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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비난이나 욕한 적 없는 채명신 장군이 유일하게 엄청 욕한 한 명은?

대한인 2013. 12. 8. 05:18

 

[조선pub]평생 비난이나 욕한 적 없는 채명신 장군이 유일하게 엄청 욕한 한 명은?
 
입력 : 2013.12.06 22:14 | 수정 : 2013.12.06 22:16

 


	[조선pub]평생 비난이나 욕한 적 없는 채명신 장군이 유일하게 엄청 욕한 한 명은?

 ‘사랑하는 전우들 곁에 묻어주오’

8배 큰 장군 묘역에 묻히는 걸 거절하고 베트남에서 먼저 간 전우 옆에 화장해서 묻히길 소원한 채명신 장군의 유언(遺言)이 아직도 화제다.

전우(戰友)가 아닌 국민과 나도 뭉클하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내가 그를 본 것은 두 번 뿐

그러나 1999년부터 부인 문정인 여사와 만나 경주 제주도 등 여행을 같이 가, 장군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인지 아주 가까운 분을 잃은 느낌이다.

군복 입은 사진은 신문에서나 보았고 실제로는 양복 입은 모습을 뵈었지만 훤칠한 키에 짙고 긴 눈썹, 준수한 용모에 군인 같지 않은 아주 온화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문정인 여사는 남편에 대해 맨 좋은 이야기 뿐이었다. 싸워 본 적 없고 늘 배려하고,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게 하고, 어디든 가고 싶은데 자유로이 친구들과 가게 하고, 그의 말이나 주위 오랜 친구 분들 말을 들으면 그런 남편이 지상에 잘 있을 것 같지 않고, 그야말로 세상 모든 남편을 부끄럽게 하는 남편이다.

들을 때마다 부러웠다.

신문마다 그의 월남 전투 혁혁한 공적(功績)에 대한 찬양이지만 나는 왠지 그의 인간적인 모습에 끌려 빈소를 찾았다. 점점 어른이 줄어드는데 그런 훌륭한 분을 더 가까이 하지 않았던 게 몹시 아쉽다.

많은 군인이 안내를 했고 아들 며느리, 딸과 사위를 보았고 한바탕 조문객이 몰려왔다 갔는지 늦은 오후 비교적 조용한 시간이어서 떡을 앞에 두고 문정인 여사와 오붓이 앉았다 늘 대단한 체력과 장군님 못지않은 인품으로 나를 격려해 주는 분이다.

다행히 편안히 가셨다고 하고 아쉬움이 크지만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온유하고 싸울 거리가 없으며 맛이 없어도 아무 불평 없이 그릇을 옆으로 살짝 비켜둘 뿐이라고 했다.

누구를 비난하거나 안좋은 이야기 하는 걸 본 적이 없고 오직 엄청 욕을 하는 건 김일성 하나 뿐이었다고 한다.

“아니 여보, 그리 부드러워 가지고 전쟁은 어떻게 하오” 하면 “전장에 나가면 마음이 싹 달라진다”고 했다며 웃는다.

일생 남편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었다.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사람 차별 인간 차별을 아주 싫어한 것이라고 했다.

‘인간 차별 하지않은 전쟁터 최고 사령관’에게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오다 택시 기사에게 처음 들었다. ‘라디오에서 채명신 장군이 병사 묘역에 묻힌대요.’

검은 상복(喪服)을 입은 부인과 둘이 꽤 얘기했는데 그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장군과 문정인 여사
장군과 문정인 여사

전례(前例)를 어기고서라도 가신 님의 원(願)을 들어 줄 뿐이지 그런 것으로 슬쩍 뽐낼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먹다 싸온 떡 한 조각을 집에 와 그 분의 향취(香趣)를 받듯 꼭꼭 씹으며, 부인이 존경해 마지않는 남편, 병사의 죽음에 막사에서 몰래 통곡(痛哭)을 했고 마침내는 전우 곁에 묻히어 그들의 심금을 울리는 장군, 혼란의 시기 국민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그 인품과 인간적인 면모를 나는 곱씹고 곱씹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어떤 마음 태세를 지녀야 하는지 몸소 보이신 장군님을 한뼘 병사(兵士) 묘역(墓域)에 가서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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