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글 자 료
한글 자료실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우리 언어와 문화 생활의 근간이 되는 훈민정음(訓民正音) 관련 자료실, 박물관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세종실록] 25년(1443) 12월조에 “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是謂訓民正音.” (이달 12월 임금께서 친히 언문 28자를 만들었는데, ...이것을 훈민정음이라 이른다.) 그 다음 해 곧 세종 26년(1444) 2월에는 집현전(集賢殿)의 최 항(崔恒)·박팽년(朴彭年)·신숙주(申叔舟) 등이 한글로 중국의 운서(韻書)인 [운회(韻會)]를 번역하고, 또한 같은 해 2월에 집현전의 부제학(副提學)으로 있던 최만리(崔萬理)가 한글의 창제 사용에 대하여 반대 상소문을 올리고, 세종 27년(1445) 4월에는 125장이나 되는 장편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한글과 한자를 사용하여 지었고, 세종 28년(1446) 12월에 세종은 이조(吏曺)에 명하여, 이과(吏科) 및 이전(吏典)에 필요한 인재를 뽑는 시험에 훈민정음을 아울러 쓰도록 하였다.
이후로 한글은 주로 규방 여인들의 글이었고, 마치 한자를 읽는 발음 부호처럼 생각되어 왔습니다. 특히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우리의 말과 글을 잃고 오늘에 이른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 방에서는 한글이 어떤 형태로 오늘에 이르고 있는지 그 흔적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