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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으로 목동됐다 혁명처럼 회장으로

대한인 2014. 2. 14. 19:50

혁명으로 목동됐다 혁명처럼 회장으로

이지훈 Weekly BIZ 에디터 jhl@chosun.com
 
궈슈칭 중국건설은행 회장. / 리우핑 포토저널리스트

세계 2위 중국건설은행 궈슈칭 회장이 사는 법
"내몽골 고비사막에서 유머와 리더십 배웠다"

중국의 순위가 세계의 순위가 되는 시대다. 적어도 은행에 관한 한 말이다. 그래서 중국 2위 은행인 중국건설은행은 세계 2위이다. 시가총액이 1855억달러(약 216조원)에 달해 중국공상은행 바로 아래다. 그 아래로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HSBC, JP모간 이 줄지어 있다. 한때 1위이던 씨티그룹은 8위로 내려앉았다.

5년 전을 돌이켜 보면 상전벽해란 말이 딱 들어맞는다. 2005년 중국건설은행은 중국 은행 중 최초로 홍콩 증시 상장을 추진하면서 외국 투자자 자금을 모으러 다니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중국의 은행은 국제 자본시장에선 낯선 이름이었고, 외국 투자자들은 못 미더워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한 고참 펀드매니저는 자신을 찾아온 중국건설은행 직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보게 젊은이, 자네 가슴에 오른팔을 얹고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 이렇게 말해줄 수 있겠어?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은 모두 사실이다'라고."

중국건설은행 궈슈칭(郭樹淸·54) 회장의 인생 역시 역전의 드라마이다. 그는 중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인 내몽골 자치구의 농촌에서 태어났다. 한족이지만, 다른 지역에 살던 선조가 생활고를 못 이겨 그리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다른 시련을 맞는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면서 대학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고비 사막의 목장으로 내려가 4년간 하방(下放·문화대혁명 기간 중 시골로 내려가 노동에 종사하는 것) 생활을 한다. 그는 평생 목장 일을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서슬 퍼런 혁명이 끝나고, 그는 톈진의 난카이(南開)대 철학과에 입학한다. 중국의 최고 명문대 중 하나이다. 오랫동안 대학이 문을 닫았기에 많은 사람이 대학 시험을 치렀고 경쟁률은 20대 1에 달했다. 이어 중국사회과학원에서 법학박사를 딴 뒤 정부에 들어가 엘리트 경제 관료의 길을 걷는다. 특히 중국의 외환 규제 당국인 외환관리국(SAFE) 국장을 지내면서 국제금융가의 파워맨으로 부상한다. 그리고 2005년 4대 국유 은행 중 하나인 중국건설은행 회장에 부임했다.

그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일화가 하나 있다. 작년 가을 중국이 갑자기 미국 국채 매입을 줄인 탓에 달러 가치가 급락하고 있었다. 가이트너 미 재무부장관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미국이 재정적자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겠으니 미 국채를 계속 사달라"는 설명을 장황히 했다. 그러나 후진타오는 확답을 하지 않고 중국과 미국 간 동반자 관계에 대한 얘기만 잔뜩 했다. 가이트너가 섭섭한 마음으로 돌아서려는데, 중국건설은행의 궈슈칭 회장이 시장에 대고 한마디 했다. "달러 기축통화를 지지한다"고. 그리고 "가까운 장래에 다른 통화가 달러를 대체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이 말 한마디에 달러 급락이 멈추고 전 세계 증시가 반색하며 상승했다.

바로 그 사람, 궈슈칭 회장을 만나기 위해 기자는 1년 가까이 공을 들였다. 가능한 모든 중국인 '관시(關係)'를 총동원했다.

금융기관들이 밀집해 있는 베이징의 '금융가(Financial Street)'에 있는 중국건설은행 본점 22층. 회장 집무실 옆 접견실 앞엔 3명의 여비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방은 수십명이 들어가도 될 만큼 넓었고, 12개의 의자가 원형으로 배치돼 있었다. 잠시 기다리고 있었더니 그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가와 기자의 손을 잡았다.

