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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사진전 (1)

대한인 2014. 1. 29. 04:46

6.25 전쟁 사진전.

봄꽃이 한창 흐드러지게 핀날 분당 중앙공원 광장에서 열린 사진전에서 담아 온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난지 올해로 꼭 60년이 되는 해 입니다.

얼굴도 모르는 16개 나라의 젊은이들이 한국과 한국 국민들을 위해 귀한 목숨을 바쳤습니다.  

이 사진을 보며  전쟁의 참상과 이런  비극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1948. 8. 15. 지금은 사라진 중앙청 청사에서 대한민국을 선포하는 행사 정경입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의 초청으로 정부 수립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두 사람은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웠다 합니다

 

 

전쟁이 일어나자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왜 전쟁을 해야하는지도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조건 고향을 등지고 떠났습니다.

지금보면 보잘 것 없는 살림살이지만 당시에는 목숨을 연명하는데 필요한 것이기에 이고. 지고. 끌고.

끝없이 이어지는 피난민의 행렬이었으며 이들의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저 사진속의 아이들. 참 가슴이 아픕니다.  

 

 

 

 

1950. 6. 25. 시작된 북한 공산군의 갑작스런 침투에 맞서 나라를 지키고자 대한민국 병사들이

전선에 투입되고 있습니다. (1950. 7. 22 촬영)

 

국군 1사단 병사들이 대전차포를 발사하고 있는 모습 (1950.7.22 촬영)

 

공산군의 박격포 공격이 치열해지자 낙동강 전선을 방어하던 미 해병 대원들이

참호 안에 깊이 피신해 있지만 참호가 그들의 생명을 철저히 보호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1950.8월 초)

 

1950. 8. 6. 북한 공산군 제4 사단이 창녕군 영산지역 돌파를 시도하면서 피난을 가던 주민들을 발각해 살해한 모습입니다.

 

낙동강 방어 전투에서 부상당한 국군을 미군 병사가 치료를 위해 응급시설로 호송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1950. 8. 28)

 

낙동강 전선에서 계속되는 전투로 지쳐있는 모습이며  

전투 중 전사한 동료 때문에 공황상태에 빠진 동료를 달래는 병사들의 모습입니다. (1950. 9. )

 

  

6. 25 전쟁 기간 중 일반 노무자들은 탄약. 식량과 군수 물자를 나르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임금을 지급받고 일을 했지만 전쟁을 승리로 이끈 알려지지 않은 영웅들입니다.

 

낙동강 전선 후방의 경상남도 김해와 진영 사이에 있는 피난민 수용소의 모습입니다.

김해 인근에만 125,000 여명 이상의 피난민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1950. 9. 1)

 

인천 상륙 작전에 앞서 유엔군 사령부 지휘부가 최종 희의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벼랑끝에 몰려있는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절제절명의 순간에 이루어진 구출의 손길이었습니다. (1950. 9. 15)

 

1950. 9. 15. 유엔 사령부 예하 육.해.공군 합동으로 실시한 인천 상륙작전의 모습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상륙 작전이었습니다.

  

사진은 인천 상륙작전 성공 후 4척의 미 해군 상륙정이 군인들과 장비를 해안에 상륙시키고 있는 모습이며

모두가 폐허된 처참한 모습입니다.

 

낙동강 전선까지 공격하던 북한 공산군은 9.23일 부터 모든 전선에서 철수하기 시작하고

인천상륙 작전을 성공시킨 유엔군과 국군은 9.27일 서울을 탈환.

 9.27일 아침 6시10분에 마침내 당시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는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