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民畵)는 단순한 장식 그림으로 다남(多男),부귀공명(富貴功名),길상(吉祥) 등의 의미를 담은 민중의 그림이다. 근대 일본인 민예학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民畵'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하였지만 이러한 민중의 그림은 '세화(歲畵)'에 그 바탕을 두고 '속화(俗畵)'라는 장르 밖의 시각으로 당시에는 일상적으로 불려졌다. 특히 민화는 관청 도화서(圖畵署) 화가의 규식적인 틀을 벗어나 넓은 개념으로 민중의 생활문화 공간이 창출한 가장 한국적인 정서와 의미를 눈으로 확인시키는 그림이다. 이 방에서는 민화의 여러 형태 중 소장하고 있는 문자도와 화조도를 펼쳐보고자 한다. 먼저 실용화로서 비백서(飛白書), 또는 혁필화로 불리는 것인데 문자도보다 앞서 형성된 그림으로 남아있는 것이 드물다. 이 글씨는 버드나무 가지 끝을 갈라지게 깎거나 가죽을 다듬어 거칠고 분방하게 쓴 장식용 글씨로 교화적인 의미가 강하지만 점차 문자의 형태가 사라지면서 회화성이 강조된 그림으로 발전하게 된다. 뒷 부분의 현대 민화 작품은 전통 민화와의 정겨운 교감을 위해 필자가 직접 그려온 작품들로 꾸며 보았다. |
문자도(文字圖)
민화는 그림을 감상하기 위한 그림이 아니라 민중의 소원을 상징적으로 풀이한 그림이다. 문자도는 앞서 제시된 비백서(飛百書)에서 비롯된 것으로 유교적 덕목인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 의(義), 염(廉), 치(恥)의 글자에 설화의 내용을 담아 문자를 그림으로 도안한 것이다. 또한 각 8폭의 글자마다 상징적으로 고사(故事)를 표현하는 데에는 일정한 형식이 있다. 여기서는 조선후기에 그린 충. 효. 예. 신 네 폭만을 실었는데, 특이한 것은 '충'자가 두 폭씩 네 폭으로 되어있다. |
화조도(花鳥圖)
화조도는 꽃과 새가 어우러지고 나비가 나는 아름다운 그림으로 볼 수도 있지만 민화의 대부분은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부귀와 장수, 벼슬의 승진, 남녀화합 및 다남(多男), 재산이 늘기를 염원하는 마음 등을 소박하게 그린 것이다. 때로 민화가 문인화풍의 흉내를 내기도 하지만 대체로 민화는 완벽한 표현보다는 미숙한 표현이 주는 여유와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기존 화법의 틀을 깨는 창조적인 표현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고유섭님은 그의 미술사 논고에서 민화의 치밀하지 못한 점이 오히려 더 큰 전체에 포용되어 구수한 큰 맛을 이루게 한다고 하였다. 이곳에 펼쳐 본 조선 후기 8폭 화조도는 부귀를 뜻하는 모란과 벼슬에의 등용을 소원하는 잉어, 봉황은 성군(聖君)을, 여성의 골반이나 남성의 성기 등을 표현한 괴석은 남녀의 화합을 표현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