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수 연구관, 농촌진흥청 기술마케팅 분야 맡아
"제주도의 맑은 암반수와 유기농 콩으로 만든 두유를 국가브랜드로 키울 것"
과장에서 부장 승진에 7~8년이 걸리는 것을 1년 반 만에 이뤘다. 세계에서 가장 큰 채소종자회사의 30대 임원이 됐다. 3년 뒤 미국 본사로 건너가 동양인 최초로 '전 세계 제품관리 총괄책임자'가 됐다.
올해 6월 농촌진흥청 5급 공무원이 된 신종수(41) 박사가 갖고 있는 기록들이다.
세계 최대 채소종자회사에서 승승장구하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냈다. 그러곤 농진청 연구관 모집에 덜컥 응시했다. 억대 연봉은 3분의 1로 확 줄었고, 농진청이 수원에 있어 고시원 쪽방 신세를 지고 있다.
"왜"라는 질문에 그가 답했다. "애초 세운 계획입니다. 40세까진 저와 가족을 위해 살고 그 이후엔 사회를 위해 살기로 했거든요."
- ▲ 다국적 기업의 임원 자리를 박차고 농촌진흥청 연구관이 된 신종수 박사는“이제 나를 이렇게 키워준 사회에 진 빚을 갚겠다”고 말했다.
◆연구직, 마케팅 담당이 되다
사실 농진청은 그의 친정이다. 고려대 식량자원학과를 나와 식물유전육종 석·박사를 따고 1993년 택했던 첫 직장이 농진청이었다.
그가 맡았던 것은 종자산업법 기초를 세우는 것. 그는 네덜란드·프랑스·독일로 1년6개월간 파견돼 특허 관련 기술을 배웠다. 한국에 돌아와 종자별로 특허법 관련 가이드라인과 심사체계를 세웠다. 93년부터 꼬박 8년간 매달렸다. 100개 조항이 넘는 국내 농업 분야에서 제일 긴 법이 탄생한 배경에는 이런 그의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일단 틀이 갖춰지자 일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했다. 때마침 스위스 다국적 기업 신젠타에서 채용 제의가 왔다.
미국인 사장은 식물 육종연구직에 지원한 그를 마케팅부 과장으로 발령했다. 신 박사가 "볼펜 한 자루도 팔아본 적이 없는데…"라고 따졌지만 사장은 단호했다.
◆36세에 세계적 종자회사 임원으로
신젠타에서 신 박사가 맡은 일은 대량생산의 길로 접어든 '씨 없는 수박의 상품화'였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신 박사는 연세대 상남경영원에 등록, '주경야독'으로 판매기법이라는 것을 배웠다. 업무시간엔 마트·농가 등을 돌아다녔다. 바쁠 땐 새벽 2시에 가락시장으로 출근해 고급 술집과 호텔 식음료 담당자를 만나고 밤 11시가 넘어 퇴근했다.
"잠이 부족해도 너무 재미있었어요. 공무원은 정해진 틀을 벗어나기 힘든데 이건 내가 아이디어를 내서 시장을 개척해야 하잖아요."
이런 그의 노력을 높이 사 회사는 1년 반 만에 그를 부장으로 승진시켰다.
그렇지만 그는 부장이 된 지 1년 후인 2003년 회사에 사표를 내고 캐나다 유학길에 올랐다. MBA 과정을 밟기 위해서였다.
식물유전육종 전공에 MBA 과정까지 마친 신 박사는 2004년 세계 최대 채소종자회사 세미니스 한국지사 영업마케팅 총괄본부장이 되었다. 이 회사는 현재 몬산토에 통합됐다. 종자업계의 첫 30대 임원이었던 그는 2007년엔 미국 몬산토 본사의 유일한 동양인으로 제품관리 총괄책임자가 됐다.
◆"두유를 한국 브랜드로 키우겠다"
잘나가던 그가 농진청 기술경영과 연구관에 응시한 것은 지난 6월이었다. 신 박사는 회사를 그만두며 두 가지 선택 사이에서 망설였다고 했다. "국내 중소기업에 들어가 세계적 기업으로 키울까, 친정으로 돌아갈까 사이에서 고민 많이 했죠. 사실 농진청에 들어가는 것은 '공무원은 변할 수 없다'는 편견과 싸워야 하거든요."
농진청에서 신 박사가 맡은 일은 기술마케팅 분야다. 그는 지금 국가 브랜드와 직결되는 국내 특산품을 만드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그가 '편견'처럼 갖고 있던 '공무원 일'이 아닌 '개척자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의 맑은 암반수와 유기농 콩으로 두유를 만들고 여기에 제주도 해녀·전설로 이야기를 붙여 상품을 만들려고 해요. 파스타 하면 이탈리아, 스시 하면 일본이죠. 두유는 아직 선점한 나라가 없거든요."
<출처: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