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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석자

대한인 2013. 10. 9. 19:13

          

 

 

 

       나는 이름 석자로 족하다


"나는 [朴正熙]란 이름 석자로 족하다"



號도, 명예 博士도 거부했던 그는 권력을 빙자한
군림(君臨)을 증오한 이였다. [ 趙甲濟 ]  

朴正熙 정부의 청와대 대변인과 문공부 장관을 지낸 金聖鎭씨에
따르면 故 朴 전(前) 大統領은 號가 없었다고 한다.
고령 朴씨 문중에서 호를 지어 올린 적이 있는데,
이 보고를 받은 朴大統領은 "朴正熙란 이름 석자로 충분하다"고
金 당시 대변인에게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朴 大統領은 號를 쓴 적이 없다.

한 보좌관이 모 외국 대학에서 명예 博士 학위를 주기로
했다는 보고를 하니 朴 大統領은 " 博士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거절했다고 한다. 朴 大統領은 18년간 재임했으나,
그 흔한 명예 博士 학위가 하나도 없다.

朴 大統領은 私信을 쓸 때는 절대로 '大統領 朴正熙' 라고
하지 않았다. '朴正熙 拜'라고만 했다.

朴 大統領은 자신의 생일에 대해서도 무심했다.
그의 생일은 호적에 잘못 적힌 대로 알려져 한동안
생일이 아닌 날에 장관들이 축하 인사를 하기도 했다.
그는 한동안 이를 굳이 고치려 하지 않았다.

號, 명예 博士, 생일, 직함 등에 신경을 별로 쓰지 않았던
朴 大統領은 권위적인 것들을 생래적으로 싫어했다.
그렇지만 그가 지도한 체제는 권위주의 체제로 불린다.
그는 특히 권력을 빙자한 군림을 증오했다.
그는 허례 허식도 싫어했다.

항상 淸貧한 마음자세를 죽을 때까지 유지한 분이었다.
그가 죽을 때 '허름한 시계를 차고, 벗겨진 넥타이 핀을 꽂고,
해진 혁대를 두르고 있었던 것'은, 그리하여 屍身을
검안한 군의관이 "꿈에도 각하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인간 朴正熙의 자연스런 眞面目이었다.

 

 

★★ 논바닥에서 펑펑 울던 대통령

 
▲ 1979. 5. 23 (박 대통령 서거 5개월전) ▲
 
1960년대 극심한 가뭄으로 농민들이 고통을 겪을 때,
 
아주 늦은 밤 마침내 기다리던 단비가 내렸다고 한다.
 
모두 잠든 시간,
박정희 대통령은 조용히 운전기사를 깨워
농촌 들녘으로 향하셨다.
 
논이 보이자 차를 세우신 박 대통령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논 한가운데로 저벅 저벅 걸어
들어가셨는데 한참을 지나도 안나오셔서 운전기사가
 
가까이가보니 논바닥에 주저앉은 박대통령이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고 계셨다고 한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운전기사도
박 대통령을 따라 한참을 울었다고.......
 
(박정희 대통령 운전기사의 증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