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공간 ‘경회루’, 인왕산이 달리 보이는구나!
조선시대 왕의 연회공간 ‘경회루’ 특별 개방…10월까지 사전 예약해야
1392년...2015년... 623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에 들어선다. 근정전 앞 박석 앞로 왁자지껄한 한 무리의 중국인 관광객이 지나가고 고즈넉한 기와엔 봄바람이 살랑 불어온다. 남쪽에서 불어오는 꽃 소식이 아직 당도하지 않은 궁궐. 그래도 궁궐의 나무에는 새순이 싹을 틔우고 늘어진 수양버드나무 가지에 제법 연둣빛 물이 올랐다. 수양버들 늘어진 궁의 서쪽 연못, 그곳에 경복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인 ‘경회루’가 있다. 4월의 첫 날인 1일, 경복궁의 경회루가 일반에게 공개됐다.
경복궁 근정전의 모습 |
경회루는 조선시대에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마다 연회를 베풀던 누각이다. 경회(會樓), 경사스러운 만남이라는 뜻이다. 외국의 사신을 접대하던 곳이며 임금과 신하가 덕으로 만남을 갖던 연회장이었다. 남북으로 113m 동서로 128m의 인공연못에 2층으로 된 팔작지붕의 멋진 누각이 눈에 들어온다. 봄빛을 머금은 잔잔한 호수 위로 경회루의 그림자가 물결친다.
경회루의 모습. 조선시대에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마다 연회를 베풀던 누각이다. |
이곳은 조선 건국 당시 작은 누각만이 존재했지만, 땅이 습해서 누각이 기울어지자 태종 12년(1412년)에 샘을 파고 연못을 넓힌 뒤 경회루를 지었다. 지금의 경회루는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타서 돌기둥만 남아있던 것을 고종 4년 다시 세운 모습이다.
평소에는 문화재 보호를 위해 접근이 제한돼 있지만,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주중에는 오전 10시와 오후 2시, 4시 세 번, 주말에는 오전 10시, 11시 오후 2시와 4시, 네 차례에 걸쳐 인터넷 사전예약제를 통해 특별관람을 실시한다. 개방 첫 날인 4월 1일 설레는 마음으로 경회루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경회루의 특별관람이 시작됐다. |
국보224호 경회루의 함홍문이 열리고 기다리던 많은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선다. 경회루는 동쪽으로 난 세개의 문을 갖고 있는데, 왕만이 출입하던 이견문, 왕자와 왕족들만 출입하던 함홍문, 신하들이 드나들던 자시문이 있다. 관람객들은 모두 왕족이 되어 함홍문으로 들어선다.
1층에 있는 높다란 기둥의 개수는 48개. 바깥쪽 네모난 기둥 24개는 입춘을 시작으로 우수, 경칩을 거쳐 대한, 소한까지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24절기를 의미하고, 안쪽 둥근기둥 24개는 주역에서 말하는 8궤와 1년 열두 달을 의미한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고, 그 가운데 사람의 마음은 평화로운, 우주의 조화로움을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이다.
둥근기둥이 받치고 있는 천정엔 꽃이 만발했다. |
시원스럽게 뻗은 기둥이 받치고 있는 천정에는 꽃이 가득 피었다. 관람객들은 화사하게 수놓아진 천정을 바라보며 연신 감탄사를 쏟아놓는다. 태종이 경회루를 지을 때 화강암 기둥에 시원스런 용을 새겨놓았다고 한다. 기둥에서 용솟음치는 용의 모습이 연못에 비치면 흔들리는 물결따라 승천하는 듯한 모습이 장관이었다고 전해지지만 고종이 다시 세우면서 용의 모습을 새겨넣지는 못했다. 기둥에 새겨진 용이 없어도 곧게 뻗어오른 그 모습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용과 같으니 아쉬울 건 없다.
경회루 1층에서 해설을 듣는 관람객들 |
소나무가 심어져 있는 두 개의 섬이 ‘만세섬’이다. 이곳에 연꽃을 심어놓고 호화로운 배를 타고 경회루에서 만세섬까지도 오고가며 풍류를 즐겼다. 경복궁 북쪽의 연못 향원지에서 흐르는 물이 이곳 경회루로 흘러들고 경회루를 한바퀴 돌아 서남쪽 배수로를 지나 청계천과 한강으로 흘러들어간다. 고여있는 물이 아닌 흐르는 물. 임금과 신하와의 만남도 이처럼 끊임없이 소통하며 덕으로 이어졌으리라.
경회루 2층에 올라 해설을 들으며 풍경을 감상하는 관람객들 |
1층의 기둥이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돌기둥이었다면 2층의 기둥들은 나무로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만나보는 한양의 풍경이 가히 천하제일이었다고 전해진다. 북으로는 북악산을 등지고 남으로는 청계천과 한강을 바라보고 있는 배산임수의 명당자리임을 다시 확인해 보는 자리이다. 서쪽으로 건너다 보이는 인왕산의 모습도 멋지다.
2층의 기둥과 기둥들 사이로 보이는 풍경의 모습은 지금 바라봐도 한 폭의 그림이다. 친정부모님과 함께 경회루에 오른 김은희(서울 서초구) 씨는 “600년 세월의 풍파를 견뎌온 누각인데 올라와 보니 잘 보존돼 있고 공간이 잘 만들어져 있어서 좀 놀랐어요. 외국인 친구들을 데리고 경복궁에 오면 뒤로 보이는 북악산을 보면서 상당히 놀라워하고 아름다운 풍경이라며 부러워하는데요. 경회루에 올라와서 백악이라고 불렸던 저 산을 바라보니 정말 멋있고 좋네요.”라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서쪽으로 보이는 인왕산의 모습 |
조선시대에 선조들이 바라보던 풍경은 오늘날 우리가 바라보는 풍경과는 다르다. 과거에는 청와대가 보이는 북악산 아래까지 까만 기와의 전각들이 들어서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에 경복궁의 전각 중 90%가 사라졌다. 1990년부터 시작된 복원 사업이 지금도 한창이지만 아직 이곳에서 건너다 보이는 북악산 아래는 허전하다.
상상해본다. 경복궁의 전각들이 복원되고 이곳에서 다시 북악을 바라보는 모습을. 문화재청은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궁궐과 도성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궁궐의 개방을 확대하고 있다. 임금과 신하가 모여 음악과 춤으로 연회를 베풀던 이곳에 오늘은 음악과 춤은 없이 사람들의 따뜻한 온기가 마루바닥을 덥혔다. 빼어난 건축미를 자랑하는 경회루를 돌아보며 오늘 하루는 나도 왕이 되어본다. 600년 전 왕의 시선으로 풍경을 바라본다. 세상 고달픈 바람들이 흔들고 지나가더라도 이렇게 역사의 숨결이 살아있는 공간을 누리며 마음이 풍족해짐을 느낀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고궁은 무료로 개방된다. 4월 마지막 수요일 쯤에는 경복궁의 봄도 한창일 것이다.
그 때 경회루에 올라 고궁의 봄을 만끽해보시길 권해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