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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유묵 모음과 귀중한 자료(동영상 포함)

대한인 2013. 12. 7. 06:09


http://cafe.daum.net/rotcguguk/DK2J/4426

(전문. 안중근 사진보기 위 Click!)

[횡설수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그제 “안중근은 범죄자”라며 폭언을 했다!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기사입력 2013-11-21 03:0 기사수정 2013-11-21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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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가 1909년 만주 하얼빈 역에서 사살한 이토 히로부미는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정계를 주무른 실력자였다. 초대 총리대신을 비롯해 네 차례나 총리를

지냈고추밀원과 귀족원 의장도 역임했다. 일본제국헌법도

그의 손에서 나왔다.

현재 일본 중의원 중앙홀에는 역대 의원 중 세 명만의 동상이 서 있는데 그중 한 명이

이토다. 1963년부터 1984년까지 1000엔권 지폐에는 그의

초상(肖像)이 들어있었다.



▷상당수 일본인이 근대화를 이끈 인물로 추앙하는 이토는 한국인들에게는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침략과 가해(加害)의 역사를 상징하는 존재다. 그는 1905년 특명전권

대사로 우리 땅을 밟은 뒤 을사늑약을 강요해 외교권을 빼앗았다.

이어 초대 통감으로 부임해 내정에 대한 권한도 박탈했고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다.

일본이 대한제국을 병합해 식민지로 삼은 것은 1910년이었지만 이토가

살아있을 때 사실상 나라를 빼앗긴 상태였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그제 “안중근은 범죄자”라며 폭언을 했다.

스가는 올해 6월 한중(韓中) 정상회담 논의에 따라 안 의사의 의거 현장인

하얼빈 역에 기념 표지석을 설치하는 움직임을 비난하면서

그런 말을 했다.

스가의 발언이 나오자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도 일본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중국 외교부는 “안중근 의사는 중국에서도 존경받는 저명한 항일

인사”라며 ...

일본 군국주의가 저지른 역사적 범행을 일본은

직시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일본인들이 이토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그들의 자유다. 그러나 나라를

잃은 울분을 참을 수 없어 침략의 원흉을 응징하고 이국땅에서

숨져간 독립운동가에게 ‘범죄자’ 운운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식민 지배를 반성하거나 한국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나올 수 없는 ‘망언’이었다.

14년 전 도쿄특파원 근무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항공기 안에서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일본은 잘못된 과거사를 진심으로

 

반성하고
새로 태어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다시떠올리게 하는 요즘이다.


권순활 논설위원

-아 래-

안중근 의사에 대한 일본 동영상

"슬픈 테로리스트의 진실"

● 이 땅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일본이 제작한 이 동영상을 보아야만 할

것이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게

륭한 조상을 둔 우리는

(특히 자기 몸이나 도사리는 지식인들, 당리당락과 사리 사욕에만 눈먼 정치인들)

도대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또 우리는 안중근의사에

대해서얼마나 알고 있는지 분개하고 개탄하지

않을 수 없으며,

지금이라도 안중근의사의고귀한 정신을 국민교육을

통하여 이어 받들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 안중근, 최후의 진술.....

“사형 (死刑) 이상의 형(刑)은 없습니까?"

▶ 범죄자 안중근?

이토 살해의 15가지 이유...(동영상 참조)

1910년 2월7일 제 1회 공판에서....

나의 목적은 한국의 독립이다." 동양평화의 유지이며 이토를

살해한 것은 개인적으로 원한이 있어서가 아니라 동양의 평화를 위한 것으로 아직 목적을 달성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토를 죽여도 자살할 생각도 없었다.”

* 1910년 2월14일. 제6회 공판, 재판은 고작 일주일이라는

이례적인 속도로 막을 내렸다.

● 판결 : 피고인 안중근! 사형(死刑)에 처한다!

안중근 :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사형 (死刑) 이상의 형(刑)은 없습니까?”

