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 깔고 앉은 민주화세력 처단, 500만야전군이 앞장선다
5.18 광주에 투입됐던 평양 장군들
5.18 광주에 북한특수군으로 내려와 사진 찍힌 사람들 중 36명을 북한에서 찾아냈습니다. 북한에 생존하고 있는 차수 계급이 총 8명인데 그 모두가 광주작전에 참전했습니다. 차수는 4성장군보다 높습니다. 북한 군부서열 최고반열에 오른 33명의 장군(상장-대장-차수)이 광주작전에 참전했습니다. 이들 중에는 한국사회에 잘 알려진 최룡해 황병서 김격식 김영철 오일정 오금철이 들어 있습니다. 의문사를 당한 북한총리 연형묵도 광주에 왔습니다.
최룡해(광수36)는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 오일정(광수28)은 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 오금철(광수24)은 오백룡 전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의 아들입니다. 위 33명의 장군들에 대한 신원이 모두 파악되었습니다. 33명의 장군들 말고도 2010년 5월 17일, 평양에서 거행된 ‘5.18 제30주년 기념식장 로얄석에 넥타이 매고 앉아있는 3명은 광주무장폭동 현장의 감시반이었습니다.
이로써 1980년 5월에 광주에서 찍힌 북한군 36명의 얼굴과 최근 북한의 최고위층 36명의 얼굴이 일치함을 발표합니다. 단 이중 33명의 얼굴에 대해서는 현미경적인 영상분석을 이미 완료하여 공개했고, 나머지 4명에 대해서는 일반 대중의 시각적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초정밀 분석을 요하는 관계로 분석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들 36명 말고도 광주에서 이들과 같은 모습을 하고 같은 차량이나 같은 공간에 있었던 수십 명의 수상한 자들도 북한특수군 임에 틀림없지만 영상이 흐린 경우가 많이 그들 모두에 대한 신분을 밝혀내는 데에는 시간상 기술상 무리가 있습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광주에서 찍힌 수상한 사람들이 수십 명 더 있다는 것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이상의 결론은 순전히 사진 분석만으로도 충분히 뒷받침되었습니다.
북한특수군은 몇 명이 와서 무얼 했나?
그러면 도대체 북한군은 몇 명이나 왔고, 어떤 괄목할만한 기적을 기록했는지,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그 증거들은 모두 18만 쪽에 달한다는 수사기록에 숨어 있었습니다. 검찰의 수시결과 보고서(1995.7.18)에도 있고, 안기부 상황 및 피해보고서(1985)에도 있었습니다. 저는 12년 동안이나 연구했기 때문에 그것을 찾아냈지만 판검사들은 5.18에 대해 1980년과 1996년 두 치레씩이나 재판을 했으면서도, 이 중요한 사실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1980년 재판에서는 김대중을 잡기 위한 정치재판을 했고, 1996년에는 전두환을 잡기 위한 정치재판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5.17 비상계엄 확대발표로 당시의 전국상황은 그야말로 살얼음판이었습니다. 전국의 젊은 사람들은 경찰 눈에 보일까 모두 꼭꼭 숨어 있었습니다. 운동권 대학생들이 더 철저하게 숨었습니다, 이런 시각에 ‘연고대생’으로 위장한 북한특수군은 공수부대 집결지를 찾아가 감히 돌멩이를 던져 단번에 공수대원 7명의 얼굴에 피를 흘리게 했습니다. 이들이 도망가는 속도는 공수부대의 상대가 안됐습니다.
5월 21일 08시에 20사단 사령부 차량부대가 광주 톨게이트를 통과한다는 극비 정보를 입수하여 북한군 300명이 매복하고 있다가 감히 현역부대를 습격했습니다. 일반 시민들은 꿈조차 꿀 수 없는 일입니다. 사단장용 지프차를 포함 14대의 지프차를 빼앗아 장갑차와 군용트럭을 생산하는 아시아자동차 공장에 가서 보여주었습니다. 공장간부들은 겁에 질려 그들이 하라는 대로 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374대에 열쇠를 꽂아주었습니다.
09시에 이 자동차공장에는 600명의 폭도가 집결했습니다. 이들은 이 차량들을 일시에 몰고 각기 정해진 방향으로 달려갔습니다. 전남 17개 시군에 꼭꼭 숨어 있는 44개 무기고를 향해 연습한 사람들처럼 달려가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 불과 4시간만에 5,408정의 총기와 수류탄, 실탄, 다이너마이트를 탈취했습니다. 그것들을 광주공원에 모아놓고 점검하는 사람들, 그들도 사진에 찍혀 이번에 발각되었습니다. 당시는 자가운전시대가 아니어서 운전자가 희귀했습니다.
