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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첫 향교 터

대한인 2014. 1. 1. 10:55

고려 충렬왕 때 대학자였던 안향이 왕명으로 원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는데 원나라 임금이
'귀하의 나라에도 향교가 있는가'라고 묻자 안향은 국위를 생각해 '향교가 있다'고 거짓 대답을 했다고 한다
귀국한 안향은 이 사실을 임금에게 고했고 충렬왕은 뱃길 교통의 초입인 해남 백포만 근처
송양현 현읍인 현 현산면 향교마을에 향교를 설립하라 명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향교마을에 들어선 향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라고 말 할 수 있다
이곳에 들어선 향교는 조선 태종 12년 해남현의 현읍인 현재의 해남읍 고도지리로
1차 이설했고 성종 12년에 구교리로 다시 이전했다

또 영조 15년(1737년) 5월에 현 위치인 미암산 아래 새 터에 신축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현산면 향교마을에 들어섰던 향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설립된 향교이고 그
후신이 현재 해남읍 수성리에 들어선 향교이기에 땅끝 해남은 전국 유림들의 성지라고 볼 수 있다

삼한의 옛터인 현산 향교마을은 고려시대 송양현의 현읍지로 남쪽에는
달량진과 어란진 등 항포구에 둘러싸여 있는 해로의 중심지였다
또 이 마을의 주산인 가공산 넘어는 백포만과 연접한 바다길이다
백포만은 옛날 중국 송나라와 교역을 했던 포구도시였다

사람의 왕래가 많았던 향교마을 인근에는 월송 우시장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장이 서는 날에는
갓 쓴 사람의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붐볐다고 한다
또 현재 향교마을에는 옛 향교 터를 증명해 주는 여러 유적들이 남아있다

현산 향교마을 위쪽 산 밑 마초정(馬草井)에는 지금도 물이 넘쳐흐르고 있고 그 옆에는 말들이
물을 먹고 쉬었다는 마장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그 샘 아래 연못 옆에는 노송이 옛 영화를 말해 주고 있다

향교마을 안에는 물맛 좋기로 소문난 샘이 있는데 고려시대 때 송양현의 현청에 출장 온 손님들에게
그 샘물을 대접했다고 해서 손님샘이라고 현재도 부르고 있다
근방 비옥한 땅에는 향나무가 있었는데 향나무는 제사용으로 사용됐다

이 마을 옛 향교 터는 밭으로 변해 수년전만 해도 밭을 갈면 쟁기 끝에 토기와 기왓장 파편이 출토됐다
또 활쏘기를 연습했던 사장과 감옥 터에는 주춧돌이 남아있다
현재 향교 터는 김순복씨가 소유하고 있는 터로 이곳 주민들은 성기 터라 부르고 있다
지적부상으론 현산면 월송리 밭 1018-1번로 800평 규모이다

이 유적지가 수백 년 동안 방치돼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각성해야할 문제이다

찾아오시는 길 : 해남읍~완도방면~해남 현산면 월송리~미황사방면~현산 향교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