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항에서 15.7km 남쪽에 위치한 팔미도는 두 개의 섬이 사주에 의해 연결된 형상이 마치 여덟 팔(八)자처럼 양쪽으로 뻗어내린 꼬리와 같다고 해 팔미도(八尾島)라 이름 붙여진 섬이다. 팔미도는 낙조의 아름다운 풍경이 절정을 이룬다하여 '팔미귀범(八尾歸帆;낙조 때 팔미도를 돌아드는 범선의 모습)'이라 불리며 인천팔경 중 한 곳으로 인천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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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팔미도는 그동안 군 시설로 분류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작 그 섬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팔미도를 보기 위해서는 주변 뱃길을 오가는 선박이나 가까운 섬, 일부 해안가 등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팔미도는 신비에 둘러싸인 섬으로 누구나 꼭 가보고 싶어 하는 동경의 섬이었다.
그렇게 106년이란 긴 시간을 외부인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던 팔미도가 군에서 인천시로 인도된 후 2009년 인천방문의 해, 새해 첫날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오랜 시간 기다려왔던 이들에겐 희소식 같은 뉴스였다. 그 후 '신비의 섬, 동경의 섬 팔미도'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되면서 그동안 희미한 해무에 가려진 것처럼 꼭꼭 숨겨져 있던 팔미도의 비밀이 하나둘 세상 밖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사람들은 팔미도 입도를 기다려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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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팔미도 입도를 기다려 온 이유는 인천팔경 중 한 곳이라는 점도 있고, 손 타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파괴되지 않은 생태계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팔미도가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가 있는 곳이자 팔미도 앞바다를 지나는 수많은 배들의 안전한 항해를 인도하는 최첨단 등대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팔미도는 등대와 얽힌 한국전쟁의 잔상을 뒤돌아 볼 수 있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섬이기에 사람들은 팔미도에 한번쯤 가보고 싶어했다.
106년만인 지난 2009년 개방된 팔미도, 국내 최초의 등대가 있는 곳, 또 한국전쟁의 종지부를 찍는 중요한 역할을 한 팔미도를 얼마 전 찾았다.
연안부두에서 유람선을 타고 40분 거리에 있는 팔미도로 향하는 뱃길 위에서 관광객들은 인천의 눈부신 발전을 경험하게 된다. 해안선을 타고 발전한 인천도심의 모습을 보고 한 번 놀라고, 송도와 영종도를 잇는 인천대교의 웅장함 모습에 또 한 번 놀란다. 특히 바다의 중심에 하늘을 향해 우뚝 서있는 인천대교 '주탑' 밑을 지날 때 배 위에는 관광객들이 지어내는 놀라움의 탄성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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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미도에 일반인들의 접근이 가능해졌다고는 하나 소팔미도를 비롯해 일부 군사시설물에 대해서는 여전히 민간인의 접근이 제한되고 있으며, 팔미도의 중요시설과 생태계를 보존하기위해 지켜야 할 몇 가지 규칙이 있다. 첫째, 팔미도 내에서는 일체의 취사행위 및 음식물 반입이 금지된다. 둘째로 섬 전역에서 금연이며 '적발시 4만원의 과태료'를 내야한다. 셋째로 군시설물, 중요시설에 접근하거나 사진 촬영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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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미도 앞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천년의 광장에는 '천년의 빛' 팔미도 상징 조형물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중앙의 기둥은 팔미도 등대를 상징하며, 주변에 나선형으로 배열된 100개의 기둥은 100년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100개인 빛기둥이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모습은 지난 100년간 밤바다를 밝힌 팔미도 등대가 앞으로 다가올 천년의 세월동안 변함없이 우리나라 항로표지의 이정표가 되기를 염원하고 있으며, 빛기둥 사이의 반원형상은 수평선으로 떠오르는 태양으로 새천년을 향해 힘차게 출발하는 희망을 담고 있다.
천년의 광장에서 기념촬영이 끝나고 팔미도등대가 있는 정상을 향하는 길에 다다르면 조그맣고 아담한 건물이 시선을 붙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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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영화 속 세트장처럼 아담하고 아늑해 보이는 관리사무실은 관광객들의 이목을 끌 수밖에 없다. 비록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지만 창문을 통해 비춰지는 사무실의 풍경을 보기 위해 창가에 사람들이 기웃거린다.
1903년 6월 1일 첫 불 밝힌 대한민국 최초의 '팔미도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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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0호인 팔미도 등대(높이7.9M)는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로서 인천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하여 지정학적으로 해상교통 흐름의 중심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으며, 항로표시의 효시라는 역사적 의의가 있다. 1894년 공무아문이 설치되고, 1902년 5월 소월미도, 북장자서, 백암 등과 함께 건축에 착수하여 1903년 4월에 준공되었으며, 같은 해 6월1일 국내 최초로 밤 바다를 빛추었다.
인천지방해양항만청은 2003년 한국 등대 100년을 맞이하여 국가의 동북아물류 중추 항만으로 부상하는 인천항의 해양환경 변화에 맞추어 지난 100년 동안 인천항을 드나드는 선박의 항해 길잡이 역할을 해 온 팔미도등대를 퇴역시키고, 현대적인 조형미와 위성항법 보정 시스템 등 첨단 항행 지원 장비를 갖춘 '100주년 기념등대'를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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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미도등대가 100여 년 동안 바닷길을 밝힌 역사속의 등대라면 100주년 기념등대는 국내 기술진이 만든 최첨단 등대이자 팔미도 등대가 지닌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등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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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전시관에서 빠트릴 수 없는 것이 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상황을 생생히 표현하고 있는 모형도다. 우리는 이곳에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과정과 팔미도의 작은 등대가 불을 밝히게 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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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미도 등대에 불이 밝혀진 것을 확인한 맥아더사령관은 유엔군 함대에 인천만에 상륙할 것을 명령한다. 결국, 인천상륙작전은 적군의 허를 찌르는 작전으로 한국전쟁의 종지부를 찍게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인천상륙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더불어 불가능을 가능케 한 작전으로 세계전쟁사에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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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길은 팔미도의 자랑 숲길(산책로)을 따라 내려오면 된다. 이 길은 팔미도 허리를 도는 것으로 20여 분 소요된다. 106년 동안 자연 그대로 보존된 팔미도의 산책길에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해송)와 취나물, 골무풀, 각시붓꽃, 씀바귀, 흰색제비꽃, 원추리, 쑥, 구름버섯, 능이버섯 등 이름을 알 수 없는 식물들을 구경하다 보면 출발지에 도착하게 된다. 실제로 팔미도에는 100여 종류의 식물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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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마치면서 부탁하고 싶은 것은 팔미도를 지켜달라는 것이다. 팔미도 여행전 가이드가 주의사항을 당부한 바 있다. 그러나 일부, 그 규정을 어겨가며 제한구역을 굳이 들어가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금연제한구역임에도 흡연을 시도하는 사람들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조금만 참으면 남에게 피해도 안 주고 106년이라는 긴 시간을 홀로 지켜온 자연의 아름다움도 지킬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