첫 질문을 그의 평범하지 않은 이력으로 시작했다.

―내몽골 농촌에서 태어나 4년간 초원의 목장에서 생활한 독특한 경험이 오늘의 성공에 어떤 도움이 됐나요?

"괴로운 생활은 사람을 단련시키고 성장시킵니다. 물론 가축을 기르는 것과 은행을 경영하는 것 사이엔 큰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광대한 고비사막에서 외로움에 익숙해지는 법, 일하고 수확하는 법, 그리고 혼자서 공부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목장에서 일하며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한때 목장의 생산팀장이 된 적이 있는데, 그때 리더십에 대해서도 배웠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이해하고, 경제의 가장 기본적 단위를 관찰하고 경험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한때의 목동이 이제 세계적 은행의 회장이 됐습니다. 회장님의 성공과 중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 사이엔 어떤 관련이 있나요?

"우리 세대는 이전 세대에 비해 정말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수백년간 중국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우리는 중국의 가장 전성기에 살고 있는 셈이니까요. 물론 상황이 늘 순조롭게 돌아갔던 것은 아닙니다. 문화대혁명을 비롯한 정치적 격변은 우리에게 많은 고통을 가져다주기도 했지요. 그러나 제가 이룬 모든 것은 제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회로 가득 찬 이 시대 말입니다."

그는 은행 총수로보다 거시경제 전문가로 더 유명하다. 그는 우리나라의 옛 경제기획원 비슷한 기관에서 장기간 근무하며 여러 요직을 맡았으며, 귀주성 부성장을 거쳐 인민은행 부총재와 외환관리국(SAFE) 국장을 역임했다. 옥스퍼드대에서 1년간 공부하기도 했다.

그는 외국인들을 소탈한 웃음과 조크로 무장해제시키곤 한다. 작년 6월 런던 현지법인 설립 기념 만찬 연설에서였다. 그는 25년 전 중국건설은행이 중국 정부에서 독립해 나왔을 때 사옥을 못 구해 교외의 양계장 터에 자리 잡았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 이후로 중국건설은행은 늘 환경 친화적이고 동물 친화적이었습니다." 만찬장에선 폭소가 터졌다.

그는 "농촌 생활에서 유머 감각을 익혔다"고 말했다. "내몽골 농촌 사람들은 문화 수준은 낮지만, 한족이든 몽골족이든 모두 성격이 활달하고 유머 감각이 좋았습니다. TV도 없고, 책도 별로 없고, 특별한 오락거리가 없었기 때문에 서로 이야기를 많이 했고, 자연스럽게 유머 감각도 익혔죠."

최근 나온 경영 수치들은 그를 더 자주 웃음 짓게 할지도 모른다. 지난해 중국건설은행의 이익은 전년 대비 15% 증가했으며, 올 1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34% 급증했다. 중국 정부의 경기 부양책에 호응해 중국 은행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은행 대출을 크게 늘렸고, 정부가 보장한 금리 차가 크다 보니 앉아서 돈을 벌었다. 하지만 궈 회장은 그런 급성장이 지속될 수 없다는 점도, 뒤에 후유증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얼마 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올해 중국 GDP가 9.5% 이상 성장한다면 문제가 될 것이다. 그것은 더 많은 중복 투자, 더 많은 과잉 생산능력, 그리고 더 많은 자본의 낭비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베이징에 있는 중국건설은행 본점 사옥. 중국에서는 드 물게 외벽이 검은색으로 되어 있다. 은행 측은 검은색이 안정과 정중함을 상징한다고 밝혔다. / 리우핑 포토저널리스트
■1분기 순이익 34% 급증, 그러나…

은행 입장에서 가장 큰 부담은 갑자기 늘어난 대출이 장차 부실화해서 큰 짐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중국건설은행을 포함한 여러 대형 은행들이 증자를 통한 대규모 자본 확충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궈슈칭 회장에게 올해는 중국건설은행을 상장한 2005년 만큼이나 중요한 한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질문을 경영 현안으로 돌렸다.

