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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씨의 말처럼 현대를 사는 젊은이들이 나를 수구 꼴통 고물짝 취급을 할지 몰라도 , 난 누가 뭐라고 해도 그 분의 군사혁명 체제하에 청소년 시절을 살아 온 사람으로서 적어도 그 분의 업적이 잘못되고 잘 된것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는 나 나름대로 할 수 있었기에 현대를 살아가는 일부 사람들은 그분을 마치 민주주의를 말살 시킨듯 매도를 하고 있지만
난 그런 어설프고 섣부른 잣대질의 주장에 대하여 수긍을 하지 못하는것도 사실이다. 난 그 당시 섣부른 식자 층 사람들의 민주주의 말살론에 대한 동조 보다는 당장 보리밥 세끼도 못먹는 현실의 아픔이 더 절실하였다. 지극히 일부이지만 그 시절 민주주의 말살을 주장하며 외쳤던 사람들은 대부분 자유당 시절의 정치 그늘에 길들여져 그들의 논리로는 당연히 박대통령의 혁명 체제가 불만이었고 불평이었고 주장이었다
나 또한 비록 어린 시절이지만 자유당 시절의 어지로운 시국을 어깨넘어 걸치며 지난 세대로서 내가본 자유당 시절의 민주주의는 대통령 투표 당일날 울 엄니를 비롯하여 마을 아낙네들은 3.15 부정 선거가 치뤄 지는날 투표장엔 가지못하고 시골집 양지바른 추녀밑에 삼삼오오 모여서서 멀리 논틀길을 하얀 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 차려입고 투표하러가는 사람들을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 보면서
투표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마 운명적으로 부름받고 태어난 사람들이라는 듯 부러워 하시며 바라보던 울 엄니의 모습을 잊을 수 가 없다. 당시 울 엄니는 국민핵교도 못 나오셨으니 행정관청이 주도하여 치러지는 부정선거 앞에 감히 누가 항거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숭고한 4.19 학생의거로 태어난 민주주의 정부는 마치 병치레로 성치못한 모습으로 비틀거리며 제몫도 챙기지 못하다
언제부터인가 더 푹푹썩기까지 하더니 결국은 어느날 갑자기 5.16 군사혁명이라는 바람을 맞고 마치 된 서리맞고 떨어지는 낙옆처럼 우수수 우수수 떨어졌으니 과연 설익은 그들이 부르짖던 민주주의가 얼마나 갈팡질팡이었는지 당시 20세 미만 미성년자 이어서 인지는 몰라도 난 솔직히 그때 서툰 민주주하며 배 굶는것 보다는
480구호양곡 밀가루 배급받으며 사방공사에 나무심으러 다니며 그 일당으로 밀가루 받아 굶주렸던 배 채울 수 있었던 혁명정부가 얼마나 신바람이 낫는지 모른다. 그 어린시절 남북접적지역인 파주(임진강변)에 살고 있었던 나는 그 시절 손가락 보다도 가느다란 잣나무, 은사시나무, 밤나무, 낙엽송.등등 각종 묘목을 사방공사에 나가심으며 과연 내가 심은 나무들이 언제 자라서 그늘 질때를 볼 수 있을까 반문하며
나무심는 사방공사에 전념 하여 대 가족이 춘궁기엔 보리밥은 커녕 밀가루에 봄나물 뜯어다 넣고 풀떼기 쑤워 배를 채우다 사방공사로 벌어들인 밀가루 푸대가 차곡차곡 집안에 쌓이면서 수재비도 해먹고 만두도 만들어 먹을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아마 요즘 사람들 문화로 보면 처절한 거지같이 살아온 인생이지만
난 이따금씩 차를 몰고 자유로를 달려 임진강변에서 바라보면 북한땅은 40년전이나 현재나 산이란 산은 온통 새빨갛에 벗어저 있는데 우리나라쪽 산을 바라보면 내가 어려서 심은 나무들이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는것을 바라 볼때면 그때 그시절시절 "박정희 대통령께"서 전국민들께 사방공사의 필요성을 강조 하시며 하신 말씀 중에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보호"라는 스로건을 내걸고 전국에 나무를 심으신 업적의 혜택을 그분은 가시고 오늘날 우리들이 누리고 있음을 실감하면서 난 솔직히 서툴게 말 잘하고 선동 잘 하는 사람들이 내걸었던 민주주의 하면서 배곱은 설음 받는것 보다는 늘 부지런히 일하며 실천하시는 모습으로 국민들 허기진 배 채워주며
일거 양득으로 오늘날 우리나라 산하를 녹지로 만들게 하신 고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에 대하여 비록 님은 가고 아니 계시지만 낼 모래면 고희를 바라보는 내 인생 현재 까지 누가 뭐라해도 "고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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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가난했기에 흘려야 했던 大統領의 피눈물-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이여 이 글을 보라!-
이글은 전 조선일보 기자였던 조갑제의 세계에서 올린 글에서 발취한 것이다 이글은 序頭에서 대한민국 장래를 짊어질 改革과 新進의 주제인 여러분들은 5.60대들이 겪은 아픔을 얼마나 아는가라고 시작하였고 또한 이글은 2003년 11월22일 육군사관학교 학생 1000명에게 강연한 내용이기도하다
