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분 언덕을 오르자 3000여개의 장독이 모여 있는 살뜰한 마당이 나타난다. 장독에는 매실된장, 매실 고추장 등이 이른 봄볕의 사랑 아래 익어가고 있다.
장독대 마당에서 향긋한 매실차로 입을 축이고 숲길 오솔길을 걸어 전망대에 오른다. 매화나무 사이로 거대한 자연석에 매화를 주제로 한 시를 새긴 문학동산이 드넓게 펼쳐진다. 문학동산엔 벌써 청보리가 발목 높이로 자라 푸른 융단을 깔아놓은 듯하다.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을 촬영한 초가집 세트장이 매화밭에 운치있게 자리하고 있다.
올해 새롭게 선보인 전망대는 청매실농원은 물론 매화마을과 섬진강, 그리고 하동 땅이 한눈에 들어온다. 강 건너 북쪽이 화개장터고, 멀리 소설 '토지'의 고향인 평사리도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린다.
청매실농원 뒤편의 대숲길은 영화 '취화선'을 촬영했던 곳이다. 섬진강 봄바람에 사각거리는 댓잎 소리가 심신을 청량하게 씻어준다.
퇴계 이황이 시로 노래했 듯 밤에 보는 매화꽃도 가히 일품이다. 해가 지고 청매실 농원의 하늘이 어둠에 물들면 백매화가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난다. 이어 섬진강 물줄기도 하얀 매화빛으로 젖어가는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황홀함이다.
섬진강변의 매화는 20일경부터 본격적인 꽃을 피우기 시작해 이달 말까지 온 마을이 함박눈이 내린 겨울날처럼 새하얀 별천지가 된다.
13일부터 21일까지 다압면 매화마을에서 매화문화 축제가 열린다. 축제는 경연과 공연, 전시, 체험행사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준비됐다. 올해는 꽃 소식이 늦을 것으로 보여 이달 말까지도 만개한 매화를 즐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061-797-2721)
◆구례 산수유마을 노란꽃천지 '畵∼' 그림같네 청매실농원을 나와 섬진강변을 따라 상류쪽으로 올라가면 전남 구례 산동면 상위마을이다. 국내에서 가장 화려한 산수유 꽃밭이 있는 곳이다.
지리산 만복대의 잔설이 채 녹기도 전에 콩알만큼 작고 샛노란 봉오리들이 꽃잎을 터뜨리기 시작해 3월 중순 무렵엔 산동면 일대 30여개의 마을이 온통 붓으로 노란 물감을 칠해 놓은 듯 산수유 꽃이 만개한다.
해발 고도가 높은 지리산 자락 상위마을의 산수유는 꽃망울만 맺었지만 섬진강 주변의 산수유는 벌써 왕관 모양의 꽃을 활짝 피운 채 따사로운 봄볕을 즐기고 있다.
상위마을의 정자인 산유정에 오르면 노랗게 물든 마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만복대 자락에서 흘러내린 부드러운 곡선의 다랑논과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개울, 그리고 대숲과 산수유 군락이 영락없는 한 폭의 풍경화다.
'산동'이란 지명은 1000년 전 중국 산동성의 처녀가 지리산 산골로 시집오면서 가져온 산수유 묘목을 심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흥미로운 것은 19번 국도변에 있는 계척마을의 아름드리 산수유 시목(始木)의 수령이 1000년 쯤 됐다는 것.
할머니나무로 불리는 이 시목은 가지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지지대에 의지하고 있지만 수령 수십 년의 젊은 나무와 마찬가지로 해마다 꽃을 활짝 피운다.
상위마을의 산수유가 꽃을 활짝 피우는 봄이면 묘봉골을 흐르는 개울가의 반석은 관광객과 사진작가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노란 산수유 꽃과 눈 덮인 지리산의 풍경을 화폭에 담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인다.
산수유는 신기하게도 세 번이나 꽃이 핀다. 먼저 꽃망울이 벌어지면 20여 개의 샛노란 꽃잎이 돋아난다. 이후 수줍은 듯 미소 짓는 4∼5㎜ 크기의 꽃잎이 다시 터지면서 하얀 꽃술이 드러나 왕관 모양을 만든다. 산수유를 모든 꽃이 닮고 싶어 하는 꽃 중의 꽃이라고 칭송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8일부터 21일까지 산동면 지리산 온천지구 일원에서 산수유축제가 열린다. 산수유 꽃길을 따라 소달구지와 마차를 타는 체험을 비롯해 염색 체험, 산수유 족욕, 산수유 꽃길 트래킹 등의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061-780-2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