◎ 위국헌신군인본분 (爲國獻身軍人本) ◎

-.安重根義士遺墨-

- 나라위해 몸을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다 -

이 글은 안 의사가 여순 감옥에서 공판정을 오갈 때마다 경호를 맡으면서 안 의사의 사상과 인격에 감복, 안 의사를 스승으로 받들었던 간수 일본군 헌병 치바도시치(千葉十七)에게 써준 것이다.

 

 

 

 

From, ...carlos" / 남자천사

안중근 의사에 대한 일본 동영상

"슬픈 테로리스트의 진실"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9f48d6Mpb0g


 

 

 

안중근장군(安重根將軍)의 유묵(遺墨)

 

 

安 重根 將軍

순국15분전 사진

순국5분전 어머님이지어주신옷으로 갈어입어시고

1. 백인당중유태화보물
제569-1호

백인당중유태화(百忍堂中有泰和)

백 번 참는 집안에 태평과 화목이 있다.
중국 당(청) 고종이 운주 장공예(張公藝)의 집 당호(堂號)로,
9대가 한집에 화목하게 산 것을 칭찬하며 지어 준 글이다.

2.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

보물 제569-2호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

3. 연년세세화상사 세세년년인부동

보물 제569-3호

년년세세화상이 세세년년인부동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

해마다 계절 따라 같은 꽃이 피건만

해마다 만나는 사람들은 같지 않네.

4. 치악의악식자 부족여의
보물 제569-4호
치악의악식자 부족여의(恥惡衣惡食者 不足與議)
궂은 옷, 궂은 밥을 부끄러워하는 자는 더불어 의논 할 수 없다.
『논어』 이인(里仁) 편에서 인용

5. 동양대세사묘현 유지남아기안면 화국미성유 강개 정략불개진가련

보물 제569-5호

동양대세은묘현 유지남아 기안면화국미성유강개정략불개진가인

東洋大勢思杳玄 有志男兒 豈安眠和局未成猶慷慨政 略不改眞可憐

동양대세 생각하매 아득하고 어둡거니

있는 사나이 편한 잠을 어이 자리,

평화시국 못 이룸이 이리도 슬픈지고 정략

(침략전쟁)을 고치지 않으니 참 가엾도다.

6. 견리사의 견위수명|

보물 제569-6호

견이의사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논어』 헌문(憲問) 편에서 인용

7. 용공난용 연포기재 보물 제569-7호

용공난용 연포기재(庸工難用 連抱奇材)

서투른 목수는 아름드리 큰 재목을 쓰기 어렵다.

『통감(通鑑)』에 자사(子思)가 위왕(魏王)에게 말한 내용에서 인용

8. 인무원려 난성대업

보물 제569-8호

인무원려 난성대업(人無遠慮 難成大業)

사람이 멀리 생각지 못하면 큰일을 이루기 어렵다.

『논어』 헌문(憲問) 편에서 인용

9. 오로봉위필 삼상작연지 청천일장지 사아복 중시

보물 제569-9호

五老峯爲筆 三湘作硯池 靑天一丈紙 寫我腹中詩

(오노봉이필 삼상작현지 사아복중시)
오로봉으로 붓을 삼고 삼상의 물로 먹을 갈아

푸른하늘 한 장 종이 삼아 뱃속에 담긴 시를 쓰련다.

10. 세한연후 지송백지부조

보물 제569-10호

세한연후 지송백지부조(歲寒然後 知松栢之不彫)

눈보라 친 연후에야 잣나무가 이울지 않음을 안다.

『논어』 자한(子罕) 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에서 인용

11. 사군천리 망안욕천 이표촌성 행물부정

보물 제569-11호

은군천리 망안욕천이표촌성 행물부정

(思君千里 望眼欲穿 以表寸誠 幸勿負情)

임 생각 천리 길에 바라보는 눈이 뚫어질 듯하오이다.

이로써 작은 정성을 바치오니 행여 이 정을 저버리지 마소서.

