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여 년을 알뜰살뜰 가꾼 초가
창녕 [하병수 가옥]
그 집 마당에 들어 선 순간, 왜 그렇게 아득해졌는지 모른다.
뚝뚝 듣던 초가 지스랑물이 가슴으로 흘러들고 마당 텃밭엔 내 할머니의 뒷모습이 어른거리더니 급기야 한 켠에선 마람을 엮는 동네 아저씨들의 털털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햇발은 가즈런히 마당에 내려앉고 우리는 짚단을 요리조리 옮기면서 집짓기 놀이에 신나 있다.
드디어 세 분이 지붕 위로 올라가 썩은 새끼줄을 걷고 일년 내내 햇살과 바람과 비님에게 시달려 혼빠진 짚들을 몰아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면 마당엔 굼벵이들이 떨어져 꿈틀꿈틀 몸을 뒤척이곤 했다. 아버진 그 녀석들을 잡아 모으라 하셨고 우린 속내가 다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한 단백광을 발하는, 뽀동한 녀석들이 징그러워 쉽게 손을 내밀지 못했다. '야, 이 녀석들아! 굼벵이가 얼마나 좋은지 아냐? 약도 되고 살도 되고 그랴.'
지붕에 새 마람을 차근차근 덮고 급기야 꼭지의 용마람이랑, 들뜸을 앉힐 새끼줄까지 둘러 마무리하면 집은 뽀오얀 모습으로 왠지 수줍어하는 듯 새로 태어났다. 처녀 뒷태 마냥 이쁘게 엮는다고 칭찬들 나누시던 아버지의 솜씨는 공연히 내 어깨도 으쓱거리게 했다.
그런데 [하병수 가옥]은 볏짚이 아닌 억새풀로 이은 지붕이었다. '박제가'가 쓴 [북학의]에 보니 우리나라의 지붕은 짚의 이삭이 달렸던 끝부분을 아랫쪽으로 향하게 얹는데 중국은 짚의 밑동 부분이 아래쪽으로 향하게 얹어 덜 썩는다던데, 중국의 지붕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빗으로 빗긴 듯 가지런한 게 아니라 마람의 층마다 엉성하게 들뜬 게 볏짚지붕과는 느낌이 참 다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단아하고 절로 살고픈 마음이 들게끔 정성이 닦인 집인지라 그 들뜸마저도 독특한 풍경이 되어 마음을 가지런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함안'과 '창녕'을 답사지로 정하고 부지런히 발을 놀리던 우리 가족, 우포늪을 지나 주남저수지 근처에서 자고 창녕읍에 들어 술정리 동·서삼층석탑을 만났을 때까지도 거대한 고분군과 석탑의 규모, 알지 못했던 유적이 많음에 놀라긴 했지만, 대부분 가야와 신라의 자취를 따르는 평범한 답사일 뿐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가옥을 만나면서 갑자기 우리 나들이가 아름다워지고 따스해진 것이다. 마음의 고향을 찾은 것 같은 이 느낌을 무어라 그리면 좋을까….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 동삼층석탑 근처. 소문조차 들은 적 없는 이 하병수 가옥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안채'가 문화재로 지정된 덕분이다. 1998년에 조선식 골기와으로 새롭게 단장했다는 사랑채를 도니 안채는 훤히 보이는데 낮은 담에 자그마한 대문이 닫혀 있다. 참으로 정갈하고 조용함에 함부로 들어설 수 없어 소곤소곤 감탄만 하고 있는데, 사랑채에서 어른이 나와 편히 살펴보라며 문을 열어주신다.
서쪽부터 작은방, 대청, 큰방, 부엌 네 칸으로 된 초가. 마당엔 잔디가 곱게 깔렸고 작은 돌들이 징검다리처럼 줄맞춰 앙증맞게 소풍을 나왔다. 마당 한 켠 아주 작은 땅엔 마늘이 한 뼘 정도 자라 푸른 색으로 봄이 다가옴을 알려주고, 토방 아래엔 작은 돌들을 모아 가꾼 화단과 큰방 앞쪽엔 비닐을 덮은 작은 화단도 있다. 작은방 옆엔 같은 크기로 잘 팬 장작이 참말로 이쁘게 쌓여 있고, 댓돌엔 흰고무신이 정겹게 놓여 있다.
가까이 본 집은 절로 입이 쩍 벌어지게 한다. 그야말로 파리가 낙상할 듯 반질반질한 마루며, 때묻는 데 없이 햇살 아래 청명한 창호지, 정갈하게 포장하고 묶어 올린 시렁 위의 물건들, 페인트나 니스칠을 하지 않고도 윤이 자르르 흐르는 기둥들은 깔끔할 주인의 손길이 그대로 느껴진다. 대청에 앉아 치어다 본 천장은 더 놀랍다. 가느다란 서까래가 드러난 것은 어린 시절 우리 동네 집들과 별다를 바 없지만, 서까래 위로 대를 쪼개 엮은 산자가 보이는데 그 크기와 간격이 얼마나 단아한지 동백기름 바른 할머니의 머리를 보는 듯하다. 그리고 엮은 대 속엔 흙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겨릅대를 엮어 덮고 억새풀로 이엉을 얹어서 그렇다는데, 이런 건축기법을 '건새집'이라고 한다나.
뒷뜰로 돌아가 보니 정말 멋진 이가 사는 집이라는 실감을 할 정도로 뒷태도 곱다. 쌓은 장작들 옆에 발로 밟아 돌리던 탈곡기가 있고, 가는 장작들과 숯을 툇마루에 모아 놓았는데 벽에 걸린 사다리까지도 반질반질한 게 삶의 흔적을 그대로 담고 있다. 또 벽의 키며 마른 시래기, 옥수수 묶음, 약초 묶음이 현재 '사람내음'도 정겹게 이야기한다. 거기다 예전 궁궐이나 대갓집을 답사할 때나 보았던 굴뚝이 얼마나 근사하게 서 있는지 모른다. 이 집에서 유일하게 사치스럽다 싶은 부분인데 기와와 흙으로 쌓아 올림이 얼마나 깔끔하고 흥겨운지 '가락'이 느껴질 정도다.
굴뚝 뒤로는 작은 돌들로 쌓아올린 축대가 텃밭을 안고 있고 그 뒤로는 또 낮은 돌담을 쌓았다. 그 귀퉁이들에 서 있는 과일 나무들이 마음의 여유를 말해 주고 있다.
어쩌다 구구한 설명이 되었지만 진짜 말하고픈 것은 집의 모습이 아니다. 살림살이의 윤기로 짐작되는 사람내음과 정겨움, 그리고 편안함과 아늑함이다. 전국을 싸돌면서 민속촌이나 문화재로 지정된 집, 지금도 사람이 사는 오래된 집들을 제법 보아왔지만 이렇게 아기자기한 살아있음으로 말을 건네 온 집은 별로 기억이 없다. 우리나라 민가 가운데 가장 오래된 초가라는 이 작은 집을 200년이 넘도록 대를 이어가며 사랑하고 알뜰하게 가꾼 그 정성. 그 자리에 내가 서 정겹게 추억을 끌어올 수 있음이 고맙기만 하다.
포근해진 마음으로 마당을 나서는데 따스한 주인의 손길로 겨울옷을 입고 봄을 기다리는 수많은 꽃과 나무들, 단아하고 정갈한 안주인 손길이 느껴지는 장독대가 잘 가라고 인사를 한다. 집의 어느 한 곳도 놓치지 않고 세세하게 미친 손내음을 맡은 우리도 마음은 포시런 부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