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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에서 상황인식

대한인 2014. 2. 6. 04:57

벨케는 남이 볼 수 없는 무엇인가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항상 적기를 먼저 발견하였다.

만프레드 폰 리흐토펜 (Manfred von Richthofen)

 

  제 1차 세계대전에서 공중전의 진수를 배울 수 있는 곳은 버든(Verdun)이나, 이프로스(Ypres), 솜므강(The Somme)같은 곳이었다. 교관은 바로 적기의 조종사였고, 진급과 강등이 엄격했다. 75년 정도가 지난 오늘날, 조종사들은 공군 산하에 있는 조종사 실습 학교(Flighter Pilot School) 같은 곳에서 공중전 비행술(ACM)들을 배운다. 교수들은 베테랑 조종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특정한 상황에 따른 "상황인식"을 중심적으로 가르친다.

"상황인식"이라는 것은 공중전에서의 승자와 패자의 차이점을 뜻하는 말로써, 최초로 공중전이 벌어진 이래 70여년 동안 그 개념조차 없었던 용어다. 기본적으로 "상황인식"은 공중전에서의 신속한 자세변화나, 적기 발견등의 능력을 뜻한다. 심지어는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혼란시키는 모든 의혹과 해답들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근처에 적기가 있는가? 얼마나 멀리 있는가? 몇 대나 있는가? 무슨 기종인가? 고도는 어느 쪽이 높은가? 속도는 얼마인가? 무장은 어떤 것을 했는가? 비행기의 성능은? 어느 쪽이 연료가 더 많은가? 남아있는 탄환 수는? 적기가 '붉은 남작'인가, 아니면 미치광이 알버트 볼(Albert Ball)인가, 아니면 조종석 깊숙히 숨어있는 초보 조종사인가? 공격해야 하나? 방어해야 하나? 도망가야 하나?

제 1차 세계대전에서는 조종사에게 경보를 알려줄 레이다나 무전기가 없었으므로, 제일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적기가 시야에 나타났는가? 히는 문제였다. 초기의 전투기는 매우 소형이었다.

심지어는 아주 맑은 날에, 눈이 좋은 사람도 운이 좋아야 2-3마일 떨어진 거리에서도 관측이 가능했다. 곧 바로 날아오거나, 뒷모습만 보인 채 날아가는 경우는 1마일 이상만 떨어져도 불가능했고, 공중전을 하는 모습이라면 6마일 정도가 최대거리였다. 그리고 이러한 거리는 모두 관측만을 하는 경우고, 그것이 적기인지 아군기인지를 구별할 수는 없었다. 전투에 참가했을 때, 또 다른 한 가지의 "상항인식"은 수 십 년 동안 알려지지 않았었는데, 그것은 바로 에너지 상태이다.

근본적으로, 고도와 속도(에너지 상태)가 한정된 시간안에 구사할 수 있는 비행기술의 종류를 결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실속 속도에 이른 비행기의 에너지 상태는 형편없다고 할 수 있다. 조종사가 기수를 낮추는 것 이외의 다른 시도를 할 경우, 이 비행기는 돌맹이처럼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조종사는 얌전히 조종석에 앉아있는 수 밖에 별다른 선택을 할 수 없다. 반대로, 고도와 속도면에서 잇점을 갖고 있는 비행기는 큰 에너지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고, 다양한 비행기술을 구사할 수 있다. 자신의 에너지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적의 에너지 상태는 "상황인식"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어지게 될 것이다. 만약 조종사가 도저히 그의 상태를 유지할 수 없게 되면, 그는 "상황인식"을 잃는 것이다.

많은 제1차 세계대전의 공중전에 관한 서적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모습의 사진이 실려있지만, 실제로는 전투다운 전투는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공중전은 그리 주목할 만한 가치가 없다. "상황인식"의 요소에서 유리한 조종사는 상대편이 먼저 알기도 전에 가까이 접근하여 위협적인 사격을 가할 수 있다. '붉은 남작' 리흐토펜은 항상 "상황인식"에서 월등히 유리할 때만 공중전을 전개한다. 그는 주로 자기편 편대 상공에서 비행하다가 적 비행대가 접근하면, 공중전을 전개한다. 적기가 흩어지기 시작하면, 그는 잇점을 이용해서 적기를 덮친다.

제 1차 세계대전중의 조종사들은 운명에 도전하는 사람들로 평이 나 있었고, 많은 성공적인 조종사들은 조심스럽게 전투에 임했다.

대개 공중전은 고도 2500피트 지점에서 일어나며, 비행기들은 90도의 방향 전환을 300피트 이내에 해 낼 수 있다. 그러한 좁은 구역에서 10대, 20대, 아니 50대 정도의 비행기가 공중전을 벌이는 광경을 상상해 보면, 왜 리흐토펜이 이러한 공중전에 참가하기 싫어했던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공중전에 참가하게 되면, 적기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보다 서로 부딪치지 않게 신경쓰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들은 "상황인식" 감각을 잃어버리게 되고, 이 점 때문에 오랫동안 전투에 참가할 수 없게 된다. 1917년 4월 어느날, 영국군 히거티(Heagerty) 중위와 그의 사격수 켄틀(Cantle)은 갑자기 붉은 남작이 나타나자,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섯 대인가 일곱 대 정도의 비행기가 서로 섞여서 공중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나는 충돌하지 않기 위해 모든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나중에 돌아와서 히거티가 보고한 내용이다. "전방에서 쏘아대는 빅커(Vicker)기의 사격을 간신히 피해서 비행하고 있었다. " 사격수 켄틀은 사방으로 사격을 했고, 그러다가 그는 적기의 총알을 맞았다. 순간 조종간의 압력이 사라져 버렸다. 조종 불능상태에 빠진것이다. 아마도 켄틀이 죽는 순간 날아온 총알이 조종장치를 망가뜨린 듯 했다. 히거티는 턱에 부상을 입은 채로 운좋게도 귀환할 수 있었다. 낙하산이 없는 공중전에서는. 이러한 경우처럼 "상황인식"에 실패하면, 치명적인 위험에 빠지게 된다.

 

  

 

 

 
 알바트로스기의 최후.... 1차대전 당시에는 전투기 조종사들에게는 낙하산이 지급되지 않았다. (정찰 기구병에게만 낙하산이 지급되었었음) 추락은 곧 죽음인 경우가 많았다. 위 사진에선 밑에 낙하산도 없이 떨어져 나가는 파일롯의 모습이 같이 찍혔다.
 
 
독일기와 연합군 전투기가 근접 공중전에서 충돌하는 장면... 윽.... 정말 공중전 중에도 이런일이 일어나는구나... 이젠 collision on으로 하고 해야지... 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