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습지의 새색시, 비로용담
한국의 멸종위기식물 (9)
비로용담은 금강산 비로봉에서 처음 발견되어 우리말 이름을 얻은 북방계 고산식물이다. 남한에서는 강원도 인제군 대암산 용늪에만 사는 희귀식물이며, 지구온난화에 의해 영향을 받기 쉬운 식물이다.
대암산에서는 6월 중순쯤에 짙푸른 자주색의 아름다운 꽃을 피워 올린다. 용늪 자체가 천연기념물, 습지보호지역 등 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인위적으로 훼손될 위험이 크지 않으므로 종 자체는 법정 보호종으로 지정되어 있지 않다.
습지에는 특별한 식물들이 산다. 산과 들에서 볼 수 없는 생소한 식물들이 습지라는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가고 있다. 습지의 물웅덩이 속에는 침수식물 같은 수생식물들이 살며 물 밖의 습지에도 숲 속에 사는 식물들과는 종류가 다른 수생식물 또는 습지식물들이 적응해 산다.
습지 중에서도 높은 산에 발달한 습지에는 더욱 특별한 식물들이 산다. 소위 고층습원이라고 하는 고지대에 발달한 산중 습지에는 강변이나 호수, 바닷가 주변의 습지에 사는 식물들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식물들이 살고 있다. 대암산 용늪, 지리산 왕등재늪, 경남 영남알프스 지역의 천성산 화엄늪과 정족산 무제치늪 등이 대표적인 고산습지이다.
이 중에서도 강원도 인제군 대암산 정상 부근에 발달한 용늪은 전형적인 고층습원의 모습을 간직한 습지이다. 높은 위도에다 고도 또한 1천280m로 높은 곳에 발달하여 특별한 북방계 습지식물들의 보금자리가 되고 있다.
남한에서는 용늪에만 사는 북방계식물
용늪은 대암산(1304m) 정상의 서북 사면에 자리 잡은 고층습원으로서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서흥리에 속한다. 지리적 위치, 기후, 지형 조건 등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희귀한 이탄습지로 꼽힌다.
1968년 정영호교수(서울대)에 의해 처음 학계에 보고된 이후, 1973년 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 264호, 문화재청), 1989년 생태경관보전지역(환경부), 1999년 습지보호지역(환경부)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1997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기도 했다. 큰용늪(30,820㎡)과 작은용늪(11,500㎡) 등 2개의 늪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동안 여러 차례의 학술조사를 통해 용늪에는 800여 종류의 식물이 사는 것으로 밝혀졌다.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야생식물 5종이 습지 안팎에 자라고 있는데, 습지 내에는 기생꽃, 제비동자꽃, 조름나물, 습지 주변 산지에는 닻꽃과 날개하늘나리가 생육한다.
그밖에도 습지 내에는 개통발, 비로용담, 대택사초 같은 북방계식물과 가는바디, 꽃창포, 끈끈이주걱, 대암개발나물, 왜방풍, 큰방울새난, 흰제비난 등의 희귀식물이 자라고 있다. 또한 습지 주변에는 꽃개회나무, 댕댕이나무, 들바람꽃, 모데미풀, 애기금강제비꽃, 자주솜대, 푸른박새 등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귀한 식물이 많다. 개통발, 대택사초, 비로용담 등은 남한에서는 오직 이곳 용늪에서만 관찰되는 식물이다.
흰 꽃 피는 품종 ‘흰비로용담’
비로용담(Gentiana jamesii Hemsl., 용담과)은 북방계 여러해살이 고산식물로서 세계적으로는 일본, 만주, 사할린에 분포한다. 줄기는 밑에서 가지가 갈라지기도 하며, 전체 높이 5~15cm로 작다. 꽃은 6~8월에 짙푸른 자주색으로 피며, 2~3cm로서 긴 편이다. 매우 드물게 흰 꽃이 피는 개체도 발견되며, 이를 품종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남한처럼 위도가 낮은 곳에서는 고산습지에서 주로 자라지만, 고위도 지방으로 가면서 높은 산의 산지에서도 잘 자란다.
비로용담은 활짝 피어 있는 꽃을 손으로 건드리면 꽃이 오므라드는 독특한 생태적 습성을 가진 식물이다. 이 때문에 사진을 찍기 위해 주변을 정리하다가 잘못해서 꽃을 건드리면 이내 화관을 닫아버리고 만다. 수줍은 새색시를 닮았다.
-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megalamen@daum.net
- 저작권자 2013.07.23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