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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맥스의 에이스 제 4편

대한인 2014. 2. 6. 04:44

라일의 독수리 이멜만의 기동과 그의 최후
 
 
막스 이멜만은 1890년 9월 21일, 독일의 드레스덴이란 곳에서 태어났다. 그가 15세 되던 해, 장교 후보생 학교에 입학했고, 그때부터 그는 새로운 신병기와 엔진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일차대전이 발발한후 이멜만은 헤르만 카스트너 (Hermann Kastner) 대위가 비행대장으로 있던 비행대로 전속된다. 거기서 독일의 초기 2인승 정찰기를 주로 탑승했는데, 1915년 5월, 새로운 최신예기 포커 아인데커기가 전선에 도착했다.
 


 
 


이멜만이 자신의 포커 아인데커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숲속에 있는 비행장인지, 뒤쪽에 보이는 나무사이의 아인데커기의 모습이 멋들어지군요

 

그런데 그 당시 이 포커기의 생산 속도가 너무 낮아, 이멜만의 비행대에는 단 한대만이 지급되었는데, 비행대장 헤르만은 자신의 부하 조종사중 가장 기량이 뛰어났던 뵐케와 함께 아인데커기를 이용해 기동을 연마해 나갔다. 헤르만과 뵐케는 이 새로운 아인데커기를 시승해 보고는 멋진 기동과 또 신무기 싱크로나이즈 기관총의 위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후 또 한대의 포커 아인데커기가 비행대에 지급되었고, 이젠 뵐케가 아인데커의 비행교관이 되어 전대원의 비행교육을 시작했고, 그의 친구인 이멜만에게도 비행 조작법을 전수해 주었다.
 
하지만, 포커기의 댓수가 워낙 적어, 여러 파일롯들이 번갈아 타야하는 불편이 있었다. 당시 포커 아인데커기는 모든 조종사들이 한번이라도 타보고 싶어하는, 그런 전투기였다.
 
1915년 7월, 이멜만은 소위로 임명되었고, 8월 1일, 영국의 BE2c기를 아인데커를 이용해 격추시키게 된다. 뵐케도 같이 공중전에 참가했지만, 뵐케는 싱크로나이즈 기관총 고장으로 후퇴해야 했고, 남아 있던 이멜만이 영국기를 명중시킨후 격추시킨 것이다.
 
이멜만과 뵐케가 같은 비행대에서 활동한 기간은 매우 짧았지만 그둘은 라일 상공의 제공권을 양손에 꽉 움켜지고 있었다. 1915년 9월, 뵐케는 다른 비행대로 전출되어 갔고, 이멜만이 유일한 라일의 포커 아인데커 파일롯으로 남았다.
 
이멜만은 아침에는 LVG 정찰기로 정찰비행을 했고, 오후와 저녁시간엔 아인데커를 몰고 사냥비행을 나섰다. 이제 라일 지역 상공에선 이멜만을 막을 적은 아무도 없었고, 이때부터 그는 "라일의 독수리(The Eagle of Lille)"로 불리기 시작했다.
 
비록 뵐케와 이멜만이 각기 다른 비행대로 나뉘어 헤어졌지만, 모두 8기씩 격추기록을 달성하게 됐고, 동시에 두사람은 독일 최고 훈장인 "블루맥스(blue max)"을 수여받는 영예를 안게 된다. 그때가 1916년 1월의 일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공군조종사에게 처음 수여된 블루맥스이기도해, 더욱 뜻 깊은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멜만의 새로운 기동술..
 
이멜만은 뵐케가 강조했던 것처럼, 태양을 등지고 공격하는 전법을 주로 구사했는데, 이렇게 되면, 적기의 조종사는 공격하는 전투기가 기총사격을 하기 전까지는 적기의 존재를 모르게 되는 경우가 많아, 매우 효과적인 공격법이 되었다.
 
일단 고공에서 태양을 등지고 첫번째 후방 공격을 한 후, 곧 바로 격추되지 않는다면, 제 2차 공격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쨌든 자신의 전투기의 진행방향을 바꿔야만 했다. 그래서 이멜만은 급하강해온 속력을 이용해 적기 위로 반회전(half loop)을 한후, 방향을 다시 적기쪽으로 바꿔 공격하는 새로운 기동을 고안해 냈다. 이것은 현재 기동술의 하나인 "이멜만 기동"과는 엄밀히 말해 차이가 있다.
 
즉 루프(loop)를 돌며 완벽한 롤(roll)을 해내기에는 아인데커기의 견고성이 역부족이라, 현대의 이멜만 기동은 이멜만 이후의 조종사들이 변형시킨 기동이라 할 수 있다. 여하튼 이멜만의 자신의 새로운 기동전법으로 아주 빠른 시간내에 적기를 연속 공격할 수 있었던 최초의 파일롯이었다.  
 
또 이멜만의 사격술은 짧은 점사로 적기를 정확히 명중시키는 것이어서, 한대를 격추시키는데, 많은 총탄을 소비하지 않아도 되었고, 적기를 격추한 후에도 연료만 충분하다면, 오랫동안 상공에 머물며, 또 다른 적기를 공격할 여력을 충분히 지녔었다고 한다.
 


 
 


이멜만의 최후... 라일의 독수리 이멜만, 그는 자신의 애기의 총탄에 프로펠러가 날아가는 바람에 비운의 죽음을 맞는다. 위 사진은 그의 아인데커기가 추락한 잔해다. 둘러싼 독일군들의 모습이 모두 침통함에 젖어있다.
 

 
라일 상공에서 그는 무적의 파일롯이라 여겨지게 된다. 그러나 이런 독일의 신념은 일시에 무너져 버리는데, 1916년 6월 18일, 이멜만이 영국기 2기를 공격하다가 추락한 것이다. 이것은 서부전선 전체의 충격이었다. 그때 독일지상군들이 이 장면을 목격했는데, 그들의 말에 따르면, 이멜만의 전투기가 갑자기 두 동강이가 나더니, 곧 추락했다는 것이다.
 
독일인들은 이멜만의 싱크로나이즈 기관총이 고장을 일으켜, 자신의 프로펠러를 맞추었고, 내구성이 약한 아인데커가 하강하는 속력을 이겨내지 못해 두동강이가 난후, 추락한거으로 생각하게 됐다. 이 일은 포커 아인데커기의 설계자  앤소니 포커가 이멜만의 격추 잔해를 조사한 후 뚜렷히 증명되었다. 그러나 공군의 사기를 고려한 포커는 이일을 발설하지 않았고, 이멜만은 아군의 대공포 사격에 명중되어 격추된 것으로 결론내렸다고 한다.
 
이와 반대로 영국 공군은 25 전투 비행단의 맥커빈(McCubbin)과 월러 (Waller)소위가 전투도중 이멜만을 격추했다고 공식 성명을 냈다.  
 
 

 

 
 
 
라일의 독수리 막스 이멜만..이멜만 턴으로 더 유명한 그는 일차대전 뿐만 아니라 공중전 전술의 기초를 처음 다진 공중전의 아버지다
목에 걸고 있는 블루맥스가 또렷이 보인다.
 
이멜만의 포커 아인데커기의 일러스트... 포커의 징벌을 가능케했던 이 최신예기를 처음 이용한 몇 안되는 조종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