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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사장 성공스토리

대한인 2014. 2. 8. 16:40

김종훈 사장 성공스토리

 

 

'루슨트 테크놀로지, 현찰 10억 달러에 유리시스템즈 인수 합병' '한국계 정 김(Jeong Kim) 아메리칸 드림 성취'. 합병발표가 나자마자 워싱턴포스트, USA투데이, 뉴욕타임스 등 미국 주요 신문들은 인터넷 전자신문을 통해 일제히 긴급 뉴스를 타전했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 경제전문 주간지 포브스지가 선정한 '미국 최고 갑부 4백명'에 선정된 재미교포 벤처사업가 김종훈(42)씨. 그의 성공여정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그의 석세스 스토리는 지난 75년 미국 앤 어룬델(Anne Arundel) 카운티에서 시작된다.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중학교 2학년 때 지독한 가난을 떨쳐버리기 위해 엔지니어인 아버지와 함께 14살의 나이로 도미해 이민 1.5세대의 생활을 시작했다. 이민 초창기에는 단돈 50센트가 없어서 점심을 굶어야만 했고, 발음이 이상한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반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차도 없어서 먼길을 걸어서 다녀야만 했고, 고등학교 때는 대학자금을 벌기 위해 2시간밖에 잠을 못 자며 밤새 편의점인 '세븐 일레븐' 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잔디도 깎고 신문을 돌리면서도 2등으로 졸업했다. 


주머니 속의 송곳은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삐져 나오는 법. 그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로 결심했다. 인종 차별을 딛고 대학에 진학한 그는 84년 미국 존스홉킨스대 전자 엔지니어링 학부 과정을 단 3년만에 졸업했다. 또 7년간의 군복무를 마친 후 지난 89년에는 메릴랜드대학에서 2년만에 엔지니어 박사학위를 받는 집념을 보였다. 박사학위기간이 통상 5년이었지만 2년만에 마치고 해군에서 핵잠수함 장교로 복무하면서 최첨단 통신장비를 다룬 경험으로, 92년 장녀의 이름을 따 음성영상 데이터전송장비 전문 '유리 시스템즈'를 설립했다.


창업 초기 월 350달러 짜리 사무실을 하나 얻어 시작하였지만, 1년 3개월 동안 매출액이 하나도 없었다. 미 국방부의 연구개발사업을 용역 받아 근근히 생활해오다가, 그가 선택한 아이템은 당시로선 생소한 ATM(비동기식 전송) 교환기술이었다. 이는 음성․동영상․문자 등 멀티미디어 데이터를 고속으로 전송하는 차세대 기술로 지금은 세계 표준으로 자리잡았지만, 당시에는 사업성이 불투명했다.


하지만 그의 ATM은 미 정부에 제품을 납품하기 시작하면서 매출액과 순이익은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하였고, 하이티 총선과 보스니아 내전에서 성능을 인정받으며, 세계시장을 석권했다. 97년 비즈니스위크는 유리 시스템즈를 초고속성장 1백대 벤처기업 중 1위로 선정하기도 했다. 바로 그 다음해 루슨트와 함께 세계 통신혁명을 일으키겠다는 결심으로 그는 유리시스템즈를 루슨트에 10억달러에 팔았다. '루슨트 테크놀로지'의 매입결정으로, 유리 시스템즈 주식 56%를 보유한 김회장은 7천2백80여억원을 받게 되었고, 나머지 이익은 김회장에게서 아메리칸 드림 가능성을 발견했던 주주들에게 돌아갔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24시간 편의점에서 일하던 한국 이민자가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 며 한국 이민자의 성공사례를 1면에 크게 싣기도 하였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던 해, 개인재산 100만 달러를 출연해 서울에 대학생들의 벤처기업 창업을 지원하기 위한 재단을 설립했고, 미국 현지에서도 국내 유학생을 돕기 위해 25만 달러를 쾌척하기도 했다.


그는 말한다. "제가 느끼기에 저는 머리가 썩 좋은(smart) 사람은 아닙니다. 단지 성공 목표를 높게 정하고, 일주일에 1백20시간 동안 밤낮없이 일한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든 힘이겠죠." 일주일에 1백20시간이면 식사시간 과 2~3시간 눈을 붙이는 시간외에는 항상 일을 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