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한라산서 왕벚나무 첫 발견
"우리는 한 때 벚꽃이 일본의 국화라고 해서 무척 미워했다. 그래서 8.15 해방이 되자 곳곳에 있는 큰 벚나무를 모두 베어 버리기도 했다. 36년 동안이나 갖은 학대를 받던 울분을 일본의 국화인 벚나무에게 푼 셈이다.
일본의 국화는 그냥 벚나무가 아니라 왕벚나무이다. 일본인들의 왕벚나무 사랑은 아주 오래 전부터 각별해 그 많은 벚나무 종류 가운데 유독 왕벚나무를 즐겨 심었고, 나라의 꽃으로까지 정해 놓았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왕벚나무가 자생하는 곳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1908년 한국에 와 있던 프랑스 신부가 한라산에서 처음 왕벚나무를 발견하였고 이어 1912년 독일인 식물학자에 의해 세계에 정식 학명이 등록돼 우리 나라가 이 일본 국화의 자생지임이 확실하게 밝혀졌다.
우리 나라에 있는 왕벚나무의 자생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데 제주 신예리의 왕벚나무는 제156호, 제주 봉개동의 것은 제159호, 해남 대둔산 자락의 것은 제173호이다.
서울 강북구 우이동의 한 부락에 벚나무들이 있는데 가지가 축축 늘어지는 수양을 벚나무라고 한다. 이 나무는 인종 때 병자호란을 겪고 중국에 볼모로 잡혀가 치욕을 겪고 돌아와 왕이 된 효종이 국력을 키우기 위해 목재로는 활을 만들고 껍질은 벗겨 활을 감아 손을 아프지 않게 하려고 심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또 화엄사 근처의 암자 앞에는 천연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된 올벚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는 화엄사에 있던 벽암 스님이 효종의 뜻에 동감하고 절 근처에 심은 많은 벚나무 중에서 지금까지 살아 남은 것이라고 한다. 활이 아니라도 벚나무의 목재는 탄력이 있고 치밀하여 경판을 만드는데 귀히 썼으며 건축재 등으로 쓰였다고 한다.
벚나무류를 키우는데 가장 중요한 일은 전정을 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인 이 나무는 맹아력이 없어서, 전정을 무척 싫어한다.
봄이나 여름에 가지를 자르면 자른 자리에서 젤리 같은 수액이 많이 흘러나오고 상처가 잘 아물지 않으며 오래간다. 그렇게 되면 병충해의 침해를 받을 우려가 크고 나무도 약해진다.
벚나무는 심은 그대로 자연방임하는 것이 가장 잘 관리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벚나무 꽃길을 만들 때는 함부로 자를 수 없다는 이 성질을 잘 알고 차량의 통행이 빈번한 곳에서는 처음부터 노폭을 충분히 넓게 잡아야 한다.
<전원문화사·현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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