―"은행 대출은 논에 물을 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 적이 있는데, 지금 논에 물은 적당하다고 보시는지요?

"논에 물이 좀 많다고는 생각되지만, 중국이란 경제의 발전 속도로 보나, 실업률을 줄여야 한다는 당위에서 보나 당분간 이러한(느슨한) 통화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버블은 꼭 없애야 하지만, 갑자기 없애기보다는 일정한 기간을 두고 천천히 없애야 합니다."

―헤지펀드 매니저 짐 채노스(Chanos)는 "중국이 지옥으로 가는 쳇바퀴를 돌고 있다"고 했습니다. 중국 경제가 심한 버블에 휩싸여 있으며 공매도할 시기라는 것입니다.

"부동산 버블은 확실히 존재합니다. 최근 몇 년간 중국의 물가가 상승했고, 부동산 가격 상승도 비교적 빠른데, 과거엔 보기 드문 현상입니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버블인지는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합니다. 중국 정부도 이를 크게 중요시하고 있고, 얼마 전 부동산 가격 급등을 억제하는 일련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예를 들어 두 번째 집을 산다면 일시불로 50%(1가구 1주택은 30%)를 지급해야만 대출을 신청할 수 있고, 세 번째 집에 대해서는 대출을 못 받을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중국이 지금 공업화와 도시화로 고속 발전하는 시기라는 것입니다. 최근 통계국에서 발표한 수치에 따르면 중국 도시 인구가 전체 인구의 46.6%에 불과합니다. 결국 시골에서 도시로, 그리고 작은 도시에서 큰 도시로의 인구 이동은 앞으로도 20년간 지속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중국 도시의 부동산 가격은 현실적인 수요를 기초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짐 채노스의 발언이 나온 뒤 월스트리트저널은 짐 채노스가 공매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 기업 3개를 꼽았는데, 그 중 하나가 중국건설은행이었습니다.

"건설은행이란 이름 때문에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나 우리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사람들이 집 짓는 것만 도와줄 뿐 아니라, 사람들이 현대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것을 도와주는 은행입니다. 그리고 부동산 관련 대출 규모는 중국건설은행이 1위가 아니라 2위입니다(공상은행이 1위이다). 지난해 신규 부동산 대출도 4대 은행 중 제일 적었고, 대손충당금 적립비율(NPL coverage)은 175.7%에 달합니다. 특히 개인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담보 인정 비율이 부동산 가격의 50% 정도밖에 안 됩니다. 부동산 가격이 50% 이상 내려야만 부실이 발생한다는 의미지요. 그러나 중국과 같이 공업화와 도시화가 급진전되는 국가에서 50% 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작년 1월에 2대 주주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중국건설은행 주식을 일부 팔았는데 앞으로도 팔 가능성이 있을까요?

"글쎄, 그건 BOA에게 물어봐야겠지요.(웃음) 그러나 BOA가 10.9%의 주식을 갖고 있는데, 계약에 의해 2012년까지는 팔 수 없습니다. 최근 새로 부임한 CEO가 베이징을 방문해 앞으로 장기적으로 투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어요. 중국건설은행의 ROE(자기자본수익률)는 20%를 넘습니다. 작년에 BOA는 배당 등을 통해 우리로부터 17억달러를 벌었습니다(중국은행들은 배당을 많이 하는 편이다. 중국건설은행은 지난해 이익의 44%를 배당에 썼다·편집자 주). 물론 BOA와 협력해 우리도 많이 덕을 봤어요. 4년 동안 BOA와 200여 개의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기술·경영·상품개발· 영업 등 여러 면에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2000여명의 직원이 연수를 받기도 했고요."

