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한해살이 물풀, 가시연꽃
한국의 멸종위기식물 (11)
여름과 초가을에 꽃을 피우는 수련과의 연꽃들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것은 가시연꽃이다. 우리나라 자생식물 가운데 가장 큰 잎, 잎에 돋은 날카로운 가시, 밝은 자주색의 화려한 꽃빛깔 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북아시아에 비교적 널리 자라고 있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멸종위기식물로 꼽힌다. 환경부가 야생생물보호법에 의해 멸종위기야생생물 II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가시연꽃(Euryale ferox Salisb., 수련과)의 신비는 우리나라에 자라는 식물 가운데 가장 큰 잎을 가졌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연꽃이나 개병풍도 큰 잎은 지름 1m 가까이 되기도 하지만 이들 어느 것도 가시연꽃에 비길 바는 못 된다. 가시연꽃은 기록으로 남은 가장 큰 것이 지름 210cm에 이르는 놀랄 만한 큰 잎을 내기 때문이다.
가시연꽃의 또 다른 신비는 같은 연못이라 하더라도 매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해거리를 하므로 올해 무성하게 자라던 연못이라도 이듬해나 이후 몇 해 동안 한 포기도 자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게 관찰된다.
필자도 경북 영천시의 어느 작은 연못에서 왕성하게 자라고 있었지만 개화기를 못 맞추어서 이듬해 큰 맘 먹고 다시 찾아갔다가 낭패를 당한 적이 있다. 다시 찾아간 이듬해에는 한 포기도 자라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씨앗이 두꺼운 껍질로 둘러싸여 있어 싹을 틔우기 어렵다는 게 그 이유로 추정되고 있다. 오랫동안 잠을 자고 있다가 압력, 수온 등 여러 조건이 딱 들어맞는 해에만 신비한 생명현상을 잠깐 동안 보여주고 사라지는 셈이다.
최근 경포호에선 수십년 동안 잠자던 씨가 싹 틔워
가시연꽃 씨가 펄 속에서 수십년 동안 잠을 자다가 싹을 틔운 아주 드라마틱한 현상이 최근 강릉 경포호에서 일어나 화제가 되고 있다. 경포호 주변의 논을 복원하여 배후습지를 조성하였는데, 씨를 뿌리지 않았는데도 이곳에서 아주 많은 가시연꽃이 발생한 것이다. 경포호에 가시연꽃이 생육한다는 오래 전 기록이 있었지만 그동안은 발견되지 않다가 배후습지를 조성하자 땅속에 묻혀서 휴면 중이던 씨들이 발아를 한 것이다. 이곳 가시연꽃 자생지는 현재까지 알려진 최북단 자생지여서 학술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가시연꽃은 전체에 날카로운 가시가 많아서 ‘가시연꽃’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앞쪽은 짙은 녹색, 뒤쪽은 검붉은 보라색을 띠는 잎은 온통 가시투성이다. 아름다운 자주색 꽃이 8월 말부터 9월 중순에 피는데, 낮에 피었다가 밤에 오므라든다. 꽃받침도 빽빽하게 난 날카로운 가시로 중무장하고 있다.
가시연꽃은 오래된 저수지와 연못에서 만날 수 있다. 충청도와 강원도 일부 지역을 포함해서 중부 이남에서 주로 발견되며, 경상북도 영천·경산 같은 낙동강 배후습지의 여러 연못에서는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필자는 몇 해 동안 9월 중순을 전후하여 영천과 경산의 연못들을 찾아가 가시연꽃의 동태를 살피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자생하지 않고, 씨앗을 약으로 쓰기 위해 오래 전에 들여다 심었다는 설도 있으나 명확하지는 않다.
가시연꽃과 비슷한 아마존밀림의 빅토리아연꽃
가시연꽃과 비슷한 식물이 남미 볼리비아, 구아나 등 아마존 밀림에도 살고 있다. 빅토리아연꽃이 그것인데, 물 위에 뜨는 아주 커다란 잎, 잎과 꽃대 등에 난 가시 등이 비슷한 식물임을 한눈에 알아보게 한다. 19세기 초 이 식물이 발견되었을 때, 처음에는 가시연꽃과 같은 속의 식물로 인식되기도 했을 만큼 가시연꽃과 유사한 식물이다.
가시연꽃속(屬)에 가시연꽃 한 종만이 유일하게 소속되는 것처럼, 빅토리아연꽃속에도 1~2종만이 있다. 영국 빅토리아여왕을 기려서 라틴어 학명의 속 이름 자체를 ‘빅토리아(Victoria)’로 했으며, 종소명은 아마존에서 발견되었음을 의미하는 ‘아마조니카(amazonica)’이다.
빅토리아연꽃은 한 시간에 2cm, 3~4일 만에 2m 가까이 자란다. 조금 과장하면 크는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다. 그러나 아무 때나 그렇게 자라는 것은 아니고 물 깊이, 온도 등 조건이 맞을 때만 얼른 자라서 꽃을 피운다. 이것은 많은 수생식물들이 보여주는 특징이기도 한데, 언제 가뭄이 들지 모르는 상황에서 살아가기 위한 적응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수분이 끝나고 나면 꽃이 바로 시드는 것도 신기한 일이라 할 수 있는데, 단 이틀 만에 시들고 만다.
-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저작권자 2013.08.20 ⓒ ScienceTimes