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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강한 군대는..

대한인 2013. 10. 9. 08:40

역사상 가장 강한 군대는..

 

*바이킹

8세기 전유럽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이민족으로 원래 사는 지역이

춥고 배고픈 까닭에 자주 유럽 대륙으로 내려와 약탈을 하곤 했다. 789년부터

본격적으로 군대를 이끌고 영국, 프랑스, 아일랜드 등을 침공했다. 이들은 그 후로

약 200년간 정복 활동을 계속해 영국의 대부분 지역과 노르망디에 왕국의 세웠으며,

그 외에도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아메리카 대륙, 스페인, 모로코, 이탈리아, 비잔틴,

러시아까지 침공하며 엄청난 위력을 과시한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보병 밖에 없었다.

바이킹의 주력은 선박이었다. 이들이 만든 배는 최대 200명까지 태울 수 있었으며,

하루 240km를 항해할 정도로 속도와 지구력에서 단연 세계 최강이었다.

이들은 주로 적의 근해에 배를 몰고 가 최선의 위치를 택한 뒤, 적선이 다가오면 화살과

쇠뭉치, 돌을 날렸다. 그리고 적선에 쇠갈퀴를 걸어 끌어당긴 다음 백병전으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이들은 육상전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는데, 말을 타지 않고 맨땅에서 도끼를

휘두르는 보병이 주력이었다. 이들이 쓰는 도끼는 당시 일반 성인 여성 키만한 1.5m

길이에 넓은 강철 날이 달린 엄청난 무기였다. 때때로 북유럽 고유 언어인 룬 문자가

새겨진 이 강력한 무기는 바이킹 군대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다른 민족보다 훨씬 크고 건장한 체격을 지닌 이들에겐 두 가지 계급의 전사가

있었는데, 하나는 일명 "광전사"로 불리는 버서크(berserk)로 특별히 엄청난 힘과

포악성을 지닌 사람으로만 뽑았고 보병의 선두에 서서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선보였다.

다른 하나는 "방패 처녀(shield maiden)"이라 불리는 바이킹 보병을 따라 전투에

참가하는 여자로만 구성된 부대였다.

방패 처녀들은 남자 군인들과 맞서 싸우며 가공할만한 전투력을 과시했는데, 일부

기록에 등장하는 페브조르크라는 여성은 남성 전사의 턱을 뽑아 입으로 씹고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기병을 이용하지 않았던 바이킹은 적의 기병의 공격을 받을 경우 방패 벽을 만들고

버티는 전술을 구사했다. 그리고 강물을 앞에 두거나, 가파른 언덕 위에서, 혹은 진지

안에서 싸우는 등 지형지물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유럽은 기병을 이용한 전술이 크게 발달하던 때였다. 보병과 완력에 의존해

싸우는 바이킹은 우수한 기동성을 가진 기병에 밀릴 수 밖에 없었고, 그들은 더 이상의

세력 확장을 포기한 채 영국과 노르망디를 정복한 것에 만족해야 했다.

 

*투르크(터키) 예니체리

14세기 창설된 오스만 투르크 왕국의 친위 정예 보병. 투르크는 전통적으로 기병만으로

싸우는 민족이었던 데다, 14세기 당시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도 보병을 천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정예 보병 부대를 창설한 것은 매우 예외적인 일이었다.

예니체리 부대는 특이하게도 모병제가 아닌 "납치제"였다. 주로 발칸 반도의 기독교

가정의 어린 아이들을 납치해 특수 공동체에서 훈련을 시켰다. 어린 나이부터 최고의

전사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은 뒤 수도원-병영에서 광신적인 이슬람 교도가 되는

교육을 받았다.

이들은 인간 신체능력을 극대화하는 훈련과정을 거쳐 전투에서 거의 생사를 초월해

싸웠으며 오직 보리와 물만 가지고 전장에서 누구보다 오래, 격렬히 싸울 수 있었다.

또한 무기를 다루는 데는 신기에 가까운 기예를 선보였다. 기본 무기는 활인데 한번

쏘면 580m나 날라갔다. 총의 등장 이후엔 활 대신 화승총을 무기로 채택했으며,

세이버라 불리는 칼, 석궁, 창, 도끼, 철퇴, 낫, 채찍, 돌팔매 등 다루지 못하는 무기가

없었다.

이들은 술탄의 개인 호위병으로 대단한 특권을 누렸으며, 퇴역 후에는 엄청난 부와

명예가 주어져 자손대대로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예니체리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 국력의 상징과 같은 존재였다. 제국의 국력이 절정에

달했던 16세기 전반엔 1만 5000명 정도의 예니체리가 복무하고 있었으며, 전세계가

두려워했다. 그러나 16세기 말부터 무능한 술탄 무라드 3세가 곡예사와 씨름꾼들에게

예니체리 계급을 수여하면서부터 예니체리들은 크게 반발했고 군 기강은 무너져버렸다.

급기야 1826년 타락한 군 체제에 예니체리들은 항명 소동을 일으켰고, 이들은 술탄의

군대에 의해 모두 제거된다. 이로써 천하를 호령하던 투르크의 군사력은 유럽의

군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전락하고 만다.

 

*스위스 창병

스위스 군의 명성은 13세기부터 알려졌는데 이들은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당시

알프스의 험한 산 지형을 이용해 오스트리아 군대를 수시로 무찔렀고, 평원에서

정규군과 맞대결을 벌였을 때도 진 사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스위스 창병은 미늘창(halberd)이라는 무기를 사용했는데, 길이가 작은 것은 2.4m

큰 것은 5.4m에 달했으며 창끝에 24cm 정도의 강철창촉과 도끼, 갈고리가 달려 있었다.

