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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와 운명

대한인 2014. 3. 27. 18:00

사주와 운명

 

    사람에게 사주(四柱)라는 것이 있다.

    사람이 태어난 생년(年), 생월(月), 생일(日), 생시(時)가 그것인데,

    동양의 운명철학에선 이 사주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 짓는다고

    말하고 있으며, 이를 믿는 사람들도 꽤 있는 것 같다.

    일종의 숙명론적 인생관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과연 사람의 길흉화복이 사주팔자에 달려 있을까.

    인생의 모든 일이 저마다 타고난 사주대로 풀려나가고 있는 것일까.

 

    중국의 유명한  시인 소동파와 이씨왕조 세조 때의 정란공신

    정인지는 사주가 서로 똑 같았다고 한다.

    이 두 사람의 사주는 병자년, 신축월, 무술일, 을묘시 였다.

 

    이런 사주 때문인지 두 사람은 똑 같이 당대의 문장가로 시문에

    뛰어났었다. 그러나 이들이 걸어간 길은 크게 달랐다.

    소동파는 군주의 악정을 정면에서 비판하는 바람에 평생을 유배

    생활로 마쳐야 했지만 정인지는 권력찬탈의 일등공신이 되어

    영의정의 자리에 올라 부귀영화 속에서 일생을 마쳤다.

    서로의 사주는 같았지만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그 운명의 길은

    달리하고 있다.

 

    역시 조선왕조 때 성종임금과 사주가 똑 같은 여인이 있었다.

    성종이 이 소문을 듣고 하루는 이 여인을 대궐로 불러 살아온

    인생역정을 물어 보았다.

    성종이 세자로 책봉되던 해에 이 여인은 어머니와 사별을 했고,

    성종이 왕위에 등극하던 해에는 이 여인은 남편과 사별을 하고

    과부가 되고 있다.

    그리고 이 불행한 운명의 여인은 지금, 밥을 빌어 먹어야 하는

    처지에 있었다고 한다.

 

    서로 타고난 성별이 달라 운명도 달리 했는지는 모르지만 같은

    사주로 태어난 운명 치고는 너무나 판이하고 기구하다.

 

    군주의 지위가 노력해서 얻어지는 자리가 아니고 보면,  사주라는

    것이 별난 운명을 가진 사람을 몇 명 쯤은 따로 만들어 내기도

    하는 것인가.

     

    "나는 아버지를 모르는 유복자 입니다. 내가 태어나기 석 달 전에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돌아사셨고 나는 조부모 밑에서 살았습니다." 

    이 말은 미국 대통령이었던 클린턴이 민주당 대통령후보 지명을

    수락하면서 목멘 소리로 외쳤던 말이다.

 

    클린턴이 네 살 때, 그의 어머니는 재혼을 했고 술주정뱅이인 의붓

    아버지의 행패에 이들 모자는 서로 껴안고 울어야 했다.

    이렇게 불운의 유년시절을 보낸 클린턴. 명문거족의 집안도, 고관

    대작의 자제도 아닌 클린턴이 거대한 미국을 다스리는 대통령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클린턴의 사주에는 미국대통령문장이라도 새겨져

    있었을까.

 

    인생은 야구와 같다고 한다. 야구경기에서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타자도 그 타율이 3할 7푼을 넘지 못한다. 3타석 1안타에 불과하다.

    인생이란 모든 것이 다 그렇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성공이 있는가 하면 실패가 따르고,

    길흉화복과 흥망성쇠가 함께 있기 마련이다. 다만, 뿌린 만큼

    거두고 노력한 만큼 얻을 뿐이다. 노력의 바닥이 보일 때 운명의

    보너스를 받는 것이며 이것을 사람들은 행운이라 부른다.

 

    클린턴이 자신의 기구한 운명 앞에 일찍이 굴복하고 말았다면

    대통령 클린턴은 존재할 수 없었던 것 처럼 말이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도 '사람의 운명이란 외부에서 오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자기 자신의 마음과 행동이 스스로 운명을 만드는 것이며

    인생에서 가장 쓸데 없는 것이 바로 탄식' 이라고 했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의 운명을 사주팔자로 돌리려는 무책임한

    자신에 대하여 때로는 호된 채찍으로 다스리고 길들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