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동국사
잃어버린 시간이 말을 걸다
군산에는 우리의 구부러진 어제가 있다. 호남에서 생산된 물자를 일본으로 실어 나르고, 조선인과 일본인의 비율이 반반을 이루던 가슴 메는 시간이 있다.
겨울의 끝자락 군산으로 향했다. 골목골목 상처가 패인 그곳에서 잃어버린 시간의 흔적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역사의 숨소리를 따라 들어간 그 지붕 아래 조심스레 발길을 멈췄다.
글∙사진 박은경
화려한 슬픔 신흥동 일본식 가옥
오래된 일본식 건물이 작은 동네를 이루는 군산 신흥동은 일제강점기 시내 유지들이 거주하던 지역이다. 순수 일본식부터 상가와 가정집이 합쳐진 형태의 절충식까지 다양한 일본식 가옥이 골목마다 숨어 있어 마치 오래된 일본 거리에 와있는 듯 생경하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곳은 ‘신흥동 일본식 가옥(구 히로쓰 가옥)’. 군산에서 큰 포목점을 하며 돈을 벌었던 히로쓰가 지은 대형 목조주택으로 지금은 한국제분 일가의 소유다.
신흥동 일본식 가옥은 일본 무사들의 고급주택인 야시키 형식으로 지어졌다. 일식 주택의 특성이 예전 그대로 잘 보존돼 있어 여러 매체의 단골 촬영지로도 사용됐다.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야쿠자 두목 하야시(신현준 분)의 집으로, 또 <타짜>에서는 평경장(백윤식 분)이 사는 집으로 등장했으며, 최근 개봉한 영화 <범죄와의 전쟁>과 곧 개봉을 앞둔 영화 <가비>도 이곳에서 촬영을 마쳤다.
주황빛 담을 따라 정문에 이르면 빛바랜 푸른색 나무 현관이 보인다. 그 옆에는 히로쓰 부인의 인력거가 드나들던 자그마한 문이 달렸다.
현관을 지나자 차분한 느낌의 목조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면으로부터 일정 간격 이상 띄워 집을 앉히는 한옥과 달리 지면에 바로 올린 것이 눈에 띈다.
2층 규모의 본채 옆으로는 금고 건물과 단층의 객실이 비스듬하게 붙어 있고 그 사이로 일본식 정원이 꾸며져 있다.
가만히 보니 거대한 지붕의 경사가 꽤 가파르다. 이는 비나 눈이 많이 오는 일본에서 이를 빨리 흘려보내기 위해 도입한 방책이라고 한다. 오죽하면 ‘도시락은 잊어도 우산은 잊지 말라’는 말이 있으랴.
건물 내부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듯 낡은 모습이다. 갑자기 온몸을 감싸는 한기에 옷을 여미고 안쪽 복도로 들어섰다. 좁고 기다란 복도를 따라 온돌방, 부엌, 식당, 화장실 등이 줄줄이 이어지고, 이는 또 다른 복도와 만나며 미로처럼 엉킨다.
두서없이 집 구석구석을 살펴보는데 삐걱거리는 소리가 자꾸만 귀에 거슬린다. 이는 자객 등 외부인이 침입하면 그 소리로 바로 알아내고자 고안된 방법이라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창에는 접었다 펼 수 있는 철창살을 달아 낮에는 접어두고 밤에는 다시 펼쳐 방범용으로 사용했다고 하니 히로쓰가 느꼈을 심리적 불안감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간다.
온돌방 옆에는 외부에 면한 편복도가 있고 그 중간 즈음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2층에는 히로쓰의 딸이 기거했던 방과 손님방이 마련돼 있다. 바닥에는 온돌 대신 다다미가 깔려 있고 벽에는 일본식 붙박이장과 서화 등을 걸었던 공간이 보인다.
전면에는 1층과 같은 편복도가 있다. 창밖으로 정원이 한눈에 들어오고 담 너머 멀리로는 납작 엎드린 판잣집도 보인다.
계단을 내려와 정원으로 눈을 돌렸다. 석탑, 석등, 히로쓰 부부가 아침저녁으로 산책했다는 돌계단과 이제는 흔적만 남은 작은 연못이 나무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다. 매년 5~6월 사이 철쭉이 흐드러지게 핀다고 하니 그즈음 찾아봐도 좋겠다.
위치 전북 군산시 신흥동 58-2번지
문의 군산시청 문화체육과 063-450-4225, 고하영 문화관광해설사 010-3223-2016
관람 시간 10시~17시, 연중무휴(단 10분전 입장 마감, 12시30분~13시30분 점심시간)
관람료 무료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 동국사
금광동에 자리한 동국사 역시 잃어버린 시간의 흔적을 되짚어볼 수 있는 곳이다. 동국사는 우리나라 유일의 일본식 사찰로 시인 고은이 출가한 절로도 유명하다.
경술국치 1년 전인 1909년 창건됐으며 당시에는 금강사라 불렸다. 광복 후 남곡 스님이 인수, 동국사라 이름을 바꿨으며 현재는 조계종에서 관리한다. 가파른 단층식 팔작지붕을 이고 있는 절은 다다미로 만든 대웅전과 요사채(승려들이 식사를 마련하는 부엌과 식당, 잠자고 쉬는 공간)가 실내 복도로 연결된 특이한 구조를 지녔다.
또 처마 장식은 물론 단청도 하지 않아 얼핏 서원 같은 느낌도 든다. 대웅전과 요사채 중간 즈음에 보이는 문으로 들어가면 어두컴컴한 복도가 나오고, 그 왼쪽 끝에 대웅전 불당이 있다. 이곳에 모셔진 석가삼존불은 광복 후 일본 사람들이 모시던 부처를 모실 수 없다는 신도들을 위해 김제 금산사 대장전에 있던 불상을 옮겨 온 것이라 한다.
종루에 세워놓은 조각에서도 일본색이 물씬 풍긴다. 절 뒤편으로는 100년이 넘은 굵은 일본 대나무가 푸근하게 절을 감싸고 있다.
위치 전북 군산시 금광동 135-1 문의 군산시청 문화체육과 063-450-4225 관람료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