12. 장부수사심여철 의사림위기사운

보물 제569-12호

장부수사심여철 의사임위기이운

(丈夫雖死心如鐵 義士臨危氣似雲)

장부가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은 쇠와 같고

의사는 위태로움에 이를지라도 그 기풍은 구름 같도다.

13. 박학어문 약지이례

보물 제569-13호

박학여문 약지이례(博學於文 約之以禮)

널리 글을 배우고 예법으로 몸단속을 한다.

『논어』 옹야(雍也) 편에서 공자가 한 말이다.

14. 제일강산

보물 제569-14호

38.6㎝×96.6㎝, 원 김양선 목사 소장으로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 기증,

보물 지정일: 1972. 8. 16.

15. 청초당

보물 제569-15호

37.6㎝×67㎝, 민병기 소장, 보물 지정일: 1972. 8. 16.

16. 고막고어자시

보물 제569-16호

고모고여자자시(孤莫孤於自恃)

스스로 잘난 척하는 것보다 더 외로운 것은 없다.

39.7㎝×74.9㎝, 한중호 소장, 보물 지정일: 1972. 8. 16.

17. 인지당

보물 제569-17호

인지당(仁智堂)

어질고 지혜로워야 한다는 뜻의 당호.

37.6㎝×67㎝,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보물 지정일: 1972. 8. 16.

18. 인내

보물 제569-18호

26.8㎝×72.1㎝, 김성섭 소장, 보물 지정일: 1972. 8. 16.

19. 극락

보물 제569-19호

33.2㎝×68.2㎝, 원 강신종 소유로 안중근의사기념관에 기증,

보물 지정일: 1972. 8. 16.

20. 운재

보물 제569-20호

32.8㎝×67.8㎝, 안중근의사기념관 소장,

보물 지정일: 1972. 8. 16.

21. 욕보동양 선개정략 시과실기 추회하급

보물 제569-21호

욕보동양선개전략 시우실기추회가급

(欲保東洋 先改政略 時過失機追悔何及)

동양을 보호하려면 먼저 정략을 고쳐야 한다.

때를 놓쳐 실기하면 후회한들 무엇하리요.

22. 국가안위 노심초사

보물 제569-22호

국가 안위 노심초은(國家安危 勞心焦思)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

유묵 오른쪽에 증(贈)안강(安岡)검찰관이라 씌어져 있다.

이는 친절하게 대해 준 당시 뤼순법원 검찰관

야스오카에게 증정한 것이다.

야스오카 사후 장녀 우에노(上野)가 소장하다가

1976년 도쿄 국제한국연구원을 거쳐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에 기증했다.

23. 위국헌신 군인본분

보물 제569-23호

의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안중근 의사를 경호했던 일본군 헌병 지바 도시치

(千葉十七)에게 써 준 유묵이다.

제대 후 지바는 안 의사의 인품과 사상에 감복하여

이 유묵을 일본에 가지고 가 사진과 함께 정성으로 모셨다.

그의 사후 미망인과 양녀 미우라(三浦)가 봉안하다가

구리고마의 다이린지(大林寺)를 거쳐 1980년

도쿄 국제한국연구원을 통하여 안중근의사기념관에 기증되었다.

24. 천여불수 반수기앙이

보물 제569-24호

천여불수 반수기암이(天與不受 反受其殃耳)

만일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벌을 받게 된다.


『춘추』 의전(春秋義戰)의

‘천여불취 반수 기구(天與不取 反受其咎)’와 같은 뜻이다.

25. 언충신행독경 만방가행

보물 제569-25호

언충신행독경 만방가행(言忠信行篤敬 蠻邦可行)

말에 성실과 신의가 있고, 행실이 돈독하고 경건하면

비록 야만의 나라에서도 이를 따르리라.

26. 임적선진 위장의무

보물 제569-26호

임적선진 위장의무(臨敵先進 爲將義務)

적을 맞아 먼저 전진하는것이 장수의 의무이다.

= 가져온 글 =

 


역사에 눈을 감는 자는 미래를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