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희망을 주는 동기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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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시절(4)

대한인 2014. 3. 26. 18:16

^^* 추억의 옛 사진들*^^


이 자료는 정확히 6,7십년의 생활상을 담은 사진들입니다.



두메산골 추운 겨울을 나기위해 월동 준비를 해놓은
장작더미 앞의 세모자입니다.
초라한 모습과 천진 난만한 표정이 가슴을 찡하게 만듭니다.




굴피 나무 겁질로 지붕을 덮어놓은 너와 라는 지붕이지요.




그나마 도심에서는 만화방이 있어서 산골보다는 좋았지요.
만화방에서 책보는데 1원주면 6권정도...




생활은 어려워도 꿈과 희망이 넘첬던 시절이었습니다.
텃밭의 짚더미는 추위도 녹여주고 놀이터로 활용되고...




암탉이 알을 놓기가 바쁘게 책보 허리에 메고 따듯한 계란을 들고 학교로 내달렸지요.
문방구에 가서 계란으로 공책이나 연필등 학용품으로 물물 교환했답니다.


 

뛰어가다 엎어져 계란은 깨지고 눈물 콧물 울기도 많이 울었지요. 근방 낳은 계란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




학교 다녀와선 어김없이 지게지고 밭으로,
산으로 땔감을 구하러 가곤 했지요.




가축들도 거두고, 한겨울에 고무신 신고 신발이 꽁꽁 얼어
 발에 붙어 떨어지지도 않았답니다.
그때는 동상 안 걸린 아이들이 이상했지요.




지게를 못지는 여자 아이들은 나무를 묶어서 머리에 이고
산에서 내려오다 많이 굴르고 다치고...




먹고 살기위해 학교 다녀오면 길거리로 구두딱이,껌팔이,신문팔이
무엇이든 했답니다.




구두를 닦는 아이의 표정이 무척이나 고달퍼 보입니다.




어머니의 바쁜 일손을 돕고 있습니다.
요즘 머리에 물건 이고 다닐 수 있는 어린이들은 아마 없겠지요.




부모님들은 공사장이나 들에 나가고 어린들은 학교 다와서
동네의 잔 일거리들은 다 하였지요.



당시 정부에서 덩그러니 학교 교실 하나 지어주면
나머지 모든 공사는 학생들 차지 였습니다.
돌을 이고 지고 학교 축대 쌓는 작업을 하고있네요.  
머리에 돌을이고 있는 어린이 모습과 돌을 어깨에 맨 아이...



초가집앞 텃밭에서 농사일을 돕고있네요.



엄마가 세수시켜 줄 때면 제인먼저 코풀어! 하시고...
따듯하게 물 데워서 어린 동생들을 돌아가며 세수를 시키셨지요.




아파도 병원이 없어서, 너무 멀어서,
늘 집에는 아까징끼(머큐롬)을 비취해두고 발라주시곤 했지요.
자식의 아픈 고통을 대신하듯 어머니의 표정이 너무도 안타깝게 보입니다.




간혹 사회 복지가들이 학교 찾아오시어 사탕이나 먹을것을 전해주시고...




수안보 어는 산골마을 학교입니다.




추억어린 풍금입니다. 음악 시간이지요.


 

선생님이면 누구나 풍금을 다룰 수 있어야 했지요.



비가 조금만 와도 중간에 수업포기 잽싸게 개울을 건너 집으로 내 달렸지요.
물이 불으면 건너지 못했고, 빨리 집에가서 집안 비 설겆이 해야지요.
모든게 공부보다 집안 일이 우선이었지요.




여자는 코 고무신 남자는 검정 고무신, 한겨울 양말이 없어
발이 시린 아이들은 신발에 짚을 넣고 신었답니다.



빗자루는 요즘 보기 힘든 싸리나무로 만든 빗자루입니다.



운동회가 열리는 날이면 온동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의 대 잔치였습니다.
부모님들과 함께 뭉처서 힘 겨루기를 했지요.



기마전으로 힘 겨루기도 하고...



누가 누가 멀리뛰나 훨훨...



청군이겨라! 백군 이겨라! 목청것 소리치고 나면 다음날은 모두가 목이쉬고...
지금의 운동회는 점심 시간 지나면 끝이지만
당시는 하루종일 온마을 잔치로 해가 질때까지 했지요.



학교마다 보통 공 두개정도(배구공,축구공) 최고의 놀이감 이었습니다.
눈을 감고 블로킹하는 어린이 모습이...



한창 태권도 붐이 일어 학교마다 가르치는 모습입니다. 기마자세 태극1장이던가요?



길거리 포장마차 비슷한 곳에 아이들 간식 많이 팔았지요.
불량 식품이 너무많아 늘 배앓이하고...



당시 1원부터 제일 큰 돈 500원까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