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첫 투명폰 개발… LG전자 김영호 MC디자인硏 전문위원
"화면까지 모두 투명한 유리 덩어리 같은 휴대폰 제작하는 게 최종목표"
"지금까지 회사들이 '세계 최초'라는 말을 내걸 때마다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이 투명폰이야말로 세계 최초라는 칭호가 어울린다." 올 초 미국의 유명 IT전문 매체 씨넷(cnet)은 새로 나온 한 휴대폰에 이례적인 평을 했다. 화제의 휴대폰은 키패드가 투명하게 만들어져 뒤가 훤히 보이는 디자인의 LG전자 투명폰 '크리스탈폰'. 불투명한 금속 부품을 탑재할 수밖에 없는 가전의 특성상 요원하게 여겨졌던 투명 디자인이 실현되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 것이었다.
세계 최초로 투명폰을 개발한 주인공은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 MC디자인연구소 김영호(44) 전문위원이다. 이 회사 핵심 디자이너인 '수퍼 디자이너'에 선정된 인물이기도 한 그를 최근 서울 서초동 LG전자 연구개발(R&D)캠퍼스에서 만났다.
"5년 전 베니스에 출장 갔을 때 유리 공예로 유명한 무라노 섬에 갔었어요. 공방에서 장인들이 뽑아내는 투명한 유리를 보며 둔탁한 휴대폰도 투명하게 만들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어요. 이제서야 절반의 꿈을 이뤘네요."
- ▲ 세계 최초로 투명폰을 개발한 주인공인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 MC디자인연구소 김 영호 전문위원.
무라노 섬의 유리 공예에서 얻은 영감이 투명폰으로 연결되기까지의 과정은 고되고 험난했다. 2006년 산업디자인전람회에 미래형 휴대폰 디자인으로 투명폰의 개념을 제시해 대통령상까지 수상했지만 실용화시키는 데는 기술력이 부족했다. "그냥 투명한 껍데기가 아닌, 사용자가 투명을 흥미롭게 교감할 수 있는 기술을 넣기 위해 2년간 팀원들하고 머리를 싸맸어요. 마지막 3개월은 팀원들이 집에도 제대로 못 들어갔는데 결국 투명센서를 개발해 값진 결실을 얻었네요."
투명폰 이전에도 김 위원은 올 초 신세대들에게 큰 인기를 끈 '롤리팝폰', '아이스크림폰' 등을 디자인한 '히트폰 제조기'다. 1991년 금성사 디자인종합연구소 입사해 컴퓨터·팩시밀리 등을 디자인하다가 99년부터 휴대폰 디자인을 담당해 지금까지 100여종의 휴대폰을 만들었다. 특히 2001년 만든 초슬림 휴대폰 '아이북'은 국내만 1000만대, 전 세계적으로 2500만대가 팔린 초대박 상품이었다. "북미 시장 조사를 하러 뉴욕에 갔는데, 영화에서나 보던 늘씬한 금발의 커리어우먼들이 제가 디자인한 휴대폰을 들고 맨해튼 금융가를 누비고 있는 거예요. 웬만하면 감정의 미동이 없는 사람인데 그땐 어찌나 감격스럽던지요."
한국의 휴대폰 디자인을 이끈 1세대 디자이너로서 책임감도 막중하다고 했다. "10년 전 처음 휴대폰을 디자인하겠다고 했을 때 '제정신이냐' 묻는 선배도 많았어요. 담당 디자이너는 고작 4명이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휴대폰 디자이너 수만 130명이에요. 불과 10년 사이에 한국 휴대폰이 기적을 이뤄냈어요."
투명 키패드로 절반의 꿈을 이룬 그의 남은 절반의 꿈은 무엇인지 물었다. "키패드뿐만 아니라 화면까지 모두 투명한, 그야말로 휴대폰인지 알 수 없는 유리 덩어리 같은 휴대폰을 만들고 싶습니다."
<출처: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