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야에 일가를 이룬 사람에게 무엇인가
배울게 있습니다. 바둑계의 입지전적인 인물로부터 한수 배우시기 바랍니다.
1. 바둑을 두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만이 곧 패착'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스스로 교만할 줄 모르는 것이 자만의 포석이고,
아예 겸손한 척하는 것이 자만의 중반적이며,
심지어 자신이 겸손하다고 착각하는 것이 자만의 끝내기다.
그것이 내가 30년 가까이 반상을 마주하며 수없이 많은 실전에
임하면서 비로서 깨닫고, 가장 경계했던 부분이다.
2. 바둑의 속도는 외형으로 드러나는 행마의 속도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 감춰진 인식의 속도, 판단의 속도가 중요하다.
몸에 맞는 옷과 같은 것, 바로 적정의 속도가 핵심이다.
그것을 달리 표현하면 '균형'이다.
3. 바둑은 균형을 다루는 게임이다.
실리든 세력이든 어느 한쪽으로 극단적으로 기울면 승리의 길은 멀어진다.
'살아있는 기성'으로 추앙받는 우칭위엔 선생이 갈파한
'바둑은 조화'라는 말과도 같다.
4. 재능을 가진 상대를 넘어서는 방법은 노력뿐이다.
더 많이 집중하고 더 많이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바둑에는 '복기'라는 훌륭한 교사가 있다.
승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주고,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준비'를 만들어준다.
5. 무릇 숭부에 임할 때는 자신을 다스려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법이다. 나아가야 할 때는 주도면밀하게, 가만히 있어야 할 때는 신중하게
기다려야 한다. 일단 전진하면 실패의 여지를 없애야 하고, 부동할
때는 불필요한 기미를 보이지 말아야 상대를 서서히 제압할 수 있다.
6. 내가 바둑을 둘 때마다, 할아버지는 상대에게 일일이 담배값이나
찻값, 자장면 값을 내어놓았다.
그때 평생을 간직할 교훈 하나가 자연스럽게 내 마음 깊이 새겨졌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 크든 작든 중요하든 사소하든 무엇을
얻으려면 반드시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게 세상을 살아가는 바른 법칙이다."
할아버지는 단 한 번도 내게 "세상에 공짜가 없다"고
이야기한 적이 없지만 몸소 실천함으로써 백 마디의 말보다 소중한
삶의 교훈 하나를 각인시켜준 것이다.
7. 중요한 승부에서 패하고도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다면
그 사람은 이미 프로가 아니다. 그것은 인품과 무관하다.
승부사에게 패배의 아픔은 항상 생생한 날것이어야 한다.
늘 승자가 될 수는 없지만 패자의 역할에 길들여져서는 안 된다.
-출처: 이창호, (이창호의 부득탐승), 라이프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