신천동 푸른다리 근처 징검다리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한 아이(왼쪽에서 네번 째)가 갓난애기를 등에 업고 돌보는 장면이 웃음을 자아낸다.
))) 구름과자를 아시나요?((( 반세기 전만 해도 '국민학교' 앞은 불량 군것질거리의 집산지였다. 특히 뜨겁게 달궈진 철통 안에 설탕을 집어넣으면 금세 양철통에서 구름이 피어올랐다. '구름과자'로 인기가 높았던 솜사탕 제조기는 척박한 일상을 살던 아이들에겐 꿈결 같은 것이었다.5
))) 구름과자를 아시나요?((( 반세기 전만 해도 '국민학교' 앞은 불량 군것질거리의 집산지였다. 특히 뜨겁게 달궈진 철통 안에 설탕을 집어넣으면 금세 양철통에서 구름이 피어올랐다. '구름과자'로 인기가 높았던 솜사탕 제조기는 척박한 일상을 살던 아이들에겐 꿈결 같은 것이었다.
))) 엄마 제가 이 잡아 드릴께요((( 공중위생 시스템이 전무했던 60년대에는 이와 벼룩, 빈대가 주민들의 몸 곳곳에 기생했다. 볕이 좋은 날 동구 신천동 푸른다리 근처 판잣집 앞에서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헤집으면서 이를 잡아주고 있는 딸의 눈매가 더없이 훈훈하기만 하다.6
))) 엄마 제가 이 잡아 드릴께요((( 공중위생 시스템이 전무했던 60년대에는 이와 벼룩, 빈대가 주민들의 몸 곳곳에 기생했다. 볕이 좋은 날 동구 신천동 푸른다리 근처 판잣집 앞에서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헤집으면서 이를 잡아주고 있는 딸의 눈매가 더없이 훈훈하기만 하다.
))) 50년전 주막((( 50여년전 북구 팔달교 동쪽 끝은 모래언덕이었다. 하지만 매년 장마철 상습침수 구역이라 집을 지을 때 1m 정도 높게 계단처럼 돋웠다. 사진속 초가집은 주막으로 칠곡 방면에서 시내쪽으로 오던 행인들이 잠시 쉬며 막걸리를 마시던 곳이었다.7
))) 50년전 주막((( 50여년전 북구 팔달교 동쪽 끝은 모래언덕이었다. 하지만 매년 장마철 상습침수 구역이라 집을 지을 때 1m 정도 높게 계단처럼 돋웠다. 사진속 초가집은 주막으로 칠곡 방면에서 시내쪽으로 오던 행인들이 잠시 쉬며 막걸리를 마시던 곳이었다.
)))동네 개구쟁이들의 놀이터 '준공 직전의 경북도청'((( 준공 직전 공사 중인 경북 도청 창문 턱에 올라가 손을 잡고 놀고 있는 동네 개구쟁이들. 도청은 옛 중앙공원 자리에서 1966년 4월1일 현재 자리로 이전했다.8
)))동네 개구쟁이들의 놀이터 '준공 직전의 경북도청'((( 준공 직전 공사 중인 경북 도청 창문 턱에 올라가 손을 잡고 놀고 있는 동네 개구쟁이들. 도청은 옛 중앙공원 자리에서 1966년 4월1일 현재 자리로 이전했다.
빛바랜 사진 한 장.

꼭 시간을 멈추게 하는 '흡착포' 같다. 세월은 가도 사진 속 세월은 고정돼 있다. 훌쩍 늙어버린 한 노인의 동공에 비친, 고추를 내놓고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어린시절 자신의 모습. 현실은 팍팍하지만 사진 속에서의 시간만은 한없이 평화롭고 푸들푸들거린다. 그 시절 시골 토방 벽 한 켠에 걸려있던 한 집안의 일대기가 오롯하게 새겨진 파리똥 앉은 가족 사진 액자. 한 가문의 '블랙홀'임에 분명하다. 어느 날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고 요절해버린 자식의 '부재'(不在)도 사진 한 장이면 '현존'(現存)의 실상으로 엄존한다. 부모는 손바닥으로 종일 몇십번씩 그 사진을 문지르고 또 문지른다. 이제는 떠나가버린 연인과 황홀했던 밀애의 시간, 비록 지금 내 손에 그 추억을 잡을 순 없지만 무심코 책 갈피에서 발견한 수 십 년 전 연인의 사진 앞에서 빙그레 웃음을 피우는 게 '먼 사진'의 위력이 아닌가. 현존과 그 사진의 틈이 멀먼 멀수록 그 감동과 애틋함은 더해진다.

한 도시의 과거 표정은 늘 무참히 지워진다. 그 누구도 '실물지수'로 복원시킬 수 없지만 빛바랜 사진 한 장만은 능히 그 일을 할 수 있다. 한 세기, 아니 반세기 전 사진도 이젠 '문화재급'. 그 흔한 고교시절 사진 한 장도 찾아보면 보이지 않는다.

이번주부터 원로 향토사진가 앙산 장원식의 제4사진집(징심유관)에서 사금처럼 골라낸 50~60년전 추억의 대구 사진들을 지상중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