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랑정신 -
국선도(國仙徒)·풍월도(風月徒)·원화도(源花徒)·풍류도(風流徒)라고도 한다. 《삼국유사》에는 ‘무리를 뽑아서 그들에게 효제(孝悌)와 충신을 가르쳐 나라를 다스리는 데 대요(大要)를 삼는다’라고 하였는데, 태초로부터 인간은 그들의 종족과 국가를 방위하기 위하여그들 나름대로의 전투술을 개발하여 각 국가의 전통무술로 발전 시켰으며 그들은 그들의 독특한 무술로서 영토 확장에 힘을 다하였다. 한국 무술은 5000년 전부터 정립된 무술을 익힌 강력한 전사들의 전통적인 무술을 계승 시켰으며 옛 고선 때에는 강병을 배출하여 만주와 저 넓은 중국의 요동에까지 그들의 영토를 확장하였었다.
고조선 이후 2000여 년 전에는 한국의 영토는 신라(新羅BC57) 고구려 (高句麗 BC37)백제(百濟BC18)의 삼국시대를 맡게된다. 이들 또한 각 나라가 서로의 영토를 확장하기 위하여 각기 특유의 무술을 개발하여 병사에게 전수시켜 삼국이 대립하게 되었는데, 신라는 일찍이 화랑제도(花郞制度)를 만들어 진골(眞骨)과 성골(聖骨)로 이루어진 귀족과 황족의 자손들로 하여금 화랑(花郞)이라 칭하고(지금의 사범)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을 랑인(郞人)또는 랑도(郞徒)(지금의 수련생)라고 칭하였다.
이 화랑들은(花郞徒-화랑(花郞)과 랑도(郞徒)) 일인의 화랑이300에서 5000의 수련 생(郞徒)에 이르렀으며 이들은 수려한 산이나 강을 찾아 단체 생활을 하면서 그들의 단결력과 무사정신과 정서교육 즉 인간수업으로 강력한 무사(武士)의 수업을 하였는데 이들은 향가와 가무로서 그들의 정서 교육과 도덕을 함양하였으며 무술(격기술 과 무기술), 마술, 궁술 등을 익혀 용맹한 전사들을 만들어 국가에 충성하는 군에 편재시켰고, 진흥왕(AD540-577)때에는 그들의 화랑제도를 현재의 군 사관 학교와 같이 국가 의 군대를 양성하는 기구로 만들고 원광법사가 세속에 있는 다섯가지(世俗五戒) 계율을 귀산 과 추항이란 두 화랑에게 전하여 화랑오계(花郞五戒)로 바꾸고 이를 화랑들의 율법 으로 삼아 용맹한 군사들을 배출하였는데 그들은 삼국을 통일하는데 과업을 완수하였고 그들이 닦은 무술은 호국 무예로서 계속 천년이란 긴 세월을 신라의 황국 이름을 지속 시켰으며 세계에 유일한 자랑스러운 천년의 가장 긴 역사를 가진 황국이 된 것이다.
또한 일본도 여러 번 정복하고 제압시킨 것이다. 이들의 화랑제도(花郞制度)는 고려(高麗)에까지 성행되었으나 그 당시에는 화랑들(花郞徒)의 화랑제도는 없어지고 고려조 때에는 국선들(國仙徒)의 국선제도(國仙制度) 풍월들(風月徒)의 풍월제도(風月制度)라 하여 화랑제도(花郞制度)의 변신 이 되었다. 고려에서는 이들의 한 장군 밑에 수백에서 수천의 사병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오로지 한 장군 에게 충성을 다하였으며, 이러한 신라 화랑제도는 일본에 전파되어 일본의 무사도정신(부시도-武士道)를 만들었으며 일본 또한 한 장군(쇼군將軍)밑에 많은 사병(사무라이 또는 랑인郞人)들을 두고 각 쇼군들의 영토확장을 위한 전국시대(戰國時代)를 맞이하게 되었다. 신라 화랑제도의 화랑은 일본의 쇼군(將軍)이며 그들의 사병(私兵)즉 사무라이들은 료진(郞人)이라 불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