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가문 - 朴正熙 家門
1961년 5.16혁명으로 부터 1979년 10월 26일에 이르기까지 18년간
한국을 통치해 왔던 박정희 가문은 어떠한가
박정희는 1917년 11월 14일(음 9월 30일)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상모동(慶尙北道 善山郡 龜尾面 上毛洞) 171번지에서
아버지 박성빈(朴成彬)과 어머니 백남의(白南義)사이의
7남매(5남 2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 가계(家系)를 보면
박씨(朴氏)의 시조는 박혁거세(朴赫居世)이나
그 뒤 여러 갈래로 갈린 분파(分派)중에서
박정희는 고령박씨 성주파(高靈朴氏 星州派)에 속한다.
고령 박씨(高靈 朴氏)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29세손(世孫)이며
신라 제54대 왕인 경명왕(景明王)의 8형제 중
둘째인 언성(彦成)을 제1세(世)로 치는 본(本)이다.
박(朴)씨는 김(金)씨 이(李)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성씨(姓氏)로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박정희의 가문은 선대부터 무인(武人)이 많았고
보수적 기질이 강한 편이었으나 때때로 엉뚱한 인물이 나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조선시대의
박은(朴誾)과 박문수(朴文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박정희도 박문수에 관한 이야기를 어려서부터 들어 왔다.
박문수전(朴文秀傳)은
조선시대의 억눌렸던 민중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희망이요 생명의 불꽃이었다.
즉 박문수라는 의인(義人)이 있어
사회정의를 구현해 보려고 하는 암행어사(暗行御史)의 행각에서
민중들의 뜻을 대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 조의(朝議) 때 임금 앞에서
머리를 치켜들고 말을 하는 사람은 박문수 뿐이었다.
다른 신하들이 모두 탓하자
"임금과 신하가 한몸이나 다름없는데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말해야 하지 않겠느냐!" 고 하니
임금도 "문수의 말이 옳다" 고 했다.
또한 이인좌가 난리를 일으키자
분연히 일어나 난리를 평정하는데 공을 세웠다.
국가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면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의인(義人)이요,
불의(不義)를 보고 참지 못하는 것이 의인이며,
하나의 원칙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사람이 의인이다.
박문수는 도승지(都丞旨),
병조판서(兵曹判書)라는 벼슬보다도
한 시대의 정의를 확립하기 위해
많은 일화를 남긴
암행어사로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장원시(壯元詩)인 낙조(落照)는
세상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던 시구(詩句)이므로
박정희도 그 시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고령박씨라고 하면
얼른 생각나는 인물이 암행어사(暗行御史) 박문수이다.
또 박문수(朴文秀)라고 하면
의(義)로운 것을 생명보다 더 소중한 가치로 인식했던 사람인 만큼
박정희도 비록 방조(傍祖 - 星州派)이기는 하지만
그 선대(先代)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을 것이다.
朴正熙 의 兄弟
長男 : 東熙
次男 : 武熙
長女 : 수희(殷氏家 出嫁)
3 男 : 相熙
次女 : 순희(韓氏家 出嫁)
4 男 : 漢熙
5 男 : 正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