북한특수군은 이 총기로 광주사람들을 쏘았습니다. 총기로 사망한 광주인 116명 중 80-85여명(70-75%)을 북한군이 쏘아 죽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공수부대가 죽였다 선동해 광주사람들을 분노케 했습니다. 시체장사에 이어 유언비어 장사도 톡톡히 했습니다. 경상도 사람들만 추려서 보낸 공수부대가 환각제를 마시고 여성만 보면 환장해서 유방을 도려내고 임산부의 배를 찔러 태아를 꺼내 임산부 얼굴에 던지고 여성의 가죽을 벗겨 매달아놓았다는 등의 정치공작을 하였습니다. 광주 스스로 유언비어를 확산했고 광주 스스로가 흥분했습니다. 남남전쟁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남침을 하려 했던 것입니다.
5월 21일 밤, 이들은 2,700명의 수용자가 들어 있는 광주교도소를 6회에 걸쳐 공격하였습니다. 북한으로부터의 무리한 명령을 맹목적으로 수행하느라 죽은 것입니다. 여기에서 490명에 이르는 북한군이 죽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북한군은 8톤 규모의 TNT에 뇌관과 도화선을 연결해 2,100발의 폭탄을 전남도창에 조립해 놓았습니다. 담뱃불만 던지면 히로시마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전라도에 민주화시위는 없었습니다. 북한특수군에 내통-영합한 내란행위가 있었을 뿐입니다, 이상의 내용들은 2014년 10월에 발행된 ‘5.18분석 최종보고서’에 명쾌하게 분석돼 있습니다.
김대중과 전라도는 여적의 공범들
1980년 김대중은 북악파크에서 4월 10일, 5월 1일, 5월 10일, 5월 12일 4차례에 걸쳐 좌익인물 26명과 함께 김대중 혁명정부 수립을 위한 모의를 했고, 혁명내각 명단을 작성했습니다.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인 것입니다. 이런 모의와 혁명계획이 완성되자 5.18이 발생하기 이틀 전인 5월 16일, 김대중은 감히 대한민국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군사작전 같았습니다.
“내각을 모두 해체하고 계엄을 철폐할 것을 5월 19일까지 결심하여 발표하지 않을 경우, 5월 22일을 기해 전국적으로 시위를 전개할 것이다. 모든 군인과 경찰은 상부의 명령에 불복할 것이며 모든 국민은 이날 검은 리본을 달고 시위에 참여할 것이다”
북한에 관한 한, 김대중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행동해 왔습니다. 1972년 그는 일본에 가서 반국가단체인 한민통("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를 결성하였고, 그에 대한 재판에서 김대중은 사형선고롤 받았습니다. 국가보안법 제1조 제1호 위반에 해당하는 반국가단체 구성죄를 저지른 것입니다(사형).
한민통은 1974년 8월 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가행되는 광복절 행사에 저격수 문세광을 보내 박정희 대통령을 쏘려다가 육영수 여사를 쏘았습니다. 그리고 김대중은 대통령 재임기간 중 북한에 수조에 달하는 핵자금을 대주고 북한의 핵개발을 감추어주었습니다. 그리고 2001년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북한은 핵을 개발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만일 개발하면 내가 책임지겠다.“
2006년 6.14~16일 광주는 북한조평통 간부 148명을 끌어들이고 대법원에서 이적단체로 판결 받은 범민련남측본부 등 빨갱이 집단 800여명을 초청하여 통일대축전이라는 이름으로 적화통일의 열기를 발산하였습니다. 이때의 광주사람들에 대한민국은 안중에 없었습니다. 여기에서 김대중은 5.18이 적화통일을 위한 것이라고 해석될만한 말을 했습니다. “오늘의 이 민족통일대축전의 광경을 보고 망월동 국립묘지에 계신 영령들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틀림없이 자신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면서 오늘의 모임을 축하하고 기뻐하실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특별한 학생들을 선동하는 것 말고는 특별한 수단이 없는 일개 재야 정치인이 감히 국가에 대해 선전포고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바로 김일성으로부터 군사적 지원이 있을 것이라는 약속을 들었기 때문에 가능할 것입니다.