이들은 이 창을 이용해 전투시 고슴도치 대형을 만들어 방어와 공격 전술로 활용했다.

이 전술은 특히 기병에게 엄청난 살상 효과를 발휘해 수많은 기병 부대와 맞서 싸워

이겼다.

이들은 원래 가난해 무장을 많이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점은 기동성을 높여 전투시

상당한 이점으로 작용했고 이들은 또한 세계 최초로 군악에 보조를 맞춰 행군한 군대로

3열 평행 종대로 사다리꼴 대형을 만들어 이동했다.

이들은 그라송, 모라, 노바라 전투 등에서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기적적인 승리를

만들어 내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특히 이들은 말도, 대포도, 별다른 무기도 없이 우수한

기병과 대포를 보유한 군대를 매번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들은 전략이나 기술로 적을

압도 했다기보다 매번 불굴의 용맹함으로 적들을 무찌를 수 있었다.

이들의 전투력에 대한 명성은 전유럽에 널리 퍼져 스위스 창병은 16세기까지 유럽

각지에 비싼 몸값을 받고 용병으로 활약한다. 그러나 이들의 전성기도 소총의 등장 이후

막을 내린다.

 

*몽고 망구다이

몽골군의 ‘망구다이(曼古歹”:mangudai.'붉은전사' 라는 뜻)’는 기사(騎射)에 능한 몽골의

장정들 중에서도 능력이 출중한 자들을 뽑아 만든 최정예 궁기병 부대인데, 말 위에서

갖가지 자세로 활을 쏠 수 있는 부대였다. 아시다시피 가벼운 가죽제질의 경갑과 실크로

만든 옷을 입어서 기동력과 화살에 대한 방어력을 갖추고 당시 유럽의 중기병들을 치고

빠짐으로 지치게 만들고 그들의 가장 유리한 시점에서 공격 적을 몰살시킴으로 최강을

입증 했다.더군다나 말위에서 사는 시간이 자는 시간을 제외한 땅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많다는 말을 입증하듯 뛰어난 기마술을 갖고 적과의 전투에서 말의 무게와 속력을 실은

공격과 마상에서 사용한 뛰어난 궁술은 적을 원.근거리 구분없이 괴롭혔고 몽골군은

중국과 동유럽을 초토화시켰다.

몽고족은 태어날때부터 말을 타며 활은 가지고 노는 작난감이었다.

 

*로마의 보병 방진(方陣)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로마가 몽고 이전에 최강최대의 국가로 발전 할수있었던 것은

그들의 독특한 보병때문이었는데 방패를 이용한 방진과 방진 사이사이 삐죽이나온

그들의 창과 그리고 근접전에서 방패와 더불어 사용하기 최적의 길이를 자랑하는 칼

글라디우스 덕이다.

적의 돌격을 방패로 막으면서 창으로 적을 사정없이 죽여버리고 그래도 접근하면

글라디우스로 베어버린다는 작전,당시에 이방법을 깰만큼 강력한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저 무식한 색슨족들도 몇번에 걸쳐 로마영토에 들어오려다 번번이 국경에서

몰살당했다.

 

*훈족

당시 한나라와 훈족의 투쟁과정중 그들이 서쪽으로 가면서 게르만족과 같은 야만족들을

밀어 내서 결국 그들이 로마제국으로 흘러 들어가 결국 로마가 망한것을 보면 역시

최강의 군대라 아니 할수 없다. 그들의 기마군단이 휩쓸고 지나가면 야만의 게르만족도

로마기병도, 방진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고구려 철갑기병

당시 동아시아 최강의 부대로 광개토대왕때는 후연,숙신,거란을 평정해 북중국과

만주지방 일대를 영토로 확장했다.

고구려 공격부대의 맨 앞줄은 완전무장한 철갑기병이 맡는데 그 뒤를 기동력이 있으면서

가볍게 무장한 경마기병이 서고, 다음은 창수들이 포진하며 이는 검수와 부월수보다

긴 창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 뒤를 칼을 든 검수와 부월수가 따르고 공격부대의

맨 뒤에는 궁수들이 배치된다. 가장 멀리 나가는 무기인 활을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말 등자의 개발로 기병은 말 위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마음껏 무기를 휘두를 수

있었으며, 심지어 몽고군의 전술과 같은 맥궁을 이용한 유격전도 가능하였다.

화살비를 뚫고 들어가 적의 보병을 박살내는 철갑기병의 특색은 ‘찰갑’에 있는데,

다른 나라 군대의 판갑(큰 강철판 몇개를 이어서 만든 갑옷)과 비교했을때 강도면에서도

손색이 없으며, 작은 철판을 비단면 위에 엮어 만든 찰갑은 유연성면에서 큰 효율을

발휘했고 게다가 가장 큰 장점은 판갑에 비해 가볍다는 것이며 두꺼운 갑옷을 착용하더

라도 유연하고 빠르게 움직일수 있었다. 또한 찰갑아래의 비단은 화살을 맞았을때

뚫리지 않고 화살을 퉁겨버려 아무 손상없이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100만을 자랑하는 수(隋)나라 군대와 역사상 가장 강한 군대라는 당(唐)나라 군대를

연이어 물리친것이 고구려 군대이다.

 

상기 부대들은 각기 다른 시대에 다른 장소에서 존재했었고, 만약 서로 동시대에 맞붙어

싸웠다면 누가 이길지는 상상에 맡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