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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건망증

대한인 2014. 3. 23. 05:16

 

어머니의 건망증 

 

1. 전화받다 엄마가 태워먹은 수많은 냄비들..

또 전화가 온다. 엄마는 실컷 수다를 떤다. 그 순간 아차차..

"얘, 잠깐만 기다려, 가스불 끄고 올께."

엄마는 자신의 영민함에 뿌듯해하며 가스불을 끈다.

그리고, 나서 아까 하던 김장 30포기를 마저 한다. -_=;;

엄마는 그렇게 또 한 명의 친구를 간단히 잃어버렸다.

 

2. 선생님 면담 때문에 나선 엄마.

근데 왜 동생 학교는 찾아가고 난리람.

들고온 촌지 동생 선생님에게 뺏기고, 겨우 찾아온 우리 학교..

근데 왜 엄마는 2학년 3반을 찾고 난리람. 난 3학년 3반인데 말이다.

그날 결국 담임을 못 만난 엄마는... "너, 엄마 몰래 언제 전학 갔어?"

 

3. 은행에 간 엄마. 오늘은 거의 완벽하다.

통장과 도장도 가지고 왔고 공과금 고지서도 가지고 왔다.

이젠 누나에게 송금만 하면 오래간만에 정말 아무 일 없이(?) 은행에서

볼 일을 마치게 된다. 은행원 앞에서 자랑스러운 얼굴로 서 있는 엄마..

은행원도 놀라는 듯한 얼굴이었다.

"송금하시게요? 잘 쓰셨네요.. 아! 전화번호를 안 쓰셨네요.

집 전화번호를 써야죠.."

엄마는 그날 결국 송금을 못하고 말았다.

 

4. 아버지도 만만찮다. 출근하느라 정신 없는 아버지.

서류 가방 들랴, 차키 챙기랴, 머리 염색약 뿌리랴.

한바탕 전쟁을 치른 뒤 무사히 출근에 성공한다. 한참을 운전하던 아버지..

뭔가를 빠뜨린 것 같아 핸드폰을 꺼내 집으로 전화를 한다.

근데 이상하게 통화가 안 된다.

아버지는 욕을 해대며 다시 걸어 보지만 여전히 통화가 되질 않는다.

그날 엄마와 난 하루종일 없어진 TV 리모콘을 찾아 헤매야 했다. -_-;

 

5. 간만에 동창회에 나서는 엄마. 화려하게 차려입느라 난리다.

저번에 동창생들의 휘황찬란한 옷차림에 기가 죽은 기억 때문에 엄마는

반지 하나에도 신경을 쓴다. 반지 하나 고르는 데 2시간 걸렸다.

엄마 반지는 딱 2개 뿐인데..-_-;; 모든 걸 완벽하게 치장한 엄마.

이번엔 정말 엄마가 스폿라이트를 받는다.

모든 동창들의 시샘의 눈길에 뿌듯해하는 엄마..

엄마는 우아하게 인사를 한다.

"얘드아!(얘들아) 오데간마니다.(오래간만이다)"

다른 치장에 너무나 신경을 쓴 나머지.. 엄마는 틀니를 깜빡 잊었다.

그후로 엄마는 동창들과 연락을 끊고 산다.

 

6. 엄마가 오래간만에 미장원에 갔다. 주인이 반긴다.

"정말 오래간만이네.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네, 덕분에..오늘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머리손질 좀 빨리 해주시겠어요?

시간이 없으니까, 30분 안에는 완성해 주세요"

"30분 안에요? 네, 알겠어요"

한참 손질하던 주인,

"이왕 오신 거.. 머리를 마는 게 어때요? 훨씬 보기 좋을 텐데..."

훨씬 보기 좋다는 소리에 솔깃한 엄마.

"그럼 어디 간만에 파마나 해볼까."

그렇게 엄마는 머리를 말았다. 꼭 3시간 걸렸다. -_-;;

머리를 만 채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온 엄마..

집안의 공기가 썰렁했다.

그 후 엄마는 누나의 결혼식을 비디오로 봐야 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