최근 ‘광수’라는 단어가 인터넷에 범람합니다. ‘광수’는 5.18당시 광주상황을 생중계한 북한TV를 북한군 내무반 병사들이 시청하면서 “야, 저거 광수다 광수”하고 손벽을 쳤다는 탈북자들의 증언록에서 유래합니다. 광수가 인터넷의 유행어가 된 시점에서 전라도와 광주는 양심의 가책을 받기는커녕 ‘지만원을 감옥에 잡아넣자, 광수는 가짜다, 법으로 이미 끝난 이야기 자꾸 해서 사회를 분열시키는거냐, 전라도 전체가 저항하고 있습니다.
5.18에 관한 한, 전라도 사람과 비전라도 국민 사이에는 서로 교통할 수 있는 주파수 밴드가 전혀 없습니다. 전라도 사람들은 대개 타도 사람들을 적대시합니다. 그들을 멸시하는 타도사람들을 북한의 힘을 빌려 보복하고 싶어 합니다. 5.18이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전라도에는 김대중 건물이 매우 많습니다. 전라도에는 대한민국을 타도하는 투쟁꾼들을 키우기 위해 지어진 학교가 매우 많습니다. 전라도에는 김대중 우상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김대중 동상이 전봇대만큼 많이 있습니다. 김대중 동상 앞에 서면 모두가 절을 합니다, 김대중과 김정은을 그들만의 영웅으로 모시고 그들을 멸시하는 타도 사람들을 생태적으로 증오하면서 적화통일의 그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역심의 고장이 전라도인 것입니다.
오직 500만야전군 만이 빨갱이 때려잡는다.
이제까지 전라도는 빨갱이 세력의 총본산이 되어 대한민국을 호령하고 대통령 위에 군림하면서 수많은 국민들의 정신을 노예정신으로 전환시켰습니다. 여기에 더해 전라도 사람들은 전라도에서는 물론 타 지역에서도 전라도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당선시켜 국회를 마비시켜 왔습니다. 이들은 민주화를 내걸면서 극단적인 행위로 다수당의 의지를 약화시키고 국회를 장악하여 왔습니다. 이러는 사이에 공직자들 대부분은 물론 수많은 국민들이 ‘빨갱이들에 잘못 보이면 안 된다’는 굴욕적 자세를 견지해왔고, 이것을 생존철학으로 삼아왔습니다.
이렇게 병든 정신은 대통령,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모두에도 만연해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500만야전군이 발굴해낸 5.18의 진실을 정부에 내놔 보십시오. 그들은 5.18의 진실을 현실에 반영하지 못할 것입니다. 500만야전군이 발굴한 진실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북한을 전쟁범죄자로 규정하고 유엔에 이를 반영해야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광주의 5.18유공자들을 여적혐의로 살벌하게 수사해야 하는 일입니다. 물론 광주에 광주인들 스스로 구성한 민주화시위대와 광주인 스스로 지휘한 민주화시위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주어진 5.18유공자증은 즉시 반납돼야 하는 것입니다. 과연 무능한 정부, 기능이 마비된 국회가 이렇게 큰일을 해낼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못합니다.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기에 국제사회로부터 이 문제를 공략하려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건국절을 찾아주고, 산업절을 찾아주고, 5.18민주절을 소멸시켜야만 대한민국이, 빨갱이들의 망령과 전라도 민주화의 망령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고, 그래야 비로소 이 나라가 상식이 통하는 세상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애국자 여러분, 이것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판단하신다면 500만야전군 깃발 아래 뭉쳐주십시오. 그래야 우리는 500만 의병으로 뭉쳐 절벽 위에 놓인 이 국가를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모두가 야전군의 의병이 되어 주십시오. 여러분들은 시스템클럽에 있는 글들을 주위 사람들과 인터넷 시민들에게 널리널리 알리십시오. 지금 이 글도 널리 알려주십시오.
국가가 35년 동안 시정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시정은커녕 시정하려는 제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국가답지도 않은 이 걸레 같은 국가, 빨갱이들이 만들어 온 국가인 것입니다. 국가도 국민도 모두 다 절절매는 빨갱이 세력, 우리 500만야전군만이 때려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진실을 널리 널리 알리기만 하면 이 땅의 악령들이 다 고사됩니다.
이런 막중한 사실을 알고서도 국가가 유야무야 처리하면 북한은 한국을 매우 얕보고 쳐들어 옵니다. 이런 국가, 존재할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께서 적극적인 의병이 되어 열심히 싸우실 때에만 우리의 소원 즉 국가다운 국가 만들기가 비로소 성취됩니다. 지체하지 마십시오.
2015.6.12.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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