■"음악이 흘러도 춤을 추지 않을 것"

도광양회(韜光養晦)란 말이 있다.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는 의미로 중국의 외교노선을 빗대는 표현이다. 두 시간 동안의 인터뷰를 통해 느낀 궈슈칭 회장의 성격이 바로 그랬다. 밑바닥 출신인 그는 늘 자신을 낮추었지만, 가슴속엔 뜨거운 그 무엇을 감추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중국이 '벼락부자'가 됐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고,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중국은행들의 시가총액이 세계 1·2위가 된 일을 두고 "호랑이가 없을 때 원숭이가 왕이 된다"고 표현했다. 금융위기로 선진국 은행들이 추락한 틈에 갑자기 올라갔다는 것이다. 금융위기가 한창일 때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척 프린스 전 씨티그룹 회장이 '음악이 계속 흐르는 한 춤을 출 수밖에 없다'고 했지만, 우리는 음악이 흘러도 춤을 추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 어떻게 춤을 추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위가 가까운 장래에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셨는데.

"물론 달러의 취약점은 걱정됩니다. 하지만 지난 60년의 시간을 놓고 보면 달러화의 실질 실효 환율은 큰 변화가 없었어요. 또 GDP 대비 국채 발행액이 일본은 150%인 반면, 미국은 100%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 경제의 창조력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미국이 경제와 과학기술에서 주도적 지위를 유지하는 한, 달러는 여전히 강한 지지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 기업이 급성장하고 있고,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될 것이란 이야기도 있습니다.

"위안화가 언젠가 달러나 유로처럼 기축 통화도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현재 세계 500대 기업 중에 중국 기업이 7%를 차지하고, 홍콩 기업을 포함하면 9% 정도 됩니다. 중국 기업의 비중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로 양적 성장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중국이란 거대 시장과 넓은 소비자층 때문이었죠. 중국건설은행이나 공상은행도 고객이 수억명에 이르지만, 그런 성장이 모두 제품이나 서비스가 좋았기 때문에 이뤄진 것은 아닙니다."

―미국 은행들이 다시 글로벌 은행 순위 1,2위를 회복할 가능성이 있나요?

"물론입니다. 현재 중국건설은행의 주가순자산배율(PBR)이 약 2배인 반면, 미국 은행들은 1배 안팎입니다(자산 가치 대비 주가가 중국건설은행이 미국 은행들의 2배라는 의미·편집자주). 장차 미국 은행들도 2배가 된다면 시가총액이 우리를 초과하게 됩니다. 그러나 중국 경제가 계속 발전 중이고 중국 은행들도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미국 은행과 중국 은행들이 선의의 경쟁을 벌일 것으로 봅니다. 건전성이나 성장 잠재력 면에서는 중국 은행들이 더 우세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경영의 전문성과 관리의 정밀성 면에서는 유럽이나 미국 은행들이 훨씬 앞서 있습니다. 최근 5년간 미국 은행들과의 협력을 통해 격차를 줄이긴 했지만, 아직도 거리가 있다는 점은 명확히 알고 있습니다."

―목장 경영과 기업 경영의 비슷한 점은?

"초원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상황에 늘 유연하게 대응합니다. 날씨는 언제든 급변할 수 있고, 가축의 상태도 마찬가지죠. 말 사육사는 많은 말을 키웁니다. 같은 말이기에 공통점도 많지만, 말 한 마리, 한 마리가 다르고 개성이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편성이 없으면 안 되겠지만, 특수성이 없어서도 안 되죠. 초원이 제게 가르쳐 준 교훈입니다."

―꿈이 무엇인지?

"스키를 좋아하는데, 한국에 좋은 스키장이 많다니 가보고 싶습니다."

―그런 것 말고…. 예를 들어 인민은행 총재가 되고 싶다든지 하는 꿈은?

"(웃음) 인생이란 자기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젊어선 목장에서 평생 일할 줄로만 알았었죠. 은행에서 일할지도, 은행 회장이 될지도 전혀 몰랐습니다.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제가 이상주의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와 같은 세대 중국인들의 공통점이기도 한데요, 우리는 지금 이상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고 느끼고 있고, 늘 꿈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