5,60 대를 수구골통이라 몰아 부치는 젊은이들아. 이 글을 보라! 너희가 祖國을 위하여 과연 얼마만큼 땀과 눈물을 흘렸느냐? 지금 너희들의 누리고있는 편안한 삶 뒤에는
5.16 혁명 뒤 미국은 혁명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을 인정한다면 아시아 또는 다른 나라에도 그리고 원조도 중단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朴正熙 소장은 호텔에 돌아와 빈손으로 귀국하려고 짐을 싸면서
*가난한 우리에게 돈을 빌려줄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우리와 같이 분단되어 미국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서독에 간호와 광부가 필요해서 고졸출신 파독광부 500명을 모집하는데 면접 볼 때 손이 고와서 떨어질까 봐 서독 항공기가 그들을 태우기 위해온 김포공항은
낫선 땅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말도 통하지 않는 여자 간호사들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어린 간호사들은 울면서 거즈에 알콜을 묻혀 하루종일 닦고 또 닦았다. 남자 광부들은 지하 1000 미터 이상의 깊은 땅 속에서 서독 방송 신문들은 대단한 민족이라며 가난한 몇년 뒤 서독 뤼브케 대통령의 초대로
그 때 우리에게 대통령 전용기는 상상할 수도 없어
그러나 서독 정부는 친절하게도 어렵게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을 거리에
코리안 간호사 만세!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박 대통령은 창밖을 보며
서독에 도착한 박대통령일행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고국의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에 대통령 연설 앞에 우리나라 애국가가 흘러 나왔을 때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
단지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이역만리 타국에 와서 우리 열심히 일 합시다. 눈물에 잠긴 목매인 소리로
가난한 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그리고 고국에서 배곪고 있는 가난한 내 나라 국민들이
대통령이란 귀한 신분에 채면도 잊은채 소리내어 눈물 흘리고 어머니~ ! 어머니~ !하며 육 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고 육 여사도 함께 울면서 조금만 참으세요 라고 위로하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뤼브케 대통령도 울고 있었다. 연설이 끝나고 강당에서 나오자 *호텔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 탄 박대통령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옆에 앉은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직접 주며 우리가 도와 주겠습니다.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유엔에 등록된 나라 수는 120여 개국, 필리핀 국민소득 170여불, 우리 밑에는 딸랑 인도만 있었다. 세계 120여 개국 나라중에 인도 다음으로
1964년 국민소득 100달러, 100달러를 위해 우리는 머리카락을 잘라다 외국에 팔았다. 동네마다 엿장수를 동원하며 머리카락 파세요. 파세요” 시골에 나이 드신 분들은 서울 간 아들놈 학비 보태주려 그래서 한국의 가발산업은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전국에 쥐잡기 운동을 벌였다. 쥐털로 일명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돈 되는것은 무엇이던지 다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이렇게 저렇게해서 1965년 수출 1억달러를 달성했다.
세계가 놀랐다. 저 거지들이 1억달러를 수출 해? 하며 ‘한강의 기적’이라며 조국 근대화의 점화는
박 대통령이 왜 그토록 경제발전에 그는 큰 아버지 였다. 적어도 지금 우리세대와 더 나아가 앞으로 태어날 후손들을
우리가 올림픽을 개최하고 월드컵을 개최하고 세계가 박대통령과 당시 세대들이 힘을합처 젊은 세대들은
고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는 허구한날 자유 대한민국의 박 대통령과 땀흘려 일한 저분들이 없었다면 분명 오늘은 없다 국가의 운영은 큰틀 전체로 보아야한다. 우리가정이 잘살기위해 참고견뎌야하듯 지금 우리의 마음속에 진정한 국가관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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