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뵐케의 금언 그리고 그의 죽음 (1)

대한인 2014. 2. 6. 04:48

" I will be like Boelcke! "  ( "나는 뵐케처럼 될 것이다! ")
- 독일 1, 2 차대전, 심지어 현대의 독일 전투조종사들의 모토(motto) -
 
 
1차대전 초반기, 조종사들과 비행대 지휘관들은, 공중전의 원칙과 전투기 기동술 중 어떤 것이 실질적이며, 중요한 것인지를 판별하기 위해, 아직은 시험단계에서 분석하는 실정이었다. 왜냐하면 그 이전엔 아무도 항공기를 이용해 전투를 벌인 적이 없었고, 그 당시 전투조종사들은 모두, 영공의 개척자들이었으니 말이다. 짤막한 어떤 전술도 없었다.
 
또 이 젊은 조종사들에게는, 전해 내려오는 어떠한 기동술이라든지, 조언을 해줄 선배도 없었다. 그래서 초기 파일롯들은 이 모든 것을 많은 시험비행과 착오를 거치면서 스스로 터득해 나가야 했다. 그들중 일부는 실패와 착오에서도 살아남아, 그뒤를 잇는 심참들을 직접 가르칠 시간이 주어지기도 했다. 그들이 실전에서 깨달은 비행에 대한 모든 뜨끈뜨끈한 신지식을 후배 조종사들에게 전하려고 애쓴 것이다.    
 



 


오스발드 뵐케의 포커 아인데커기... 싱크로나이즈 기관총을 장착한 그의 전투기는 전선 상공의 불멸의 전투기였다.
 

1916년, 이미 전선에선 오스발드 뵐케의 명성은 아군, 적군을 가리지 않고 그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그해 6월말, 독일의 황제 빌헬름의 명령으로, 뵐케는 더 이상 전투비행에 나서지 못하게 되었다. 그것은 독일 공군의 정신적 지주이며, 탑에이스인 그가 더이상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염려한 결정이었다. 뵐케는 국민적인 영웅이었고, 그의 아래 신참들 뿐만 아니라, 모든 독일 조종사들의 추앙을 한몸에 받고 있는 창공의 선봉장이었다



뵐케가 자신의 포커기 앞에서 대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그의 표정에서 어떤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다.
 

 
사실, 이런 명령을 받았을 때, 뵐케는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가 진정 바라는 것은 동료 파일롯들과 창공에서 적을 격추시키는 것이었으니... 그래서, 독일공군은 그를 위로하기 위해 터키로 여행을 보내주기도 했다. 여행을 떠나기 며칠전, 뵐케는 독일군 최고 사령부에서 헤르만 톰센(Hermann Thomsen) 소령과 만나, 공중전에서의 경험과 그에 수반된 여러 이야기들을 들려줄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더욱 진보된 공군의 발전에 대해 이야기했고, 야스타의 구성에대해서도, 또 비행대 대형등, 아주 실질적인 논의를 했다고 한다.
 
이 회동에서, 헤르만 소령은, 뵐케에게 모든 비행대에 하달할 공중전 원칙을 정리해 볼 것을 권유했다. 1916년 9월, 뵐케는 드디어 그 유명한 뵐케의 금언('Dicta Boelcke')을 정리해 낸다.
 
 
뵐케의 금언
 
1. 공격하기 전에 먼저 유리한 지점을 선점하라.
    가능하면, 태양을 등지고 공격하라.
 
2. 일단 공격을 시작하면, 항상 적을 완전히 제압할 때까지,
    끝까지 계속하라
 
3. 가까운 거리에서, 적이 시야에 완전히 들어왔을 때만 사격하라.
 
4. 적에게서 눈을 떼지 마라. 적의 속임수에 속지마라.
 
5. 모든 공격에 있어서, 적기의 후방에서 공격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다
 
6. 적이 고공에서 급하강 공격을 해오더라도,
    적기에게서 달아나려하지 마라. 대신 그와 정면으로 맞대응하라.   
 
7. 만약 적진영 상공으로 들어 갔다면, 항상 돌아올 것을 염두해 두어라
 
8. 야스타를 위한 전법 : 공격할 때는 4 - 6대가 하나의 편대를 이루어
    공격하라.  편대가 공중전 도중 흩어져 혼전 양상을 이루게 되면,
    여러 대가 한대의 적기를 추격하지 마라.
 
 
뵐케는 오스트리아를 경유해, 터기로 여행을 떠났고, 돌아오는 길엔 불가리아를 방문했고, 러시아 전선도 시찰했다. 거기서 그는 새로운 야스타에 대한 구상을 마쳤고, 서부전선에서 다시 한번 그의 실력을 발휘해 보리라 마음 먹었다. 그리고 러시아전선에서 활동하는 조종사들 중 쓸만한 인재를 찾아 나섰다. 그중 가장 맘에 들었던 두명의 젊은 파일롯이 있었는데, 한명은 만프레드 폰 리흐토펜 (Manfred von Richthofen)이었고, 다른 한명은 에르윈 보메(Erwin Bohme)였다.  
 
뵐케가 서부전선을 비운 6주동안, 영국공군이 솜므(somme)지역에서 제공권에서 우위를 보이기 시작했다. 뵐케는 다시 전선으로 보내졌고, 신생 비행대를 이끌게 되었다. 그것이 1916년 8월 27일의 일로, 그 비행대는 전설적인 비행대가 되어버린 야스타 2 (jasta 2) 비행대였다.

 ▶  뵐케의 금언과 최후 (2) 계속 보기

 
 
 

 

 

 
 
 
오그발드 뵐케의 모습, 목에 장식된 블루맥스가 돋보인다. 그는 이멜만이 전사한 후 독일 공군의 정신적 지주이며, 독보적인 탑에이스가 되어 일차대전 독일 공군을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