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도로 건설주역 '7·7회' 방동식 회장
"그때는 (준공) 날짜를 정해놓고 다들 밤을 낮 삼아 정신없이 일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안전이나 공사의 질 같은 데선 아쉬운 점도 많았지요."
경부고속도로 건설 주역들의 모임인 '7·7회'의 방동식 회장(79)은 경부고속도로 개통 40주년을 하루 앞둔 6일 충북 옥천군 금강휴게소 건너편 언덕에 있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희생자 위령탑 앞에서 합동위령제를 지냈다. 순직자 유가족, 7·7회원, 현대건설 등 참여업체 대표, 한국도로공사 임직원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428km였다. 2년 5개월 만에 산을 뚫고 다리를 놓고 언덕을 깎아 고속도로를 완성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더구나 변변한 장비나 기술도 없이 진행한 공사였다. 이런 기적 같은 성취의 이면에는 연인원 890만명의 피땀과 함께 77명의 사망자 등 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다. 가장 힘든 구간으로 꼽힌 당재터널(현 옥천터널) 공사에서만 무려 13번의 낙반 사고로 9명이 희생됐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된 중간 지점인 이곳에 희생자 77명을 기린 탑을 세웠고, 매년 7·7회 주관으로 위령제를 지낸다. 7·7회라는 명칭은 개통일인 1970년 7월 7일, 그리고 사망자 77명에서 따온 것이다.
방동식 회장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당시 국민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확인시켜준 사업"이라며 "근로자의 피와 땀으로 일군 도로였고, 희생자 대부분이 채 피지도 못한 20~30대 젊은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당시 민족의 대동맥을 만든다는 사명감으로 심혈을 기울였지만, 그렇게 막대한 예산(총 429억원으로, 1967년 국가 예산의 23.6%)을 썼는데도 제대로 안 됐으면 역적으로 몰렸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하지만 요즘 와서 산업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으니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당시 희생자 대부분이 변변한 보상도 받지 못해 늘 죄송한 마음이고, 그래서 해마다 이렇게 위령탑 앞에 서면 부끄러움이 앞선다"며 "이제라도 그들의 값진 희생을 되새기고 보답할 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는 또 "지금이라도 모아두지 않으면 소중한 역사적 자료들이 대부분 사라질지 모른다"며 "건설 과정과 발자취를 제대로 남길 기념관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방 회장은 1967년 11월 육군본부 공병감실 소령으로 근무하다가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구성된 '청와대 파견단'의 일원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준비·기획을 맡았다. 그리고 완공 후엔 한국도로공사에 입사, 1992년 고속도로관리공단 사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20여년간 근무했다. <출처: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